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가을, 대전 곳곳에서는 크고 작은 축제가 열리는데요. 지난 주말에는 <대전빵축제>가 열렸습니다. 올해로 4회째를 맞이하는 이번 축제에 전국 81개 빵집이 참가했다는데요. 그 중심에는 자랑스러운 대전 빵집 성심당이 있습니다.

지난 2월부터 전국구 뉴스와 신문에서 가장 큰 관심을 모았던 대전소식도 바로 성심당에 대한 이야기였는데요. 성심당이 이처럼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는 이유를 알고 계시나요?

1980년 5월 20일생 튀김소보로, 전국 최초의 포장 빙수, 가심비 최고의 망고 시루 등 가격도 착하고 맛은 더 착한 메뉴 때문이기도 하지만 ‘성심당만의 이야기’ 때문일 겁니다. 그래서 오늘은 성심당의 과거와 오늘 그리고 미래를 마주할 수 있는 특별한 공간을 소개해 드릴게요.

바로바로 성심당문화원의 갤러리 라루입니다.

성심당문화원은 성심당의, 성심당에 의한, 성심당을 위한 복합문화공간인데요. 테라스키친이 있는 성심당본점, 성심당 옛맛솜씨, 케익부띠끄와 함께 성심당스트리트를 구성합니다.

성심당문화원 지하 1층은 원데이클래스가 열리는 강의실로, 1층은 카페와 굿즈샵, 2층과 3층은 성심당에서 사온 빵을 편하게 먹으며 이야기 나누는 휴게실, 4층과 5층은 전시공간입니다.

여러분이라면 성심당문화원을 어디부터 둘러보고 싶으세요? 저는 정문으로 입장할 때 아기자기한 성심당 굿즈를 둘러보는 것으로, 후문으로 입장할 때 성심당 마스코트인 성심이와 인증샷 찍는 것으로 시작했는데요. 알고 보니 성심당문화원 건물 주변에도 숨은 보석 같은 곳이 있어요.

성심당문화원 정면을 바라보면 건물 왼쪽에 예쁘게 다듬어진 나무와 낡은 자전거, 은은한 소리가 울릴 것만 같은 종, 후문으로 이어지는 쪽길, 간절한 바람을 담아 기도하는 성모 마리아가 있어요. 그중에서도 은목서라는 나무는 2022년 5월 1일 성심당문화원의 개관을 기념하며 심었다고 합니다. 은목서는 11월에 꽃이 피는데 그 향기가 멀리 퍼진다 하여 만리향이라고도 불리는데요. 성심당의 향기가 멀리멀리 퍼져나가기를 소망하는 마음을 담았죠.

1층 메아리곳간 이곳저곳에는 낡은 저울과 반죽기, 밀가루 포대 등이 전시돼 있는데요. 1956년에 창업하여 지금까지 이어지는 성심당의 역사를 상징합니다. 또 대전사람들의 개성만점 덕담이 담긴 머그컵도 볼 수 있어요. 지난 2016년, 테미오래 도지사공관에서 성심당 환갑잔치가 열렸거든요.

이곳을 지나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에서 내리면 아늑한 전시실에 닿게 됩니다. 이곳에서는 조동환 작가와 조해준 부자(父子) 작가가 연필로 그린 성심당 연대기 <연결(連結)-연결(戀結), 1956-2024> 전시회가 한창입니다.

이 전시는 지난 2021년, 성심당 창업 65주년을 기념하며 첫 선을 보인 이래로 성심당문화원 전시실에서 늘 감상할 수 있는데요. 1956년부터 지금까지 성심당이 걸어온 발자취, 성심당이 대전 사람들과 맺은 60여 년 간의 인연을 소개합니다.

이곳 4층 전시실은 ‘갤러리 라루’라는 별칭이 있습니다. 여기서 ‘라루’가 무슨 뜻인지 궁금하시죠? 영화 <국제시장>을 보셨다면 1950년에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흥남부두에서 미군이 철수하는 장면을 기억하실 텐데요. 이때 13척의 미군 수송선이 10만 명이나 되는 피난민의 탈출을 도왔습니다. 그 중 메러디스 빅토리호는 정원이 60명이었지만 무려 1만 4천 명이 되는 피난민을 승선 시켜 가장 많은 인명을 구한 배로 기네스북에 올랐는데요. 이를 지휘한 이가 바로 레너드 라루 선장이랍니다.

알고 보니 성심당의 창업주 故임길순·故한순덕 부부는 함경남도 함주가 고향인데요. 마지막 피난민을 실은 메러디스 빅토리호에 기적적으로 몸을 실었던 것이죠. 레너드 라루 선장의 인류애가 성심당의 뿌리가 되었다니, 정말 영화 같죠?

성심당의 영화 같은 이야기는 이제 시작입니다. 故임길순·故한순덕 잠시 거제도에 머문 뒤 진해에 정착했지만 삶이 녹록하지 않았는데요. 더 나은 삶을 위해 서울행 기차를 탔는데 하필 대전에서 기차가 고장 났다고 합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두 내외는 대전역에서 내려 대흥동성당을 찾아가는데요. 故오기선 신부님에게서 미국에서 원조 받은 밀가루 두 포대를 받고 대전역 앞에서 찐빵집을 시작합니다. 찐빵집이 오늘날의 성심당이 되었죠.

故임길순·故한순덕 내외는 북한을 탈출하면서 ‘우리 가족이 살아 돌아간다면, 남은 인생은 어려운 이웃을 위해 살겠습니다'라고 기도했다는데요. 그 마음을 되새기며 장사하고 남은 그날의 찐빵은 배고픈 이들에게 나눠주고, 더 많은 이들에게 나눠주기 위해 더 많은 찐빵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후 창업주는 대흥동성당에서 가장 가까운 은행동 153번지, 지금의 케익부띠끄 자리에 터를 잡게 되는데요. 그때부터 성심당의 시간은 대흥동 성당의 종소리와 함께 하고 있습니다. 성심당문화원 갤러리 라루에서도 대흥동성당이 보여요.

성심당의 나눔은 대전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향토기업으로 자리 잡게 했는데요. 성심당이 걸어온 60여 년의 세월동안 무사 무탈했던 것만은 아닙니다. 공장에서 빵이 대량 생산되면서 매출에 타격을 받았고 사업 확장을 둘러싼 가족 간 갈등도 있었죠.

가장 큰 사건은 2005년 1월에 난 화재였습니다. 아예 매장을 접어야 할 만큼 참담한 상황이었는데 오히려 새로운 출발점이 되었답니다. 직원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나서서 6일 만에 빵을 만들었고 사람들이 줄줄이 찾아와 빵을 사갔거든요. 놀랍게도 화재가 나기 전보다 매출이 올랐다니, 대전시민들이 향토기업 성심당에 거는 애정과 자부심이 얼마나 큰지 확인할 수 있죠?

성심당이 대전 대표 빵집으로 소문나기까지 대전을 떠나지 않는 고집도 한몫합니다. L백화점 본점에 입점해달라는 요청을 고사한 건, 대전이라는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서였다죠? 오직 대전에서만 직접 구입할 수 있는 튀김소보로는 중구 은행동 본점과 대전 L 백화점, 대전컨벤션센터 그리고 대전역에서 구입할 수 있는데요. 코레일과의 극적인 타결로 2012년 이후 지금까지 그래왔듯, 앞으로 5년 간 대전역에서 튀김소보로를 만나실 수 있어요.

이 전시와 더불어 1980년대와 1990년대 그리고 현재의 성심당의 모습을 비교할 수 있는 영상 코너도 있는데요. 특별한 날에도 특별하지 않은 날에도 대전시민들과 함께하며 시대를 지나 세대를 걸쳐 이어지는 성심당의 변치 않는 진심을 확인할 수 있어요.

그래서 성심당을 대전 대표 맛집이라고만 소개하기에는 아쉽습니다. 대전시민들 곁에서 대전시민들과 함께 나이 들어가는 '살아있는 문화유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죠?

아름다운 가을날, 원도심 나들이를 계획하신다면 성심당문화원 갤러리 라루에 들러보세요. 밀가루 2포대로 대전역 앞 천막 노점에서 시작하여 어느새 대전의 문화가 된 성심당 이야기를 천천히 음미하다보면, 성심당이 더 사랑스러운 우리의 빵집으로 느껴지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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