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문경 가볼만한곳 ,

'박열의사기념관'


문경 가볼만한곳 박열의사기념관을 다녀왔습니다.

박열의사는 2017년 '박열'이라는 영화를 통해서

대중적으로 더더욱 알려진 분입니다.

주소

경북 문경시 마성면 샘골길 44

운영시간

09:00~18:00

매주 월요일 정기휴무

전화번호

054-572-3396

관람료 무료

주차장 있어요.

문경 가볼만한곳 박열의사기념관은

근현대사의 한 중심에서 일제에 맞서 온몸을 던져

헤쳐 나가고자 했던 위대한 사상가요 행동가인

박열 의사의 항일독립정신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취지를 가지고 그의 애국정신과 구국 사상을

계승 발전시키고자 만든 곳입니다.

아나키스트 박열/운명의 승리자 박열 등

다양한 수식어가 붙는 분입니다.

박열 의사는 일제의 패망으로 1945년 10월 27일에

복역 중이었던 아키타 형무소에서 석방되었습니다.

일본의 항복과 함께 일본에 주둔한 미국 사령관이

'정치범 즉시 석방'이라는 포고령을 내려

이루어진 석방이었습니다.

당시 세계 감옥사에서 일죄일범으로

22년 2개월 1일 일수로 8,091일 동안 옥고를 치르고

살아남은 혁명가는 박열이 처음입니다.

더군다나 혹독하기로 유명했던

일본의 감옥 생활을 이기고

47년의 정년으로 심신이 건강한 상태로

생환한 그는 그야말로 '운명의 승리자'였습니다.

문경 가볼만한곳 박열의사기념관에서는

박열 의사의 생애와 발자취를 알 수 있습니다.

그의 일생을 세 부분으로 나눈다면

출생과 성장, 일본에서 민족독립운동,

감옥에서의 법적 투쟁으로 나뉩니다.

박열은 1902년 3월 12일 문경군 호서남면 모전리

(현 문경시 모전동 311번지)에서

아버지 박영수와 어머니 정선동의

3남 1녀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함창보통학교에 수학, 경성고등보통학교 사범과 입학

해방 후 박열 의사의 동반자 장의숙에

관한 내용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박열의 항일 사상과 민족정신

박열 선생은 지조와 신념을 지킨 사상가이며 혁명가입니다.

박열은 3.1운동에 적극 참여한 민족주의자로서

반제국주의와 범사회 주의 사상을 품고

일본으로 건너갔습니다.

직접적인 항일 투쟁을 하는 과정에서

한때 인간성에 대한 불신으로 극심한 좌절감을 겪으며

허무주의에 빠져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밑바탕에는 언제나 일제에 의해

학대받고 수탈당하는 조선 민중의 해방과

조선민족의 자주독립에 대한 의지가 깔려 있었어요.

박열은 항일 투쟁의 한 방법으로써

아나키스트가 됐을 뿐

그 자신은 철저한 민족주의자였고

그의 사상적인 기반은 행동하는 혁명적 민주주의였습니다.

박열 의사의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은

바로 동반자 가네코 후미코입니다.

영화 '박열'에서도 기네코 후미코에 만나는 부분부터

내용들이 시작이 됩니다.

1922년 2월경 정우영을 통해서

'조선 청년'이라는 잡지의 교정쇄를 보게 되었다.

기네코는 그 책에 실려 있던

박열의 '개새끼'란 시를 읽고 나서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감동을 받았다.

라는 부분이 나오는데 영화의 시작점이었습니다.

기네코 후미코는 천대받던 식민지의 남성인 박열을

사랑하고 존경한 일본인 여성입니다.

박열의 동지이자 아내이기 전에 포기할 수 없는

자신의 '자율성'을 천황제 국가의 폭력에서

지키기 위해 각고의 투쟁을 전개한 전사였습니다.

2015년 대통령에게 받은 훈장증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박열과 가네코와 깊은 관련이 있는

후세 다츠지 변호사의 생애에 관한 전시도 있습니다.

영화 '박열'에 나왔던 인상 깊었던

장면의 사진도 전시되어 있고 생전 박열의사와

가네코의 모습도 볼 수 있어요.

박열의사 일생에서 법적 투쟁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때의 장면을 모형으로 만들어놓은 것도 있어요.

박열은 동경 지방 재판소의

다테마츠 카이세이 예심판사와

3년 동안 (1923.10.22~1925.6.6)의 예심 심문과

1926년 3월 25일에 사형선고를 받을 때까지의

끈질긴 법정투쟁은 일본 제국주의에 직접 대항한

불굴의 투쟁으로써 항일 독립운동사에

하나의 역작으로 남아 있습니다.

간토대지진으로 인해 박열의사가 구금되었는데요.

1923년 9월 1일 오전 11시 58분

동경 앞바다에서 시작된 진도 7.9의 지진은

동경을 비롯한 주요 도시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어요.

지진과 그에 따른 화재로 상가가 밀집된 번화가는

철저하게 파괴되고 시민들의 생활 터전은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일본 정부는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민중 폭동과

극도의 혼란 상태를 우려해

계엄령을 선포하기에 이르렀으며,

조선인이 불을 지르고 우물에 독약을 푼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려 군부대와 경찰,

심지어 민간인들이 조직한 자경단이

6,000여 명의 조선인을 참혹하게 죽인

간토대학살을 자행하였습니다.

일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해외 여론을 의식한

일본 제국주의자들은 그 수습책으로

조선인 보호라는 명목으로

많은 조선인들을 잡아들여 구금하였습니다.

박열은 1923년 9월 2일 오후 5시,

후세 다츠지 변호사 사무실과 우익 인사인

기타 이키를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에

집 앞에서 경찰에게 검거당했습니다.

간토대학살이라는 날조극을 자행한 일제에게

실제로 '불령선인'의 폭동을 선동한

'적화선인'의 주인공으로 박열은 안성맞춤이었습니다.

문경 가볼만한곳 박열의사기념관에는

일제강점기의 고문, 감방 등에 관한 조형물이 있습니다.

일제강점기의 법정 체험 공간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박열의사의 항일 사상과 민족정신을 엿볼 수 있는

박열의사기념관 문경 여행 시 방문해 보세요.

아이들과 함께 방문하시면 더욱 좋습니다.


※ 위 글은 문경시 SNS서포터즈 기자단의 기사로 문경시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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