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시간 전
역사속으로 전북 여행 - 조선 후기 실학파 고창 황윤석 생가
학문의 영역이 깊고 넓은
박문학자 황윤석 선생
인문학이 인간과 사회를 깊이 이해하게 해 주며 자기 성찰과 삶의 방향을 찾는 데 도움을 준다고 해 전국적으로 인문학에 관련된 책들이 서점가를 휩쓸 때가 있었습니다. 인문학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여전히 관심을 끌고 있는데요. 인문학은 비판적 사고력과 공감 능력을 키워주고, 창의적인 아이디어의 바탕이 되어 주기도 할 뿐만 아니라 사회 문제를 이해하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296년 전에 고창 땅에 뛰어난 인문학자가 살았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그분의 학문의 영역이 깊고 넓어 인문학자보다는 박문학자라는 칭호가 더 어울리는 분이신데요. 바로 조선 후기 실학파 언어학자 이재 황윤석 선생입니다.
이재 황윤석 선생에 대해 더 알고 싶어 선생의 생가가 있는 고창군 성내면 조동리에 찾아가 보았습니다.
소박하면서도 고즈넉한 황윤석 선생의 생가
이재 황윤석 선생의 생가는 전라북도 민속자료 제25호인데요. 부친인 황전 선생께서 세운 집이랍니다. 부친이 집을 지으면서 만은재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해요. 선생은 이곳에서 출생하여 정조 15년(1791년) 63세에 생을 마치기까지 당시 학자가 탐구할 수 있는 모든 분야에 걸쳐 연구한 학자이자 유학자셨습니다.
짚으로 덮여있는 황토 담벼락 사이로 ‘황윤석 생가’라는 명판이 붙어 있는 대문채가 있는데요. 1970년대 철거되었다가 2005년에 발굴조사를 벌여 유구를 확인하고 2021년에 복원한 것이라고 합니다.
봄기운이 완연한 마당 앞에 사랑채가 있는데요. 한 단의 장대석 기단 위에 모두 4칸으로 조성되어 있습니다. 사랑채 좌측의 한 칸은 앞으로 돌출되어 있는데요. 정자 방으로 꾸며 놓았습니다. 툇마루도 앞으로 돌출되어 사랑채가 마루로 둘러싸여 있는 모양새가 되어 있습니다.
마루방과 모든 방은 창호지를 달았는데요. 덤벙 주추 위에 네모난 기둥을 세웠습니다. 사랑채는 대체로 검소하게 느껴져서 공부에 집중할 수 있는 장소처럼 보였습니다. 손님을 맞이해 담소를 나누는 곳보다는 조용조용 사색하고 글을 읽고 지식을 쌓아갔을 선생의 모습이 상상이 되었습니다.
사랑채와 문간채 사이에는 쪽문인 일각문을 두었습니다. 일각문 옆에는 문간채를 두었는데 문간채는 두 칸의 방으로 꾸며져 있습니다. 보통 헛간채를 두는데 헛간채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1909년 일본군이 의병을 토벌할 때 안채만 빼고 모두 불타서 그해 1909년에 사랑채, 대문채, 문간채, 곳간채를 다시 복원한 것이라 하는데 복원할 때 변형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안채는 정면 6칸 규모로 일자형 초가로 전형적인 남부지방 가옥 형태라고 합니다. 앞뒤에 툇간을 두었습니다. 동쪽의 맨 끝에 마루를 두고 이어 한 칸의 방과 두 칸의 대청이 있습니다. 안방과 부엌의 순으로 되어 있는데요.
안채의 대청 북쪽 툇간에는 붙박이 뒤주가 있는데요. 그 뒤주 뒷벽에는 조상의 위패를 모신 벽감이 있습니다. 이것은 다른 한옥에서 보기 드문 특징이랍니다. 원래 조상의 위패는 안채 뒤편에 있던 사당에 모셨으나 화재 이후 사당은 복원하지 않고 안채에 벽감을 마련해 모신 것이라고 해요.
*벽감: 벽면을 오목하게 파서 만든 공간
곳간채는 5칸으로 바닥에 마루를 깔아 알곡을 그대로 저장할 수 있게 했습니다.
황윤석 선생의 학문적인 삶
이재 황윤석 선생은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실학자이자 다방면에 걸쳐 뛰어난 업적을 남긴 학자인데요. 선생은 당대의 대 유학자였던 미호 김원행의 문하에서 새로운 학풍인 실학을 접했습니다. 홍대용, 신경준과 교류하면서 성리학과 자연과학 등을 폭넓게 섭렵하여 석실서원학파의 중심인물이 되었습니다.
율곡 이이, 우암 송시열의 학문을 존중하며 노론 낙론계 학풍을 따랐습니다. 선생은 조선 후기 호남 실학을 대표하는 인물로 가장 대표적인 저서로 <이재난고>를 비롯해 <역대운어>, <이수신편>, <성씨운휘> 등 300여 권의 저서를 남겼습니다.
선생은 “군자는 한 가지 사물이라도 알지 못한 것을 부끄러워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박학의 학문체계를 지향했다고 해요. 선생의 학문적 관심 분야와 저술 분량으로 볼 때 프랑스 백과전서파의 거장 ’디드로(D.Diderot)’에 견줄 만하며 21세기에 도래할 지식 정보화 사회를 예견한 선각자임을 알 수 있다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2007년 국립 전북대학교는 ‘이재연구소’를 설립해 황윤석 선생의 학문과 사상을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한국 사회의 정신적, 문화적 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황윤석 선생의 고택은 초가지붕이었는데요. 기와를 덮으면 혈이 눌려서 집안이 좋지 않다는 풍문 때문에 초가를 얹은 것이라고 합니다. 초가라 더 친근감이 들었는데요. 소박하면서도 고즈넉한 분위기가 선생의 학문적인 삶을 보여주는 듯했습니다.
소박한 초가의 풍경 속에서 선생이 걸어간 배움의 길과 사색의 시간을 떠올려보며 인문학이 우리 삶에 어떤 울림을 주는지 다시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 보았습니다.
▼고창 황윤석 선생 고택▼
글, 사진 = 이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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