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일 전
푸르름이 어우러진 명재고택
푸르름이 어우러진
명재고택
논산 명재고택은 조선시대 전통가옥으로 전국적으로 유명한 곳입니다.
지금 명재고택은 여름의 길목에서 푸르름이 가득해서 논산 11경 중 제8경으로 손색이 없습니다.
논산 명재고택은 조선 숙종시대에 학자이면서 교육자로 유명한 명재 윤증 선생의 고택입니다.
이곳은 조선 중기 호서 지방의 대표적인 양반 가옥으로 상류층의 살림집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명재 선생께서는 이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작은 집을 짓고 사셨습니다. 사시는 집이 너무 초라해서 명재 선생을 존경한 제자들이 십시일반 거출하며 지어 드린 집입니다.
그런데 명재 선생은 이 집이 자신에게 너무 과분하다고 하여 들어와 사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집은 명재고택 (明齋故宅)으로 옛 고(古)자 가 아니고 연고 고(故)를 쓴다고 합니다.
명재 고택은 대문이 없습니다. 사랑채는 담장 없이 마당과 열린 상태이며 안채로 들어가는 중문만 있습니다.
명재고택 입구에는 연못이 있어서 고택의 풍광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 줍니다. 이 연못은 사각형으로 되어 있고 연못에는 원의 모양을 한 작은 섬이 있습니다.
여름이면 여러 그루의 배롱나무가 붉게 피어나 명재고택의 주위를 아름답게 꾸며 준답니다.
명재고택에 들어서면 화려하지는 않으나 그렇다고 누추하지 않은 명재고택 사랑채가 나타납니다.
명재고택의 사랑채는 조선시대 양반의 품위를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화강암으로 아랫단은 4단, 위단 2단의 2층 기단 위에 간결하고 견실하게 지었습니다. 정면 4칸으로 한 칸은 누마루 두 칸은 방 그리고 한 칸은 마루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사랑채 팔작지붕 처마는 끝이 하늘로 날아가듯 높은 기상이 나타내고 있으며 바라보면 볼수록 화려하지 않으면서 단정한 느낌을 줍니다.
사랑채 앞에 있는 널찍한 마당이 있어 답답함이 전혀 없습니다.
그 옆으로 요 근래에 초가집이 두 채가 있는데 한 채는 초가 삼간집입니다.
또 한 채는 노서서재라는 현판을 달고 있는 작은 도서관으로 쓰이는 건물입니다. 노서는 명재 선생의 아버지이며 우암 송시열과 동문수학을 한 윤선거 선생의 호입니다.
명재고택의 아름다움은 장독대입니다. 반원형으로 배열되어 있는데 명재 고택과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보호수로 지정된 400년 자란 느티나무가 호위하듯 서 있어 아름다움은 배가 됩니다.
명재고택 우물은 지금도 깨끗한 물이 나옵니다. 조선시대는 남녀유별이라 우물가에 향나무를 심어 여인들이 물가에서 있을 때 나뭇가지가 여인들을 가려주는 역할을 했답니다.
사랑채 앞에는 돌에 표준일영 (標準日影)이란 글자를 새긴 해시계가 있습니다.
그리고 사랑채 창문의 비율은 16 : 9 로 이루어져 있어서 지금의 TV 모니터 비율과 같습니다.
앞에는 사랑채에서도 산의 모습을 볼 수 있게 작은 산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은행나무 나뭇가지를 편 사이로 보이는 명재고택 사당은 조상의 제사를 지내는 곳답게 엄숙해 보입니다.
신기한 것은 돌로 만든 솟대가 있는데 모든 백성들이 잘 먹고 잘 살기 바라는 마음이 담겨져 있는 것 같습니다.
명재고택에는 사색의 길이 있습니다. 고택만 보고 가기 아쉬운 마음을 달래주는 사색의 길이 있습니다.
명재고택 앞에는 열녀 공주이씨 정려가 있습니다.
공주 이씨는 명재 선생의 어머니입니다. 병자호란 때 강화도가 적에게 함락되자 오랑캐에게 잡혀 죽느니 스스로 목숨을 끊은 분입니다.
공주이씨에게 정경부인을 증직했다는 정려가 안에 있습니다.
화려하지도 그렇다고 누추해 보이지 않는 명재고택을 구석구석 둘러보면 조상의 지혜를 배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시간과 체력에 맞게 천천히 사색의 길을 걸으면 생각도 정리하고 힐링도 되고 건강까지 얻을 수 있습니다. 시간이 허락할 때 여유를 갖고 걸어보기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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