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시간 전
불교 경전에 담긴 어머니 은혜 l 아산 세심사(洗心寺)
국내 가장 오래된 한글본
‘부모은중경’의 목판이 있는 곳
충남 아산시 염치읍 산양리 220
뭉게뭉게 구름이 피어나는 길
제자들과 함께 걷던 석가모니는 갑자기 멈추어 섭니다.
길가에 버려진 해골을 가지런히 두 손으로 정성스레 모셔 머리 숙입니다.
석가모니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부모은중경(목판)이 있는 곳
마음을 씻어내는 천년고찰 아산시 세심사에서
부모의 은혜, 그중에도 한없는 사랑의 어머니를 기려봅니다.
세심사(洗心寺)는 아산시 염치읍 산양리 영인산 깊은 골짜기 자연을 벗 삼아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의 말사로 전통사찰 제61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백제 시대 창건해 654년(신라 선덕여왕 14년) 자장율사(慈藏律師)가 중창했다고 하는데 입증할 문헌은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전해지는 얘기로는 자장이 석가모니 진실사리를 가져와 봉안할 곳을 찾다가 천안 광덕사(충남의 전통사찰 3편 참조)에 두게 하였는데 지리적으로 가까운 이곳에 머물렀을 가능성도 있을 듯합니다.
세심사의 역사적 기록은 주로 조선 시대에 등장합니다. 1530년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과 조선 후기 ‘여지도서’, ‘범우고’ 등에서 신심사(神心寺)로 언급되고, 경내에는 고려 시대 불상과 기와 파편, 청석탑 등으로 미뤄 최소 고려 시대부터 명맥을 이어왔음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세심사라는 절의 이름은 1968년 절 입구에 있는 세심당(洗心堂)이라는 부도명을 따라 바뀌었다고 합니다. 현재는 대웅전인 극락보전과 영산전, 산신각, 요사채 등을 갖추고 있으며 범종각을 새롭게 짓고 있습니다.
천년고찰을 자랑하는 세심사는 많은 성보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불설대보부모은중경(佛說大報父母恩重經) 언해 목판(보물)’를 비롯해 충청남도 유형문화유산인 ‘다층탑’과 ‘소조여래좌상’ ‘대웅전 제석천룡도’ 등입니다. 사찰은 일주문이 없지만, 누각 아래 계단을 통해 들어서면 결에 따라 갈라진 모양의 독특한 재료로 세워진 석탑이 눈길을 끕니다. 서예용 벼루를 만드는 점판암으로 만들어진 다층석탑입니다. 점판암청석(靑石)을 주재료로 삼았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탑의 몸돌이 없어지고 기단 위에 연꽃무늬가 있는 큰 돌과 옥개석만 남았는데, 1956년 당시 사찰의 스님들이 새로운 돌을 끼워 현재의 모습(높이 3.9m)을 갖추어 놓았다고 합니다.
9층의 탑신부는 1층 옥신(석탑의 지붕들과 탑신(塔身)을 연결하는 굄돌)만 4개 판석으로 이루어졌고, 나머지 8층은 모두 1장의 판석입니다. 각각의 옥신 표면에는 우주가 조각되어 있고, 옥개석(석탑이나 석등의 지붕돌) 아랫부분으로 2단의 층급받침이 조각되어 있지만 뚜렷하지는 않습니다. 상륜부는 최근 새로 만든 점판암이 올려져 있습니다. 석탑의 주변에서 고려 시대 기와 조각이 발견되고 탑을 조각한 방법과 재질 특성 등을 고려할 때 고려 시대 그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탑을 돌아 아미타불을 모신 극락보전에 들어서면 소조여래좌상(塑造如來坐像. 충남도 유형문화재. 2017년 지정)과 마주하게 됩니다. 온화한 미소를 머금은 불상은 나발과 얼굴, 옷 주름 표현 등을 고려할 때 17세기 조선 소조 불상의 특징을 잘 보여줍니다. 불상은 신체와 머리 등은 나무를 이용해 골조를 만들어 기본형태를 잡은 후 흙을 붙여 이목구비와 신체의 표면, 그리고 옷 주름 등 세부를 표현하는 목심 형 소조기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내부 구조를 유지하기 위해 전통적 꺾쇠 못이 사용되었고 감마선 촬영결과 불상 표면에 많은 균열이 보입니다. 이는 나무에 덧붙인 흙이 갈라지면서 생기는 현상으로 조선 후기 소조불에서 흔히 관찰되는 특징이라고 합니다. 불상 바닥 면에 꺾쇠 못 외에도 현대에 사용되는 못이 박혀 있는 것은 근래에 불상에 금칠을 새로 하면서 밑면을 보강하거나 수리할 때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소조여래좌상의 오른편으로 신중도(神衆圖. 충남도 유형문화재, 2007년 지정)는 족자 모양으로 걸려 있습니다. 1794년 미륵사 백련정사에 있던 것으로 가로 87cm, 세로 117cm의 화폭에 색채가 긁혀 떨어지거나 훼손된 부분이 거의 없이 보존 상태가 좋습니다. 18세기 말기 충청지역 화풍을 비교적 잘 보여주는 작품 가운데 하나라고 합니다. 그림에는 건륭 오십구년 갑인년 사월이십일에 제작됐고 참여작가는 승초, 보심, 품관, 대운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들 가운데 보심은 1759년(조선 영조 35년) 봉서왕 감로왕도(이병철 콜렉션)을 비롯해 1792년(조선 정조 16년) 영천 은혜사 감로왕도, 양산 통도사 삼장보살 조성에 참여했습니다.
2단으로 나누어진 면 상단에는 제석천, 일원천자, 주악천인 및 동자가, 하단에는 위태천을 비롯하여 천룡팔부가 배치되어 있습니다. 상단 중앙에 그려진 제석천은 보석으로 꾸민 관을 쓰고 합장하고 있는데 신체를 거의 다 드러낸 채 정면을 향하고 머리 뒤로 5곡병이 둘려 있습니다. 주위에는 일천자와 월천자가 홀을 들고 서 있고 그 옆으로 주악천이 생동감 있게 표현되고, 주악동자와 공양동자상이 각각 3구씩 묘사되어 있습니다. 상단과 하단은 구름으로 구분됐는데 하단의 중앙에는 위태천이 상반신만을 드러낸 채 합장하고 정면을 향하고 옆으로는 용왕을 비롯한 4인의 천룡팔부가 무기를 들고 호위하는 모습입니다. 일반적으로 제석천룡도와 같은 형식의 신중도에서는 상단의 제석도 부분과 하단의 천룡팔부 부분을 같은 비중으로 다루는데 이 그림에서는 상단 제석과 그 식솔들을 훨씬 비중 있게 그리고 있어 흔하지 않은 형식을 갖추고 있다고 합니다.
세심사의 '불설대보부모은중경(佛說大報父母恩重經)'. 줄여서 ‘부모은중경’, ‘은중경’이라고도 부르는데 한없이 깊은 부모의 은혜에 대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글과 그림에 담고 있습니다. 경전은 석가모니가 제자들과 길을 가다가 거리에 뼈가 있는 것에 멈춰 서서 머리 숙여 기도하는 장면에서 시작됩니다. 제자들이 석가모니의 행동에 “왜 그러시냐?”고 묻자 석가모니는 “이 뼈는 내 전생의 조상이거나 혹은 여러 대에 걸친 부모일 수도 있으니 인사를 한 것”이라고 답하면서 부모의 은혜가 얼마나 큰지, 얼마나 갚기 어려운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서론인 서분(序分), 본론인 정종분(正宗分), 결론인 유통분(流通分) 등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정종분은 강론의 동기를 담은 ‘보은인연(報恩因緣)’과 부모의 10가지 은혜를 담은 ‘역진은애(歷陳恩愛)’, 불효의 죄를 설파한 ‘광설업난(廣說業難)’, 효와 불효에 따른 인과를 다룬 ‘과보현응(果報顯應)’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특히 본문 내용에 따라 여래정례도(如來頂禮圖) 1장면, 부모십은도(父母十恩圖) 10장면, 자식이 부모의 은혜를 갚는 방법 9장면, 효자가 아비지옥에서 하늘에 태어나는 1장면 등 모두 21장면을 삽도 형식으로 담아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부모은중경'은 불교 발상지인 인도에서 만들어진 것은 아니라 포교 과정에서 지역별 고유의 도덕 규범과 예의범절을 부처님의 설법에 담아 전달하는 경전으로 만들어진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불교 경전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는데 가장 오래된 것은 중앙아시아에서 6~7세기 제작된 것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부모은중경’이 전래한 것은 중국 당나라대 중반에서 송나라 시대로 추정되며 국내 제작은 고려 이후로 알려져 있습니다. 아산 세심사가 소장하는 부모은장경(보물, 2017년 지정)은 언해본(한문을 한글로 풀어 쓴 것) 목판으로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것입니다. 1545년(고려 인종 1) 오응성 (吳應星)에 의해 한글로 옮긴 판본을 모본으로 1563년(고려 명종 18) 개판(改版)한 것으로 본래 14판이지만, 제2장과 제12장에 해당하는 한 판이 결판 되어 현재 13판이 남아 있습니다. 이 경전은 제작 당시 성회스님이 어릴 적 돌아가신 부모를 위해 판각하고 70부를 찍어 배부한 것으로 권말에는 경판 제작에 참여한 기술자와 시주자 이름, 세심사의 옛 이름은 신심사(神心寺)라는 내용 등을 기록해 임진왜란 이전에 만들어진 언해본 경전과 판각 현황, 조선 시대 언어생활을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입니다. 참고로 인쇄본 가운데 가장 오래된 부모은중경은 1378년에 제작된 것으로 국립박물관에 보관 중입니다. 삼성그룹 전 회장인 이건희의 컬렉션 가운데 하나로 2021년에 박물관에 기증됐습니다.
부모은중경은 불교를 배척했던 조선에도 많은 판본이 제작됐습니다. ‘효’를 중시하는 유교 중심과 맞아떨어져 주로 왕실의 지원이 많았는데 태종의 후궁이었던 명빈 김씨, 명종 등이 발원했으며, 효심이 지극했던 것으로 알려진 정조 역시 아버지 사도세자의 억울한 죽음을 애통하게 여겨 경전 제작을 발원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눈여겨볼 점은 유교에서는 남성 중심의 효, 즉 가부장적 효를 강조하는 데 반해 부모은중경은 어머니의 은혜 10가지를 더욱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습니다. 집안의 여인을 그림으로 그리거나 출산이 임박한 어머니의 고통 등을 표현하는 등 가부장제 효 문화에서 한 발 나아갔다는 분석입니다.
마음을 씻어낸다는 세심사는 영인산 기슭의 자연 속에서 편안한 휴식을 취할 수 있습니다. 아직 본격적인 봄이 시작되지는 않았지만, 사찰의 주변에는 20여 종 3만여 본의 화초류가 심어져 힐링을 위해 이곳을 찾는 이들의 마음을 더욱 차분하게 잡아줍니다. 봄바람이 이끄는 세심사에서 마음을 씻어내 보면 어떨까요?
아산 세심사
○ 위 치 : 충남 아산시 염치읍 산양길 180 세심사
○ 문 의 : 041-543-2696
○ 운 영 : 연중무휴(일몰 후 출입제한)
○ 입장료 주차장 : 무료 (소형 10대 주차 가능)
* 취재 : 20205년 3월 26일
< 참고문헌 >
전통사찰총서-대전충남의 전통사찰 1, 사찰문화연구원, 1999년
문화유적총람-사찰편, 충청남도, 1990년
충청남도지정문화재해설집, 충청남도, 2001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정신문화연구원, 1991년
두피디아 두산백과, ㈜두산, 2019년
국가유산청 국가유산정보(https://www.khs.go.kr)
아산시청 문화관광(https://tour.asan.go.kr)
※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 휘리릭님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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