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일 전
김대건 신부 착지처, 익산 나바위 성당과 나바위 성지
김대건 신부 착지처
익산 나바위 성당과 나바위 성지
한국 카톨릭은 오랫동안 성리학을 국가의
통치이념으로 통치하던 조선 후기부터 100여 년간
시작된 천주교 박해를 통해 수많은 사람의 순교와
고난 속에 꽃피워온 종교입니다.
익산의 첫 취재지로 떠난 익산의 나바위 성당은
한국 최초의 천주교 사제이자
그 역시 1846년 병오박해로 순교한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가 마카오에서 유학해
사제로 서품되고 배를 다시 고국의 땅을 밟은 곳이
이곳 나바위 성지입니다.
나바위란 너른 바위가 펼쳐져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지명을 따 지어진 나바위 성당은
천주교인들에게 성지가 되는 곳으로
국내 순례길 명소 중 한 곳이기도 하며
저와 같이 교인이 아니더라도 한국사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꼭 가볼 만한 곳이기도 합니다.
나바위 성당의 주차장에 도착했습니다.
차량을 주차한 뒤 피정의 집부터 시작해
피정의 집, 망금정, 본당을 따라
김대건 신부 착지를 가보기로 합니다.
김대건 신부는 이곳 나바위 성지에 도착해
조선에 입국했으며 이후 용인에 있는 은이공소로
넘어가 미사와 고해성사 집전 등을 수행했습니다.
페레올 주교는 김대건 신부에게 선교사들이
조선으로 입국할 수 있는 길을 알아볼 것을
지시하였으며 김대건 신부는 중국 어선들이
조기잡이를 위해 조선 해안으로 온다는 사실을
알아내 조선 해안으로 개척할 수 있는 지도를
작성해 편지를 부치다가 그만 발각되고 맙니다.
서양 필기체를 쓰고 읽을 줄 아는 능력에
감탄한 조정은 김대건 신부에게
배교(천주교를 버리는 일)를 하면 벼슬도 내리고
후한 벼슬을 내린다고 회유하였으나
이내 거부하였고 새남터 형장에서 순교하였습니다.그가 조선에 온 지 불과 13개월 만입니다.
성모상 역시 1830년 프랑스 7월 혁명 기간 중
파리 까리타스 수녀원 본원에서 카타리나 수녀에서
발현한 성모 마리아상이라고 합니다.
성모상 아래에는 김대건 신부가 라파엘 호가
폭풍으로 여러 번 좌초의 위기를 맞을 때마다
성모 마리아 상본을 들고
일행을 격려한 편지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
나바위 성당은 해발고도 40미터 남짓의
작은 동산인 화산이란 곳에 있는 성당으로
화산의 정상에 이르면
김대건 신부의 순교비가 세워져 있으며,
금강 황산포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망금정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망금정 아래 넓게 펼쳐진 평야 지대와
금강의 물줄기가 내려다보이는데
과거에는 망금정 아래까지 금강이 넘실거렸으나
1925년 일본인들이 이 일대를 간척하면서
금강 줄기가 바뀌어 지금은 비닐하우스
뒤덮인 평야 지대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저 멀리 금강이 흐르고 뻥 뚫린 경치를 보며
2월 초중순 여지없이 내렸던 폭설로 인해
두문불출해야 했던 답답한 마음을
여기서 어루만지는 것 같습니다.
망금정에 올라 경치를 바라보니
왜 100여 년 전 주교님이 금강이 흐르는 이곳을
보며 감탄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바위성당이 설립된 이후 초대 대구 교구장인
드망드 주교가 화산에 올라 종종 피정(일상에서 벗어나 조용한 곳에서 종교적 수련을 하는 것) 하였는데
금강이 펼쳐지는 이곳에서 아름답고
조용한 분위기에 감탄하였다고 합니다.
1915년 주임신부인 요셉 베르모렐 신부가
피정하는 주교님을 위해
“아름다움을 바란다”라는 뜻으로
망금정을 지었다고 합니다.
한옥과 양옥이 한 데 섞인
독특한 모양을 가지고 있는 본당에 가봅니다.
여러 곳을 취재 활동을 하며 한옥과
일본식 가옥이 혼재된 적산가옥이라든지
일본식 사찰 양식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군산의 동국사와 같은 건물은 본 적은 있어도
이렇게 나바위 성당과 같이
독특한 성당 건물은 처음 보는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순수 형태의 한옥 건물로
지어졌다고 알려지는데,
이후 여러 번의 중축을 통해 한옥과 양옥의 특징이
절충된 오늘날의 모습으로 가지게 되었습니다.
서로 다른 문화라 할지라도
이들이 교류와 문화의 융합을 통해
새로운 문화로 탄생하곤 하는데
비단 우리나라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은 아닙니다.
중국의 취안저우에는 당나라 때부터 무역항으로
유명해 이곳 무역을 통해 찾은 무슬림에 의해
세워진 천년 넘은 이슬람 사원인
청정사(淸淨寺)가 있는 것처럼 말이지요.
1906년에 처음 지어진 나바위 성당은
한옥 건물이라는 전통 양식에 서양의 건축양식이
결합하여 오묘한 아름다움을 자아내는 곳으로
그 독특함과 가치를 인정받아 지난
1987년 7월 18일 ‘화산 천주교회’라는 명칭으로
사제관과 함께 사적 제318호로 지정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본당을 떠나 김대건 신부의 착지가 있는 십자가의 길을 따라가 보겠습니다.
김대건 신부 착지에 도착하니 바위가
마치 ‘십(十)’자 모양으로 갈라진 ‘십자바위’가
눈에 들어옵니다.
이 자리에 김대건 신부가 사제 서품받은 후
바다를 건너 처음으로 도착한 착지가
바로 이곳 나바위 착지를 말합니다.
착지에는 당시 라파엘 호를
재현한 모형이 세워져 있습니다.
데크로 만들어진 계단을 따라 오르면
가까이에 배를 둘러볼 수도 있습니다.
라파엘호는 1845년 8월 31일 중국 상해에서
페레올 주교, 다블뤼 신부, 현석문 가롤로,
최형 베드로, 이재의 토마스를 비롯한
11명의 조선 신자들과 함께
포교지인 한양을 향해 항해하였습니다.
그러나, 폭풍우와 풍랑을 만나 돛대와 키가 파손되어
표류하다가 제주도 용수리 해안이 도착하게 되는데
사람들의 발각을 비해 배를 숨겨가며 정비하며
마침내 1845년 10월 12일 밤 8시에
이곳 나바위 화산 언저리에 도착하게 됩니다.
김대건 신부는 순교 이후
1925년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시복되었으며,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성 되었습니다.
나바위 성지는 천주교인에게는 그를 기리며
그가 머물렀던 성지를 순례하는
주요 순례길 코스이기도 합니다.
비단, 교인이 아니더라도 조선에서 서학이라는
이유로 박해당하며 무고한 죽임을 당해야 했던
수많은 조선인의 아픈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곳입니다.
역사적인 장소와 더불어
독특하고 아름다운 성당의 건축양식과
망금정에서 내려다보는 이름다운 금강이 보이는
평야 지대를 감상해 보는 것도
나바위 성당을 찾는 이유가 될 것 같습니다.
익산을 여행하고 계신 분이라면
한 번쯤은 들러볼 것을 추천드립니다.
#익산 #익산여행 #익산여행지추천 #익산여행 #익산나바위성당 #나바위바위 #익산성지 #익산종교여행 #익산역사여행 #김대건신부 #익산성지순례
- #익산
- #익산여행
- #익산여행지추천
- #익산나바위성당
- #나바위바위
- #익산성지
- #익산종교여행
- #익산역사여행
- #김대건신부
- #익산성지순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