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은 정몽주 선생의 덕행과 충절을 기리기 위해

창건된 영천 임고서원을 다녀왔습니다.

임고서원 근처에는

포은유물관, 포은연수관, 충효관이 있습니다.

조옹대와 용연

포은 선생은 호수의 물고기를 보며

연비어약을 말씀하였으며,

여헌선생은 임고서원 중건상량문에서

'조옹이라는 대가 시냇가에 있는 것은

아마도 은거하신 초지일 것이다'라고 하셨으나,

후세 사람들은 포은 선생께서 낚시를 즐겼다 하여

조옹대라 부르고, 또 선생이 낚은 것은

물고기가 아니라 용이라고 하여

조룡대라 부르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로 인하여 연못은 용연이라 불렀는데

이번에 복원을 하고 울진 금강송 아래 자라던

토종 잉어을 분양받아 '금강'이라 이름 지은 뜻은

포은 선생의 시 '호중관어'의

'모든 것이 팔팔한 고기와 같네'에서 찾았다고 해요.

임고서원 은행나무

임고서원 은행나무는

서원이 부래산에 있었던 때부터

심겨 있던 나무입니다.

임진왜란으로 없어진 서원을 이곳에 다시 지을때

함께 옮겨 심었다고 해요.

현재 나이는 약 500년정도이며,

나이에 비해 건강한 노거수입니다.

나무의 크기는 높이가 약 30m,

가슴 높이의 둘레가 5.95m이고,

수관 폭은 동서 방향으로 약 22m,

남북방향으로 약 21m에 이릅니다.

임고서원 은행나무는 오랜 세월 조상들의 관심과

보살핌 속에 살아온 나무로,

생물학적 보존 가치가 인정되어

경상북도 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어요.

가을에는 노오랗게 물든 은행나무가 멋져서

사진 명소로도 알려진 곳입니다.

선죽교

북한의 국보 문화유물 제 159호인 선죽교는

개성 남대문에서 동쪽 약 1km 거리의

자남산 남쪽 개울에 있는 다리로

고려 태조 왕건이 919년 송도(지금의 개성)의

시가지를 정비할때 축조한 것으로 추정되는

길이 8.35m,너비 3.36m의 화강석으로

축조된 전형적인 널다리로

정몽주 선생이 후에 태종이 된 이방원의 일파에게

피살된 장소입니다.

원래는 선지교라 불렀는데,

정몽주가 피살되던 날 밤 다리 옆에서

참대가 솟아나왔다 하여 선죽교라 고쳐 불렀어요.

고려시대에는 돌난간이 없었으나

1780년(정조4) 정몽주의 후손 정호인이

개성유수로 부임하여 선조의 유적에

우마차가 다님을 안타깝게 여겨 난간을 설치하여

통행을 제한하는 대신 행인을 위하여

바로 옆에 좁은 돌다리를 가설하였으며

이번 성역화사업의 일환으로

개성의 선죽교를 실측하여 그 규모대로

이곳에 가설하고 한석봉이 쓴 선죽교 돌비석 또한

탁본하여 세우게 되었다고 합니다.

포은 선생의 단심가와 포은선생 자당이 지은

백로가가 있습니다.

임고서원은 고려말의 충신인 포은 정몽주 선생을

추모하기 위하여 조선 명종8년(1553)

부래산에 창건하여 사액되었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선조36년(1603)

현위치에 중건, 재사액되었습니다.

인조 21년(1643) 여헌 장현광 선생을 배향하고

정조11년(1787)에는 지붕 황보인 선생을 추향하였고

고종8년(1871)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65년 복원하였습니다.

정몽주의 덕행과 충절을 기리기 위해 창건된

영천 임고서원은 1919년 존영각을 건립하여

정몽주의 영정을 모시고 향사를 지내왔습니다.

포은 정몽주 선생은 고려 충숙왕 복위6년(1337)

현 임고면 우항리에서 일성군 운관의 아들로

태어나 공민왕9년(1360) 문과에 장원,

예문검열 등을 거쳐 성균대사성,문하시중 등을

역임하였고, 조전원수가 되어

왜구토벌에 공을 세웠으며

대명외교에도 큰 공을 세웠습니다.

지방관의 비행을 근절시키고 의창을 세워

빈민을 구제하였으며, 성리학에 뛰어나

동방이학지조로 추앙되었고

시문, 서화에도 뛰어났습니다.

고려삼은의 한 사람으로 기울어져 가는

고려의 국운을 바로 잡고자 노력하였으나

공양왕 4년(1392)선죽교에서 피살되었습니다.

조선 태종 원년(1401) 영의정에 추중되었고

익양부원군에 추봉되었으며

문충의 시호가 내려졌습니다.

임고서원 경내에는 사우, 존영각, 강당, 포사,

유사실 등이 있으며

사우인 문충사에는 정몽주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고

존영각에는 영정이 소장되어 있습니다.

강당은 중앙의 마루와 양쪽 협실로 되어 있고

원래 여러 행사와 유림의 화합 및

학문 강론 장소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서원 내 소장 중인 유물로는

정몽주의 영정3폭과 포은문집 목판 113판,

지봉유설 목판 71판, 포은집,

어사성리군서 11권 외에 200여권의 서적이

소장되어 있습니다.

영천여행 시 포은 정몽주 선생의 발자취를

한 번 밟아 보시기 바랍니다.

임고서원


※ 본 글은 새영천 알림이단 윤은정님의 기사로 영천시 공식 입장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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