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의 효자 우달홍 장려는

전라남도 광양시 광양읍 인서리에 있습니다.

우달홍의 정려는

우달홍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1893년(고종 30년) 조정에서 명한

정려가 1897년에 세워졌습니다.

광양 인서리에는 우달홍 정려와 정려비와

세수제는 2007년 7월 4일

광양시의 향토문화유산 제1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인동 숲을 지나 돌담이 아름다운

골목으로 들어서면 ‘세수제’가 나옵니다.

읍성과 본정통을 이어주는 이 골목길은

원님이 지나다녔다 해서

원님골목으로 불렸다고도 하고

골목 입구에 벅수(장승)가 서있었다고 해서

벅수길이라고도 부른다고 합니다.

남문터는 광양읍성의 남문이 있었던

옛 터를 지칭하며,

인서마을의 골목길을 마을 사람들은

벅수길, 그 길이 제법 넓어 큰 길,

큰골목 또는 원님길이라고 했다고 하는데

오늘날은 좁고 작은 골목길입니다.

인서(仁西)마을의 인(仁)은

마을 주민들에게 유교사상을 널리 함양시키고

유교의 실천이념을 표방하는 뜻을 담고 있으며,

서(西)는 광양읍성의 남문에서 볼 때

성 밖 서쪽에 위치하는

마을이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마을에는 광양읍성과 관련된

특명지명이 아직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유교의 실천이념을 내세우는 인서 마을에는

특별한 효자의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습니다.

바로 효자 우달홍의 이야기입니다.

광양동초등학교 담벼락을 따라가 다 보면

바로 뒤에 광양향토문화유 산 1호인

효자 우달홍 정려비(孝子禹達弘旌閭碑)와

세수제(世修齋)가 나옵니다.

광양읍 인서리 151번지에 위치해 있는

이곳 정려는 1893년 당시 예조에서

우달홍에 대한 행장을 입안해

고종의 재가를 받아 정려를 하사하고,

동몽교관과 봉조대부로 증직

(죽은 뒤에 품계와 벼슬을 올림)을 내렸습니다.

아직도 한낮의 기온은 쌀쌀합니다.

여름이 그렇게 더웠는데

올겨울은 유난이 늦추위가 있습니다.

봄이 오는 길목에서 꽃샘추위가 매섭습니다.

이럴 때는 마음이 따뜻해지는

광양의 효자 이야기를 담아 가려고 합니다.

우달홍 세수제 앞마당의 매화도

꽃망울을 틔우고 있습니다.

예전에 이곳 우달홍 정려를 방문하였을 때는

골목이 좁고 일방통행에 불편하였는데

언제부터인지 골목 안 우달홍 정려 앞에

넓은 주차장이 생겼습니다.

효자를 방문하시는 분들에게

편안한 주차공간이 마음까지 편안하게 해줍니다.

이곳에는 지금도

우달홍 효자의 후손이 살고 있으므로

방문 시 사전 연락이나 주의를 살펴서

생활에 불편하지 않도록 하여야 합니다.

제가 방문하였을 때도 문이 잠겨 있어서

입구 대문에 적혀 있는 전화를 하니

외출 중이었습니다.

난감하게 기다리고 있는데

안쪽에서 사모님이 외출하시려고

나오시다가 만났습니다. 다행입니다.

먼저 안마당으로 들어갔습니다.

세수제입니다.

정려는 고종 32년(1895년)에 세워졌으며

단양우씨의 재실인 세수제는

고종 33년(1896)에 건립한 것으로 추정되며,

당시 예조에서 우달홍의 효행을 기록하여

정려를 세울 것을 왕(高宗)에게

품의하여 세웠습니다.

이곳 세수제에는

우달홍의 효를 기리는

예조입안서,우달홍 교지, 우달홍 정려기,

세수제기와 그의 효행을 기리는

여표 50여 개가 게시 ·보존되어 있습니다.

마루에 올라서니 사방에 현액이 가득합니다.

그중 특별한 현액, 현판이 눈이 보입니다.

물고기와 거북이 형상으로 만들어진 현판 위에

글씨가 빽빽이 적혀있습니다.

한결같이 효행을 기리는 글자들입니다.

마당에 비석이 두 군데 자리하고 있습니다.

세수제 사실 기록비가 하나 있습니다.

그 옆에는 우형목 선정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마당의 다른 곳에 있는 비석입니다.

효행을 기리는 흥감비

또 다른 비석은 병조참판,

정헌대부 사적비가 있습니다.

세수제의 뒷마당에 설치되어 있는

효각을 찾아갔습니다.

흙담으로 둘러싸인 작은 공간은 입구에 효각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 대문의 역할입니다.

효각안에 장려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정려비는 충신이나 효자, 열녀 등의

행동과 정신을 기리기 위해

그들이 살았던 마을에 세운

비석을 말하는 것으로

우달홍의 정려비는 1895년 고종이 내렸으며

광양시 향토문화유산 제1호로 지정돼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광양땅에는

옛부터 효자, 효부, 충신, 열사가

많이 나온곳입니다.

효각안으로 들어가니 튼튼한 돌로 만든

받침대 위에 돌로 만들어진

사각의 정려비 보호각이 서있습니다.

안쪽에 장려비가 조금씩만 보입니다.

자세히 보기 위하여 위에서

조금씩 내려가면서 읽어보았습니다.

우달홍 그는 누구인가?

효자 우달홍은 어버이 섬김이 지극하여

변을 맛보아 부모님의 병을 증험하고 위중하자

단지주혈(손가락을 베어 피를 흘려 넣어드림)

하였으며 상(喪)을 당하여서는

정성껏 장례를 치르고

3년 동안 여막에서 시묘살이를 하다

세상을 떠났습니다.

입춘이 지났지만 날씨가 춥습니다.

항상 광양의 매화가 필 때쯤에는

봄꽃을 시샘하는 꽃샘추위가 있습니다.

그러나 올해는 유별나게 추운듯합니다.

몸은 춥지만

광양땅의 효자 우달홍의 지극한 효심은

마음을 따뜻하게 해줍니다.

각박한 세상에서 이러한 효자들은

세상을 밝게 합니다.

오늘 광양읍 인서리 작은 골목 안

우달홍 정려에서 정려비와 효각을 돌아보면서

세상을 아름답게 밝게 보는

눈을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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