
7시간 전
<여행칼럼> 아침이 시작되는 곳, 노루벌 적십자생태원의 운해
[6월 소식] #대전서구 #대전서구소식 #6월소식
노루벌 적십자생태원,
아침이 시작되는 곳에서
글·사진 안성진 여행작가
잠든 도시의 침묵을 깨고 아주 조용히 하루가 시작되는 시간. 그 새벽의 문턱에 노루벌 적십자생태원에 도착했습니다. 하늘은 이미 밝아오고 있었고, 노루벌 캠핑장 주변에는 소수의 텐트가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두 시간쯤 눈을 붙인 채, 아직 꿈속을 걸어 다니는 듯한 마음으로 장비를 챙겼습니다. 이번에는 노루벌과 적십자생태원 메타세쿼이아 숲이 운해로 감싸진 하얀 안개의 신비로운 모습을 담으러 떠났습니다.
노루벌을 덮은 운해의 아름다움
쪽문 입구를 지나 숲속으로 발을 디딘 순간, 모든 소리가 멈춘 듯했습니다. 오직 내 숨소리와 이따금 나뭇가지 흔드는 바람 소리만이 함께하는 것 같았습니다. 하트모양 터널을 지나 메타세쿼이아 숲으로 다가가자, 숲은 말없이 반겨주고 있는 듯 포근하게 느껴졌습니다.
이미 일출은 시작되었지만, 짙은 안개가 숲을 덮으면서 몽환적인 분위기가 연출되었고, 마치 판타지 영화 속 주인공이 된 것 같은 착각마저 들 정도였습니다. 안개 사이로 흐릿하게 비치는 햇살과 함께 메타세쿼이아 숲에서는 커다란 사슴 정령이 나타날 것만 같았습니다.
그때, 근처에서 딱따구리 소리가 정적을 깨트렸고, 다시 전망대 쪽으로 향하는 길, 아침이 오는 소리, 새들이 지저귀는 작은 합창 소리를 잠시 멈춰서서 듣다 보니 마음이 정화되는 것 같았습니다.
전망대에 이르렀을 때, 눈부신 아침 햇살이 숲과 운해 위를 부드럽게 덮고 있었습니다. 운해는 메타세쿼이아 숲을 비롯해 적십자생태원 전체에 천천히 스며들었고, 그 위로 햇살이 안개 위로 드리우며 순백의 융단을 보는 듯했습니다. 빛과 안개의 조화는 말 그대로 신비로움으로 다가왔습니다.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은 자연의 화폭이었고, 웅장함마저 느끼게 된 시간이었습니다.
숨을 죽이고 셔터를 누르면서 동시에 드론을 띄워 더 높은 시선에서 이 새벽의 기적을 담았습니다. 순간순간 풍경은 달라졌고, 마음이 더 조급해지고 있었습니다. 빠르게 변화하는 순간의 찰나를 놓치지 않기 위해 집중해 촬영하다 보니 온몸이 땀으로 젖기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일출 풍경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루 중 가장 부드러우면서도 강렬한 아침 햇살이 내게 말을 걸어오는 시간. “깨어나세요, 사진가여. 오늘의 세상이 여기 있습니다.”
정신없이 셔터를 누르던 중, 눈 부신 빛 너머로 문득 또 다른 아침을 마주하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조용히 눈을 감아보았습니다. 그 순간, 정원의 안개 사이로 스며드는 바람이 피부를 살며시 어루만졌고, 멀리서 들려오는 새들의 노래는 마음 깊은 곳을 건드렸습니다.
숲속을 부드럽게 지나가는 공기, 고요한 아침의 정적 속에서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딱따구리의 두드림,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듯 재잘거리는 작은 새들의 합창, 그리고 살랑이는 바람에 나뭇잎들이 속삭이는 소리까지, 모든 자연의 숨결이 내 안으로 천천히 들어오며, 가슴 깊이 잊고 있던 감동을 다시 불러일으켰습니다.
그 순간, 온몸이 정화되는 듯한 느낌이 밀려오면서 '아, 이것이 바로 힐링이구나.' 목적지에 도착하면 늘 아름다운 풍경을 사진으로 남기기에 바빴던 지난 시간이 살짝 아쉽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그동안 이 멋진 아름다움을 정작 내 마음으로 느끼기보다는 모니터 앞에서 보정하며 뒤늦게 감상했던 나날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은 확실하게 다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찰나의 고요함 속에서 온전히 나 자신으로 서 있었고, 그 풍경 속의 일부가 되어 있었답니다.
‘노루벌’이라는 이름에 담긴 이야기
대전광역시 서구 흑석동, 그 조용한 골짜기 끝에 자리한 노루벌 적십자생태원. 한때 이곳은 대한적십자사의 수련원이었고, 아이들이 맨발로 뛰놀던 운동장이었으며, 별을 세며 꿈을 키우던 공터였습니다. ‘노루벌’이라는 이름은 과거 이곳에서 실제로 노루가 뛰놀던 넓은 벌판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지금은 노루 대신 사람들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지만, 그 시절의 청정한 공기와 살아 숨 쉬는 생태계는 여전히 우리를 따뜻하게 맞이해 줍니다.
서구에는 아름다운 정원이 많지만, 노루벌은 그중에서도 반딧불이를 만날 수 있을 만큼 자연성이 살아 있는 공간입니다. 자연이 주는 감동을 그 어떤 인위적인 조경보다 깊게 간직하고 있는 이곳은, 대전 도심 속에서 흔치 않은 생태적 쉼터입니다. 지난 2017년, 이곳은 노루벌적십자생태원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시민들이 일상에서 자연을 가까이 느끼고 체험할 수 있도록, 대한적십자사와 대전 서구청이 함께 힘을 모아 조성한 자연 생태교육의 장입니다. 이곳은 지방정원으로 시작하여, 궁극적으로는 국가정원으로 지정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프로그램과 생태 공간을 통해 시민들에게 자연의 가치와 생명의 소중함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메타세쿼이아 숲’입니다. 사계절마다 표정을 바꾸는 이 숲은 사진가들에게 사랑받는 장소입니다. 초록의 여름, 구절초와 단풍의 가을, 눈 내린 겨울의 고요까지…. 그러나 그중에서도 이른 아침 풍경이 가장 좋게 느껴집니다.
시간의 기억을 간직한 예담고와 노루벌
노루벌 생태원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예담고’가 있습니다. 이곳은 유물 수장고이자 교육과 전시가 함께 이루어지는 복합문화공간입니다. 놀라운 사실은, 이 예담고가 폐철도 터널을 활용해 만들어졌다는 점입니다. 한때 기차가 달리던 공간이 지금은 역사를 품고 미래를 가르치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유물 보관뿐만 아니라,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도 함께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고고! 생태를 만나다’라는 프로그램입니다. 아이들은 자연과 유물을 함께 체험하며, 시간과 생명의 흐름을 배우게 됩니다. 이처럼 노루벌에서의 생태체험 후, 예담고에서 유물과 전통문화를 만나는 구성은 자연과 인문의 교차점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곳 노루벌 적십자생태원은 단순한 출사지나 쉼터가 아니며, 누구나 자연 속에서 나를 회복하고, 시간의 흐름과 우주의 기운을 느끼며, 조용히 내 안을 바라보는 공간으로 추천하고 싶습니다. 전망대에서 셔터를 누르며 생각했습니다. ‘이 풍경을 담고 있는 나의 감정을, 사진 속에 모두 담을 수 있을까?’ 아마도 사진은 늘 부족했으나, 그 부족함을 메우는 건 그 순간 느꼈던 감동과 기억일 것입니다. 자연의 시작을 온전히 마주하고 싶다면, 그리고 그 고요 속에서 자신과 마주하고 싶다면, 노루벌 적십자생태원은 누구에게나 열린 아침의 선물일 것입니다.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위 블로그 발행글은
"대전광역시 서구청 소식지" 원고를 바탕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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