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일 전
[기회기자단] 경기 광주의 빛나는 별, 해공 신익희 선생의 발자취
[강하민 기자]
신익희 선생은
1892년 7월 11일 경기도 광주유수부 초월면
서하리에서 태어났습니다.
5살부터 한학을 배우며 지혜로운 사람으로
성장하였습니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강제로 점령하자
1919년 신익희 선생은 3.1 운동에 참여했습니다.
일본 경찰의 체포를 피해 3월 18일 중국 상해로
망명하였고, 4월 10일에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하였습니다.
1945년 우리나라가 독립했을 때,
11월 1일에 임시정부 내무부장으로 고국에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1956년에는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출마하였는데, 안타깝게도
선거유세 중 호남선 열차 안에서
뇌출혈로 별세했습니다.
역사가 숨쉬는 신익희 선생의 생가
신익희 선생이 살았던 집은 1992년에 경기도
기념물 134호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습니다.
이 집은 원래 동남쪽 200m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1865년 큰 홍수로 인해 지금 자리로 옮겨졌습니다.
또 2002년 화재로 집이 많이 손상되었지만,
2004년에 다시 지어져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생가로 가는 길에는 `어록 담장`이라는
특별한 담장이 있습니다. 이 담장에는
신익희 선생의 중요한 말씀들이 새겨져 있습니다.
전통 한옥의 아름다움, 생가의 구조
신익희 선생의 생가는 아름다운 한옥으로
지어졌습니다. 안채는 T자 모양이고,
가운데 21칸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왼쪽에는 건너방, 오른쪽에는 안방과 부엌이
있습니다. 바깥채는 기역자(ㄱ) 모양으로 되어 있고,
이곳은 사랑채로 손님들이 머무는 공간입니다.
뒷마당에는 특별한 비석들이 있습니다.
이 비석들에는 "나라는 마땅히 완전 독립이라야
하고, 민족은 반드시 철저 해방되어야 하며,
사회는 어김없이 자유 평등하여야 한다"와 같은
독립운동의 정신이 담긴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빛나는
해공 선생의 13가지 가르침
해공 신익희 선생의 13가지 명언은
오늘날에도 우리에게 큰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그중 몇 개를 선정하여 여러분들께
소개해보고자 합니다.
"남의 의견을 존중할 줄 모르는 정치인은
민주주의를 할 자격이 없다."
"위정자는 모름지기 공평하고 인자하며
깨끗하고 곧아야 한다."
"공부하는 학생들도 책을 읽으면서도
나라를 위하는 일을 잊지 말라."
"감투는 머리에 쓰고 다니지 말고
발 뿌리에 놓고 다녀라."
이런 말씀들은 언제나 청렴하게
독립 정신을 유지하며 살아온
신익희 선생의 가치관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신익희 선생을 기억하며
나의 특별한 프로젝트
기자는 이번 취재를 통해
경기도 광주 출신의 훌륭한 독립운동가
신익희 선생을 기리기 위한 특별한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직접 조사한 내용을 바탕으로
신익희 선생의 업적과 정신을 기리는
노래를 직접 AI를 통해 만들었습니다.
이 노래는 신익희 선생의 생애와 업적, 그리고
그분이 남긴 가르침을 담고 있으며
광주에서 태어나 독립운동에 몸 바친
선생의 숭고한 정신을 기억하기 위한
기자의 작은 노력입니다.
독립 유공자들을 기억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입니다.
그분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우리가 지금 자유롭게 살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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