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우아한 곡선미를 자랑하는

돌다리가 또 있을까요?

충남 논산시 채운면 야화리 390


▲ 강경 원목교

논산을 상징하는 문화 유적 중에는 유명한 두 개의 다리가 있습니다.

원목교와 미내 다리입니다.

원목교는 은진과 강경을 이어주는 돌다리입니다. 원목이란 옛 이름인 역과 원이 합쳐져서 나그네의 휴게소 겸 주막을 이르는 말에서 다리의 이름이 유래 했습니다.

다리의 구조는 3칸의 무지개(홍예) 모양으로 다리의 역학 구조와 균형미를 고려해서 가운데 칸이 가장 넓게 만든 것 같습니다.

일반적으로 다리의 상판도 돌을 다음어 짜맞추는 경우가 많은데 원목교의 경우는 흙을 채워서 잔디가 자라고 있네요. 전반적인 구조를 보니 다리의 쓰임이 없어지면서 무너지고 소실된 돌을 복원한 표시가 납니다. 문화재로서 가치를 인정하고 보존하기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은 것 같네요.

▲ 원목교

공주와 전주로 가는 길목의 중요 교통 요지에 놓은 원목교는 예전에는 수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닿고 지나갔던 곳이었겠지요.

옛다리는 홍수가 지면 무너지고 떠내려가는 경우가 많아 새로 복원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원목교도 고종 광무 4년 (1900년)에 홍수로 떠내려간 다리를 민간인과 승려들이 돈을 갹출해서 다시 놓았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승려들이 건죽 기술자들이 많았습니다, 숭유억불 시대라서 승려들을 대규모 공사에 강제 동원하기도 했지만 다리를 놓는 공덕인 월천공덕은 부처의 세계로 가는 가장 큰 공덕 중에 하나로 여긴 승려들이 다리 공사만큼은 적극적으로 참여했기 때문입니다.

▲ 원목교

근대화 시기를 거치며 해로 교통보다 육로 교통이 발달하면서 우리나라의 지형도에는 많은 변화가 생기게 됩니다.

많은 교통의 요지에 있던 다리들에 서서히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지기 시작합니다. 사람들은 이제 철도를 놓이고 기차를 타고 다니게 되었지요. 길은 걸어다니는 곳이 아니라 기차와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곳이 되었습니다. 개울과 개울 사이에 놓이던 다리는 자동차가 건너는 큰 교량으로 규모가 커졌습니다.

▲ 원목교

다리를 건너는 사람들을 살펴주고 다리를 지켜주던 용신 따위는 옛 이야기 속에서나 남아있게 되었지요.

우리나라의 옛 다리에는 항상 이런 다리 지킴이인 용이나 상상의 동물들을 다리 한 가운데에 만들어 끼워 넣었지요.

안전 의식과 사람들의 소박한 바람을 절대자에게 의존하고 의탁했기 때문이었죠.

원목 다리에서도 여지 없이 용머리가 있네요. 절대 괴수처럼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보고 웃는 모습이 신비롭기도 하고 무섭기도 합니다.

▲ 원목교의 수호신

원목교의 수호신인 용이 바다에도 다리를 놓는 기술력으로 성장한 현대인의 오늘을 여전히 지켜보고 있습니다.

이런 다리의 수호신들과 인간의 염원이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연결되었겠지요.

▲ 겅경 미내다리, 이토록 우아한 곡선미를 간직한 돌다리가 또 있을까요?

선이 아름다운 이런 다리가 또 있을까요?

많은 매체에서 언급된 이 다리를 보면서 실제 모습을 보러 갈 기회를 노렸답니다.

친구와 이야기 하다가 우연히 미내 다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마자 무작정 찾아 갔습니다.

미내 다리에는 봄 볕이 무르익고 잡초들이 질긴 생명력을 자랑할 조짐을 보이고 있네요.

강경천의 채운교가 있는 강둑을 거슬러 올라가면 시멘트로 만들어진 다리가 놓여 있고 그 옆으로 작은 미내 다리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전국 교역의 중요한 거점이 되었던 강경 포구가 있던 곳으로 이 강을 미내 라고 부른 것에서 유래하여 '미내 다리' 라고 부른다.

위키 백과의 설명을 따라 강둑을 따라 올라간 곳에 사진보다 실물이 더 멋있고 우아한 미내 다리가 나타났습니다.

▲ 강경 미내다리 ,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 11호

이 정도면 돌을 다루는 솜씨가 예술의 경지에 올랐다고 할 수 있겠지요.

안내판의 설명에도 역학적 구조와 수학적 계산을 완벽하게 구현해서 만든 다리라고 합니다.

방금 다녀온 원목교의 확대판 같지만 상판의 곡선이 부드러운 곡선처리가 돌다리가 아니라 스펀지를 살짝 휘어 놓은 것 같습니다.

조선 영조 7년(1731년) 주민의 필요에 따라 강경촌 사람인 송만운이 주도하여 미내 다리를 놓았습니다.

일제 강점기 수로 정비에 따라 물길이 바뀌고 육로 교통의 발달로 미내 다리의 운명은 문화재적 가치만 남아있지요.

▲ 강경 미내 다리

강둑을 높게 쌓기 전 2 백여 년 간 다리 역할을 톡톡히 했을 미내 다리는 그 쓰임새가 줄어드는 동안 조금씩 무너져 내렸겠지요.

1998년 완전 해체하여 2003년 보수 정비하여 미내 다리는 다시 태어났다.

간간이 새로 끼워 맞추고 보수한 흔적때문에 고졸한 멋은 떨어져도 우아한 곡선미는 그대로 우리 곁에 다시 나타났다.

▲ 강경 미내 다리

원목교와 다른 미내 다리의 수호신은 호랑이 모습에 가깝다고 안내판에 나와 있다.

호랑이든 용이든 인간보다 우월한 존재가 다리와 다리를 건너는 사람들을 지켜준다는 믿음이 더 아름답지 않은가.

우리 나라가 물길을 막고 도로를 건설하는 토목 기술 강국이 된 배경에는 작은 하천에도 이렇게 우아한 다리를 놓던 원천 기술 덕분인 것 같다.

▲ 강경 미내 다리

다리 옆에 있던 '은진 미교비' 국립 부여 박물관에 보관 중이며 비문에 다리를 건립하게 된 배경이 씌여 있다.

옛 사람들은 다리를 놓으면 다리를 놓게 된 배경과 시대, 비용을 보탠 사람들의 이름까지 써 놓기도 했다.

논산을 대표하는 논산 석성수탕교와 원목교, 미내 다리까지 최근 옛 다리를 찾아가서 옛 사람들의 건축 기술과 숨결을 찾아 보았다.

논산 원목교와 강경 미내 다리

- 논산 원목교 : 논산시 채운면 야화리 390

- 강경 미내 다리 : 논산시 채운면 삼거리 541

- 관람료 : 무료

* 취재일 : 25년 4월 6일

※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 충화댁님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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