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시간 전
평택시민기자단 | 평택 역사인물 탐방, 왜구를 토벌한 이대원 장군묘 및 신도비
평택 바람길숲 인물의 숲에는 총 10명의 평택 위인이 소개됩니다. 정도전, 신숙주, 원균, 조광조, 홍익한 등 역사책에서 많이 접했던 인물이네요. 그중 개인적으로 낯선 인물이 있었으니 이대원이었습니다. 역사적 호기심으로 유적지를 찾아갑니다.
이대원은 조선 중기의 무신으로 평택시 포승면에서 출생한 인물로 묘와 신도비 사당이 보존됩니다. 고려에서 조선시대로 이어지는 우리나라 역사에 많이 등장하는 단어가 있으니 바로 왜구입니다. 전근대에 활동했던 일본의 해적 집단을 지칭하는데요, 고려 말부터 조선시대까지 무수한 침략이 있었습니다. 고려 멸망과 조선시대 섬을 비우는 공도정책에도 큰 영향을 미쳤네요. 그러한 침탈은 일본 정규군의 임진왜란으로 이어졌었습니다. 이대원은 그러한 침탈의 시대에 등장했던 영웅 중 한 분이었습니다!
집에서 출발할 때 맑았던 하늘은 시나브로 흐려지더니 도착할 즈음에는 비가 내렸다 그치기를 반복합니다☔ 5월은 나들이하기 좋은 계절인데 주말 즈음으로 비가 자주 내립니다. 도로에서 벗어나 달리다 보면 이대원 장군묘 이정표와 함께 여러 개의 비석이 길을 안내합니다. 울창한 숲길을 통과하니 제법 넓은 벌판 사이로 묘역 및 신도비가 나타납니다.
이대원 장군묘 및 신도비는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된 문화유산으로 보존 관리됩니다. 홍살문을 시작으로 신도비와 사당이 있고 오른쪽으로 재실 충렬재와 뒤편 묘역으로 구성되었네요. 이곳은 제례를 준비하는 재실입니다. 앞면 4칸 옆면 2칸 30평 규모입니다. 실내는 문이 굳게 닫혀서는 열린 구조인 마루에 걸터앉아 잠시 비를 피합니다.
재실 충렬재는 넓은 벌판에 자리 잡아 여유가 느껴지고 배나무 농장과 묘역이 바로 맞닿았습니다. 건물 사이로 이대원 장군 묘 및 신도비와 장군에 대한 안내판이 설치되어 역사적 설명을 합니다. 장군은 1566년 평택시 포승면 내기리에서 출생하여 18세에 무과에 급제하였습니다. 송조 22년인 1587년 전라도 고흥 지방의 녹도만호로 재직 중 왜구와 싸우다 장렬히 전사하였네요.
모역은 여러 기의 봉분으로 구성되었는데 그중 3개의 봉분이 나란히 하는 곳이 장군의 묘역이었습니다. 중앙이 장군이요 좌우로 부인의 묘가 안내됩니다. 이대원 장군은 1587년 2월 10일 지금의 고흥 앞 바다 손죽도 해상에 왜선 20여 척을 대파하는 등 큰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2월 17일 왜군은 다시 침략하였고 준비가 안된 상태였으나 직속상관의 잘못된 명령을 받고는 맹렬히 싸우다 전사하였네요. 당시 죽기를 각오하고는 손가락을 끊어 피를 내고 속적삼에 절명시를 써서 고향 본가로 전한 것이 오늘날까지 전해집니다.
홍살문 너머로 신도비와 사당이 나란히 합니다. 홍살문은 능, 원, 묘, 궁전, 관아 등의 정면에 세웠던 붉은 칠을 한 문으로 신선한 곳, 예를 갖춰야 하는 공간임을 알립니다. 보호각으로 보호되고 있던 신도비에는 무신 이대원 장군의 공적이 기록되었습니다. 비문이 남구만이 짓고 조상우의 글씨로 1699년 숙종 25년에 건립되었습니다. 글씨도 선명하고 보존상태도 양호합니다.
사당은 확충사로 외삼문에는 '충렬공사우'라는 현판이 걸렸습니다. 앞면 3칸 옆면 1칸 12평 규모입니다. 일반적인 규모이나 재실이 상대적으로 큰 규모로 더욱 소박하게 느껴졌습니다. 문이 굳게 닫쳐 확인할 수는 없었으나 확충사 안에는 이대원 장군 영전고 신위 해전도가 모셔졌다 안내됩니다. 큰칼을 옆에 찬 동상은 용맹한 기개가 느껴집니다.
평택 바람길숲 인물의 숲을 걸으며 알게 된 이대원 장군은 조선 중기 왜구를 토벌했던 용맹한 무장이었습니다. 인근을 지날 때면 잠시 들러 숭고한 정신을 기려보세요. 이대원 장군 묘역과 사당 탐방을 통해 조선시대 왜구의 침략 역사를 만납니다.
▼이대원 장군묘 및 신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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