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산 연무대 문화유산 돌아보기
연무대는 육군훈련소가 논산훈련소 또는 연무대로 알려지다 보니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을 자연스럽게 연무대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논산시 연무읍에는 잘 알려지지 않는 문화유산들이 산재해 있습니다. 논산 시민이나 육군훈련소 훈련병들의 영외 외출시에 가족들과 함께 둘러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제일 먼저 견훤왕릉을 소개합니다. 충남 논산시 연무읍 금곡리 산18-3 에는 견훤왕릉이 있습니다.
견훤 왕릉은 무덤이 유난히 커서 왕묘라고 불렸답니다. 견훤왕릉으로 올라가는 길이 아지자기한 산책길 같습니다. 관광객이 많지 않아서 호젓하게 걷기 좋습니다.
나무들이 우거져 하늘이 잘 보이지 않는 계단길을 천천히 오르다 보면 저절로 힐링도 되고 공기가 맑아 기분도 상쾌해집니다.
견원왕릉은 기록에 보면 둘레가 83m나 되는 거대한 봉분이지만 문인석이나 무인석 하나 없이 상석 하나만 있고 검정색 왕릉비가 견훤왕릉을 지키고 있는데 이 비석도 근래에 세운 것이라고 합니다. 견훤왕은 후백제를 지금의 전주인 완산주에 도읍을 정하고 40여 년간 다스렸습니다. 말년에 큰아들 신검에게 왕권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고려 태조 왕건에게 몸을 의탁하고 고려와 후백제의 마지막 싸움에서 스스로 고려 편에서 싸워 자기가 세운 나라의 멸망을 눈으로 목격한 비운의 왕입니다. 견훤은 후백제가 망하자 고려 태조 19년 (936)에 황산불사에서 세상을 떠났으며 죽을 때 완산주인 전주 그립다고 전주 방향으로 묻었다고 전해집니다.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금곡리 286번지에는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병자호란 때 강화도 남루에서 스스로 분사한 만치당 김수남 선생을 추모하기 위하여 세운 금곡서원이 있습니다.
금곡서원은 조선 말기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요 근래인 1977년에 사당을 복원하였습니다.
경내의 건물로는 다른 서원과 마찬가지로 입구에 홍살문이 있고, 외삼문이 있습니다. 안으로 들어가면 동재와 서재가 있습니다.
돌로 만든 계단을 오르면 내삼문이 있고 그 안에 만치당 김수남 선생을 모신 사당이 있습니다.
김수남 선생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서 숙종 때 정려가 내려졌습니다. 정려는 나라에서 충신, 효자, 열녀 등을 그 동네에 정문을 세워 표창한 것입니다.
김수남 선생 정려각는 정면 1칸, 측면 1칸으로 4각 주초석에 둥근 기둥을 세우고 우진각지붕을 올렸습니다. 건물 안에는 정려가 세 개나 있습니다. 아마도 벼슬이 새롭게 추증될 때마다 만든 것 같습니다.
김수남 선생 정려 옆에는 충노 무작금의 불망비도 있습니다. 충노 무작금은 오랑캐가 쳐들어 온 상황에서도 목숨을 두려워하지 않고 주인인 김수남 선생의 시신을 고향까지 고이 모셔와 장사를 지낼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1668년 (현종 9년) 김수남 선생의 묘표를 세울 때 충직한 노비를 기리기 위하여 선생의 묘 옆에다 충노비를 세워 주었습니다. 무작금이라고 표기된 것으로 보아 ‘무작쇠’를 한자로 표기한 것으로 보입니다.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금곡리 256번지에는 서재필 박사 본가지가 있습니다. 서재필 선생의 자서전에 “어렸을 때 6~7년가량 살았다.”라고 하였고 “이 곳이 우리 할아버지 때부터 살던 나의 고향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전주 가는 1번 국도에서 오른쪽 왕릉로로 가면 도로변에 서재필 박사 본가지를 알리는 고동색 안내판이 보여 찾기 쉽습니다. 안내판에서 마을길을 따라 대략 200m 쯤 들어가면 본가지가 나옵니다.
서재필 박사는 1864년 외가인 전남 보성에서 태어나서 그 당시 충청남도 은진군 구자곡면 화석리 지금 이곳에 와서 부모 형제와 친척이 모두 여러 대에 걸쳐 이곳에서 살아왔다고 합니다.
서재필 박사는 우리 나라 근현대사의 굵직한 선을 남기신 분입니다. 개화기 가장 큰 사건인 갑신정변에 가담했다가 실패하고 미국으로 망명하였습니다.
갑오경장 이후 귀국하여 1896년 《독립신문》을 창간하였고, 이승만 등과 독립협회를 결성하였으며 사대주의 정신을 혁파하기 위해 독립문을 세웠습니다.
서재필 박사 본가지에는 뒤로 대나무가 우거져 있고 지금은 창고채 주춧돌과 안채 주춧돌만 남아 있습니다.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고내리 1087-35에는 봉곡서원이 있습니다. 조선시대 문신인 이계맹, 이순인, 남명한, 진극효, 남두건 선생을 모신 사당입니다.
처음에는 전북 여산에 숙종 38년 (1712년) 송시열과 이호민선생의 발의로 사우로 건립되었습니다.
고종 5년 (1868년) 서원 철폐령에 의해 철폐되었는데 1899년 봉곡서원 터에 단을 설치하여 봉곡단소를 운영하다가 1965년 이곳에 현재 서원의 위치를 정하고 연차적으로 건물을 세웠습니다.
송시열 선생이 발의한 것으로 보아 기호계 성향이며 연산에 있는 돈암서원과 돈독한 관계가 있었던 듯합니다. 봉곡서원 역시 홍살문 뒤에 외삼문이 있고 동재와 서재 그리고 내삼문이 있으며 사우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입니다.
마지막으로 연무대에는 강경선 철도가 있었습니다. 강경선 철도는 자금은 모두 폐역이 된 채운역과 연무대역을 잇는 노선이었는데 건설 당시에는 면회객들을 위해 정기 여객열차가 운행했다고 합니다.
논산시 연무읍 연무대에는 우리나라 굵직한 역사의 현장입니다. 역사가 살아 있는 곳입니다. 답사객과 역사를 전공하는 학생들의 발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앞으로 육군훈련소 면회객들도 관심을 갖고 둘러보시길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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