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가요 쌍화점의 무대

쌍구정

‘쌍화점(雙花店)’은 고려 25대 충렬왕(재위:1274~1308) 때 지어진 고려가요입니다. ‘악장가사(俗樂歌詞)’와 ‘악학편고’에 거의 유사한 내용으로 총4장으로 구성된 가사 전문이 한글로 실려있고, 『고려사』 악지(樂志)에는 제2장만이 발췌되어 ‘삼장(三藏)’이란 제목으로 한역되어 전해집니다.

[악장가사]

이미지 출처: 규장각 원문검색서비스(https://kyudb.snu.ac.kr)

남녀간 사랑이 자유스러웠던 고려시대에 불려진 노래들이 조선시대에 이르러 유교적 사회규범의 확립으로 ‘남녀상열지사(男女相悅之詞)’로 취급되었는데요. 이 중 쌍화점은 남녀상열지사를 다룬 대표적 고려가요입니다. 쌍화점의 노래 가사는 상징과 은유적 풍자 수법으로 표현되고 있으며, 고전문학적 가치가 매우 높다고 평가되고 있는데요.

다른 고려가요와 마찬가지로 쌍화점도 악무(노래와 무용)와 더불어 공연되었을 것이고 기록에 의하면 이 노래가 남장별대(男粧別隊)에 의해 불렸다고 하는 바, 연극적인 성격이 강하였을 가능성도 제기됩니다. 남장별대란 개경의 무당과 관비 가운데 노래와 춤을 잘하는 자를 뽑아 궁중에 소속시키고 이들에게 남자 분장을 하고 궁중에서 공연하게 한 놀이패를 말하며, 이들은 노래기생, 춤기생과 얼굴기생으로 나뉘었다고 합니다.

쌍화점의 1장에는 ‘회회아비’, 2장에는 ‘삼장사 주지’, 3장에는 ‘우물 용’, 4장에는 ‘술집 아비’가 나오는데요.

고려가요 쌍화점의 제1장은 제목 그대로 만두가게(雙花店)란 뜻입니다.

“만두집에 만두 사러 갔더니만

회회아비 내 손목을 쥐더이다

이 소문이 이 가게 밖에 나고 들면

다로러거디러 조그마한 새끼 광대 네 말이라 하리라

더러둥셩 다리러디러 다리러디러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그 잠자리에 나도 자러 가리라

위 위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그 잔 데같이 답답한 곳이 없다”

여기서 회회아비는 색목인, 즉 이슬람계 몽고인(위구르족)인 서역 상인을 뜻하는데요. 쌍화점 노래에 회회아비가 등장하는 것은 당시 서역과의 교류가 활발하였음을 말합니다만, 한편으로는 충렬왕 재위 당시 색목인과 고려 여인들사이에 여러 사건들이 발생했다는 것을 시사해주고 있습니다.

[위구르족]

이미지 출처: 나무위키(https://namu.wiki/)

일각에서는 회회아비가 충렬왕비가 된 원나라 제국대장공주의 시종관으로 고려에 따라와 높은 관직에까지 올랐던 삼가(三哥)를 말한다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훗날 장순룡이란 이름을 하사받은 그는 고려 여인과 결혼하여 고려에 귀화한 무슬림이었는데요. 그의 사위인 이곤과 충렬왕의 애첩인 무비의 간통사건이 발생했고, 이 사건을 빗대 노래한 것으로도 추측해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쌍화점은 순창과 무슨 관련이 있을까요?

원나라 세조 쿠빌라이의 사위이자 사냥을 즐기고 방탕한 생활을 했다고 전해지는 충렬왕은 또 다른 친원세력을 형성했던 세자(충선왕)의 지지세력과 지속적인 정쟁을 계속했습니다. 충렬왕의 대표적 최측근 세력으로 송린(宋璘)이 있었는데요. 그는 본관은 여산으로 고려후기 우부승지, 지신사 등을 역임한 문신입니다. 그는 태인(당시 태산현)을 산천(山川) 숭배지로 삼고 기도했다고 하는데요. 산신전을 순창군 쌍치면의 명산인 국사봉에 있는 삼장사(三藏寺)에 세우고, 수신(水神, 용왕)인 ‘쌍거북’ 신에게 기도를 올리던 곳이 국사봉 아래에 흐르는 냇가(추령천)에 있던 쌍구정(雙龜停)이라고 합니다.

이곳은 현재 정읍시 산내면과 순창군 쌍치면의 접경지역입니다. 태산의 송씨 일가가 몽고 황실과 혼인 관계를 맺고 충렬왕 시절 정치의 중심세력으로 성장하면서, 다수의 이 지역 주민들이 개성으로 이주하게 되는데요. 이를 계기로 이곳 마을의 이름과 쌍화점 노래인 ‘삼장’이 널리 궁중과 도성내에 알려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즉, 쌍구정에서의 산천 축제 노래였던 쌍화점이 충렬왕 때 궁중에까지 전해지고, 이후 공민왕 시대에 대유행하여 정사(正史)인 『고려사』에 기록되는 노래가 되었다는 것이지요.

이 지역 사람들의 개경 이주는 충렬왕의 애첩으로 유명한 무비의 출신지가 태인인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아 보이는데요. ‘미모를 비할 사람이 없다’ 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 무비(無比)는 본래 태인에 살던 시씨(柴氏)의 딸로 궁중에 뽑혀 들어간 후 왕에게 총애를 받았던 여자입니다. 충렬왕은 사냥터였던 도라산에 갈 때는 항상 그녀를 데리고 다녀, 사람들은 무비를 ‘도라산’이라고 불렀다는 얘기도 전해집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총4장 구성의 쌍화점과는 달리, 『고려사』에는 제2장 ‘삼장’ 만 실려있는데요.

[고려사]

이미지 출처: 규장각 원문검색서비스(https://kyudb.snu.ac.kr)

“삼장사(三藏寺)에 등불을 켜러 갔더니

사주(社主)가 내 손을 움켜쥐더이다.

혹시라도 이 말이 절 밖으로 나간다면

상좌(上座)에게 바로 네가 한 말이라고 말을 하리라.”

한편, 고려사 악지에는 ‘삼장’과 함께 ‘사룡’이 실려있는데요. 이 두 노래가 충렬왕 때 만들어진 궁중음악이라고 부연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사룡’의 “구렁이가 용의 꼬리를 물고 ‘태산’을 넘어간다”는 가사가 “쌍구정(삼장) 처녀가 송린을 따라 태산(현)으로 간다”는 내용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지나친 해석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쌍구정이 고려가요 쌍화점의 주 무대였다는 생각이 좀 더 구체화되는 듯 합니다.

고려시대 쌍구정의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으나, 태인의 토착세력이었던 송씨 일가가 송나라에서 유행하던 ‘유상곡수연(流觴曲水宴)’을 즐겼다는 점에서 태인(태산현) 근방에서 자연경관이 수려하고 유상곡수연을 즐길만 한 곳으로 쌍치의 추령천 냇가를 택했을 개연성은 충분합니다. 유상곡수연이란 신라때 경주 포석정에서 행해진 ‘흐르는 물에 용왕님께 올리는 기도문을 시로 읊거나 써서 물에 띠우는’ 방식의 가무연회를 말합니다.

추령천

이와 같이, 당시 고려인들은 추령천변 큰 바위 근처에 정자를 짓고 흐르는 계곡물에 잔을 띄워 가무와 연회를 즐겼을 것으로 생각되는데요. 통일신라(남북국)시대 태산군수였던 최치원과 조선시대 태인현감 신잠 등도 쌍구정에서 풍류를 즐겼다는 이야기도 있고, 일제강점기 이전까지 칠보가 태인보다 중심지였으니 이들이 한 고개만 넘으면 닿을 수 있는 추령천까지 행차했을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고려가요 쌍화점은 당시 시대상을 풍자적으로 노래하고 있는 개인이나 집단의 창작물입니다. 고려가요는 내용의 선정성으로 인하여 발생 배경이나 이를 향유했던 대상 등 분석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는데요. 따라서 여러 해석이 가능하지만, 다양한 등장인물과 대화자가 존재하는 형식 때문에 궁중 연회 목적으로 활용되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아쉽게도 쌍화점에 등장하는 삼장사가 직접적으로 쌍구정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었다는 역사적 근거를 발견하기는 어려운데요. 다만, 쌍구정을 고려속요 쌍화점의 무대로 추론해보는 것은 쌍화점이 탄생할만한 지리적·역사문화적 여건을 추령천변에서 충분히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쌍구정에 오르기 위해서는 쌍치면 소재지에서 정읍시 산내면 방향으로 이어지는 국도30호선 도로변에 있는 삼장마을 삼장교를 지나 천변길을 따라 왼쪽으로 조금만 가면 됩니다.

삼장교

추령천을 따라 계곡물이 흐르고, 냇가 주변에는 고려시대 당시 유상곡수연과 같은 연회를 즐겼을 만한 장소로 여겨지는 널찍한 암반들도 보입니다. 바위 위에는 누군가 새겨놓은 글씨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지난 여름 이 곳 주민분들과 방문했을 땐 냇가에 크고 작은 수목들이 우거져 있었는데, 겨울이 되니 추령천에 흐르는 계곡물 색이 더욱 짙어지고 있습니다.

쌍구정 근처의 바위들

오솔길을 따라 걷다 보면 채 5분도 되지 않아, 나무 계단 너머로 쌍구정이 어서 오라는 듯 손짓합니다.

계단을 오르기 전 정자 아래에 있는 커다란 암벽에 새겨진 암각서를 찾아보는 것도 재미난 일인데요. 한자로 새겨진 쌍구정이라는 글씨는 이곳이 예전 쌍구정 터이었음을 증명해 줍니다. 또한 쌍구정이 구한말 의병들의 은신처였다고도 전해지는데요. 정자 옆 바위에 새겨진 암각서의 내용으로 보아, 일제강점기 시절에도 주민 15명이 이곳에서 뜻을 모아 모임을 결성하고 쌍구정을 교류 장소로 삼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고려시대 당시 연회에 걸맞게 수려했을 것으로 상상되는 과거의 정자 모습과는 달리 현재의 쌍구정은 아주 단아합니다. 한국전쟁 때 아군에 의해 불태워진 것을 지난 2019년 6월 현재의 모습으로 복구되었다고 하는데요. 현장에서 발견된 주춧돌 4개는 인근 삼장마을로 옮겨 보존되고 있습니다.

유상곡수연은 추령천변에서 행해졌을 것으로 생각됩니다만, 정자위에서 내려다 보이는 추령천의 도도한 흐름과 굽이굽이 추령천을 품고 있는 국사봉이 합작하여 만들어 내는 풍광은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또 다른 아름다움을 선사할 것입니다.

국사봉과 쌍구정 주변 풍경

쌍구정

순창군 쌍치면 오봉리 산4번지 인근

{"title":"고려가요 쌍화점의 무대 '쌍구정'","source":"https://blog.naver.com/sunchang_story/223699927671","blogName":"순창군 공..","blogId":"sunchang_story","domainIdOrBlogId":"sunchang_story","nicknameOrBlogId":"순창군","logNo":223699927671,"smartEditorVersion":4,"meDisplay":true,"lineDisplay":true,"outsideDisplay":true,"cafeDisplay":true,"blogDisplay":tr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