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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예술가의 발자취를 따라 이응노 미술관, 옛 대전형무소 망루와 기억의터
대전 둔산대공원내 위치한 시립미술관에서는‘불멸의 화가 반 고흐’전시전이 한창입니다. 2025년 6월 22일 일요까지 진행되는 국내 유일의 회고전입니다. 그래서인지 주말이면 둔산대공원은 각지에서 모인 많은 인파로 활기가 넘칩니다.
이응노 미술관
2007년 5월, 대전광역시 이응노 미술관이 개관하였습니다. 개관전으로 [고암, 예술의 숲을 거닐다 파리에서 대전으로]가 개최되었습니다. 이응노 미술관은 프랑스 출신의 세계적인 건축가 로랑 보두엥이 고암의 문자추상 작품‘수(壽)’을 건축적으로 해석하고 상징화하여 탄생시켰습니다. 이응노 미술관은 2012년 재단법인 대전고암미술문화재단을 설립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1968년작 ‘구성’입니다. 작품 하단에 Ungno Lee 대전교도소에서라는 서명이 들어있습니다. 유럽에서 각광을 받던 이응노 화백은 1967년 동백림(동베를린)사건에 연루되어 한국으로 송환된 후 수감되었습니다. 한국전쟁 중 납북된 아들을 만날 수 있다는 희망에 독일 동베를린을 방문했으나 만나지 못했는데, 그것이 빌미가 되어 한국으로 연행된 뒤 간첩으로 수감되었습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화가에서 정치범으로 생의 밑바닥으로 떨어진 셈입니다. 그러나 예술혼을 불태워 300여점에 달하는 옥중작을 제작합니다. 재료는 도시락통, 부채, 밥풀, 간장 등이었습니다. 화백은 서대문구치소와 대전교도소, 안양교도소를 거치며 1년8개월 동안 수감생활을 하게 됩니다. 이 시기에 유럽의 많은 미술평론가, 미술관장, 동료작가 등이 이응노 화백의 석방을 바라는 탄원서를 우리 정부에 제출하며 구명운동을 벌이기 시작합니다. 결국 1969년 출소하여 프랑스로 돌아가 예술활동을 재개합니다.
1965년 이응노 화백이 제작한 작품 군상을 확대 복제하여 2020년에 미술관 앞 잔디밭에 설치하였습니다. 프랑스로 돌아간 이응노 화백은 한자와 한글 등 문자의 해체와 재구성을 통한 문자 추상을 본격적으로 시도합니다. 고국에서의 1년8개월간의 불행한 경험에도 불구하고 화백은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해나갔고, 유럽과 미국에서 작가적 위상을 높여나갔습니다. 1980년대에는 새롭게‘군상’시리즈를 발표하며 일본으로도 활동무대를 넓혔습니다.
이응노 미술관은 타 전시회에 비해 비교적 저렴한 관람료로 국내외 유수의 작가 전시전을 종종 마주할 수 있습니다. 매월 마지막주 수요일은 문화의 있는 날로 지정하여 무료관람이 가능하니 부담 없이 일상속에서의 예술을 느껴보는 건 어떨까요?
옛 대전형무소 망루와 기억의 터
바로 대전 중구 중촌동에 위치한 옛 대전 형무소입니다. 현재의 대전교도소(대전 유성구 대정동)를 1984년 3월 20일 이전할 때까지는 이곳에 있었습니다. 일제는 3.1운동으로 인해 수감자가 많아지자 부족한 수감 시설을 확충하기 위하여 1919년 대전 감옥을 개소하였습니다. 1923년에는 대전 형무소로, 1961년에는 대전 교도소로 각각 명칭이 변경되었습니다. 이후 대전 교도소가 이전하면서 대부분의 시설이 철거되고, 1987년 부지 일부에는 아파트가 들어선 이후 지속적인 개발 사업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일부 네비게이션에는‘대전형무소 테마파크’라는 명칭으로 지도에 표시되거나 검색됩니다. 이곳을 방문하시고자 하는 분들은 대전 중구 선병원 또는 대전 출입국외국인사무소를 찾으시면 됩니다.
선병원 정류장에서 보면 가장 눈에 띄는 탑이 있습니다. 반공애국지사영령추모탑입니다.1986년 6월 25일에 6.25사변 36주년을 맞이하여 추모탑이 세워졌습니다. [한밭 넓은벌 이 자리는 1950년 9월 공산괴뢰의 만행으로 처참하게 학살당한 반공 애국동포 2,857위 가운데 1,300위의 순절영령이 원통하게 잠들어 있는 현장이다. 이에 한국방송공사는 삼가 추모탑을 세워 통한의 아픔을 새긴다.] 상기와 같은 추모탑 비문이 적혀져 있습니다.
대전 형무소는 건립 당시 수도시설이 없어서, 식수를 사용하기 위해 4개의 우물을 만들었습니다. 대전 형무소 내 우물은 6.25 전쟁 당시 북한군에 의해 수감자들의 학살장소로 사용되었으며, 취사장 우물에서는 171구의 시신이 인양되었습니다. 현재 보존되어있는 우물 1개는 취사실로부터 10미터 떨어진 곳에 설치된 우물로 보여집니다.
평화의 나무 왕버들입니다. 이 나무는 대전 교도소가 이전되면서 교도소 안 연못가에 있던 것을 옮겨 심은 것이라고 합니다. 2025년 5월 현재, 나무의 수령은 약 75년 이상 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2018년 대전 형무소터 관광자원화 조성공사 중 발견된 담장의 일부분을 볼 수 있습니다. 담장 게시자료에는 대전 형무소의 역사를 되짚어 볼 수 있는 다양한 사진 자료가 게재되어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충남 홍성 출신의 이응노 화백이 6.25 전쟁 때 월북한 아들 관계로 동베를린에서 북한 공작원과 만난 것 때문에 반공법 위반으로 체포되어 1967년부터 1년 넘게 이곳에서 옥고를 치렀다고 합니다. 그런 아픈 사연이 이응노 화백과 대전의 인연이 되어 둔산대공원내 이응노 미술관이 자리 잡게 된 것입니다.
‘기억의 터’에는 도산 안창호 선생의 대전 형무소 수감 당시 옥중 서신을 읽어 볼 수 있습니다. 1933년 6월 1일, 아내에게 보낸 편지로 홀로 다섯 명의 아이를 키우며 고생하는 것에 대한 미안함과 특히 자식을 잘 키우기를 소망하는 아버지의 마음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특히 인생의 밟아나갈 최고 진리는‘사랑’이라고 강조하는 대목이 인상적입니다. 한국자유총연맹 자유회관 정문 옆에 위치한 옛 대전형무소 망루는 문화재자료 제47호로 등록되어 있습니다. 망루의 높이는 7.85미터이며, 건축면적은 30.5제곱미터입니다. 붉은 벽돌을 쌓아올려 원통형으로 만들어진 건축물입니다. 감시실로 올라가는 계단은 철재로 가파르게 만들었고, 중간에 환기와 채광을 위한 작은 창이 뚫려 있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이렇듯 옛 대전형무소와 기억의 터는 단순한 과거의 장소가 아닌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비추는 역사교육의 중요한 공간이며, 그곳에서의 억압과 고난 속에서도 꺽이지 않았던 양심수 또는 이응노 화백과 같은 예술가의 혼을 되새기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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