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참혹했던 순교지

충남 공주시 교동 산 1-3


공주 '황새바위'는 한국 천주교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 장소이다. 조선 후기 천주교 박해의 중심지로, 많은 신자들이 순교의 길을 걸었던 곳이다.

‘황새바위’라는 이름의 유래에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첫 번째는 이곳에 황새들이 자주 서식하여 붙여진 이름과 천주교 신자들이 박해받던 시절, '사학죄인'이라는 이유로 항쇄를 차고 이곳에서 처형당한 사실에서 유래한 이름이라고도 한다. 황새바위는 순교자들의 희생과 신앙을 기리기 위한 중요한 성지로, 오늘날에도 많은 순례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성지이다.

'황새바위'에서 최초로 순교한 천주교인은 충청도 내포(內浦) 일대에 처음으로 복음을 전하여 ‘내포의 사도’로 불리다가 신유박해(辛酉迫害) 때 순교한 천주교인은 이존창(李存昌)으로, 1801년 신유박해 중 이곳에서 참수형을 당했다. 이후 이종국, 문윤진, 이국승 등이 이곳에서 순교했으며, 1812년에는 장대원과 황 바오로도 황새바위에서 순교했을 가능성이 있다. 1866년 병인박해 때 공주에서 순교한 사람은 190여 명으로, 그 중 많은 이들이 황새바위에서 공개적으로 참수형이나 다른 형벌을 받았다.

1978년, 공주 본당 신자 지재희는 황새바위 순교지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대전 교구에 이를 보고했다. 이후 교구는 부지 구입을 지원했고, 1980년 공주 본당 주임 김동억 신부가 황새바위 성지 조성의 기반을 마련했다. 1984년, 교동 본당의 초대주임 조장윤 신부는 ‘황새바위 성역화 사업 추진위원회’를 결성해 성지 개발을 시작했고, 1985년 순교자들의 이름을 새긴 무덤 경당과 순교탑을 완공했다. 이후 여러 기념물이 추가되었고, 2002년에는 순례자 성당이 완공되었다.

몽마르트 카페 옆 기념관을 먼저 둘러 보았다.

▲ 출처_황새바위 순교성지 홈페이지

▲ 공주 황새바위 기념관

기념관은 천주교 순교자들의 신앙과 희생을 기리기 위해 세운 성지로, 황새바위 순교지의 역사적 의미를 더욱 깊이 되새기는 중요한 장소이다. 이 기념관은 1985년에 순교자들의 이름을 새긴 무덤 경당과 순교탑을 완공하면서, 순교자들의 희생을 후대에 전달하기 위한 첫걸음을 내디뎠다.

손자선 토마스(1844-1866)는 충청도 홍주 거더리 마을에서 태어난 천주교 신자로, 3대째 천주교 신앙을 이어온 가정에서 자랐다. 1866년 병인박해가 일어나면서, 그는 포졸들에게 체포되어 고문을 받게 된다. 공주로 압송된 후, 그는 배교를 거부하며 고통 속에서도 신앙을 지켰고, 결국 1866년 3월 31일 공주에서 교수형을 받고 순교했다. 그의 순교는 1968년 로마 베드로 대성전에서 시복되었으며, 1984년 5월 3일 서울 여의도에서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성되었다.

▲ 항쇄철사

항쇄철사는 죄인의 목을 봉쇄하는 고문 도구로, 길이가 240.5이며 양 끝에 쇠로 만든 용이 붙어 있는 형태이다. 박해 당시 신자들을 처형하거나 고문할 때 사용된 도구 중 하나이다. 주로 죄인의 목에 감겨 목을 조이거나, 강제로 목을 묶어 처형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었다.

▲ 족쇄

족쇄는 죄인의 발목에 채워 도주를 방지하는 고문 도구로, 판길이 35.5, 너비 15.5, 두께 1.0이며, 쇠고리 총길이는 100.2였다. 이 족쇄는 발목에 채운 쇠고리 끝에 무거운 쇠판이 달려 있어, 죄인의 이동을 제한하고 도주를 방지하는 역할을 했다.

천주교 박해시대에는 감영에서 천주교 신자들에 대한 신문과 형벌이 가해지기도 하였다. 특히 사형판결과 집 행의 권한은 왕에게 있었지만 '선참후계령'으로 말미암아 감사가 죄수를 처형할 수도 있었다. 이러한 상황이 공주에서 순교한 신자들이 더욱 많은 이유가 되었다.

▲ 공주 중학교 운동장

박찬호 선수가 운동했던 공주 중학교 운동장이 보인다. 그는 충청남도 공주 출신으로, 공주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거로 활약했다. 그의 생가는 현재 박찬호기념관으로 조성되어 2018년 리모델링 개관되었습니다. 은퇴 후에는 야구 중계와 TV 프로그램, 강연 등 다양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돌문

좁은 돌문을 경건한 마음으로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면 순교자의 광장이 나온다.

▲ 돌문을 통해 공주 시내를 내려다 보았다.

▲ 열두개의 빛돌

다듬어지지 않은 채 서있는 12개의 돌기둥! 12사도를 상징함과 동시에 이름 없는 순교자들의 비석이다. 세상과 가문으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하고 버려진 순교자들은 세상 사람들 눈에는 한없이 어리석은 듯 보였지만 진정 이분들이 우리나라 교회들의 머릿돌이 되셨음을 누가 부인할 수 있겠습니까? 비록 거칠고 모난 돌이지만 도구로 써 주실 것을 믿습니다.

▲ 순교탑

순교자들은 하늘나라를 얻기 위해 갖은 고난을 겪으며, 오직 십자가와 진리만을 따랐다. 이 탑은 한국교회 200주년을 기념하여 세운 것으로, 높이는 13.8m이다. 순교자들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며, 그들의 믿음을 본받는 의미를 담고 있다.

순교탑 앞에 있는 돌 구멍을 통해 바라본, 열두 개의 빛돌들!

무덤경당 안에 계단을 타고 힘들게 내려갔다. 좁고 어두운 공간이지만, 그곳에서 순교자들의 희생과 신앙의 깊이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 부활 광장 모습

지극히 자비하신 하느님

고통과 죽음의 자리였던 이곳을

거룩한 부활의 땅으로 축복해 주셨으니

찬미와 영광 받으소서.

목숨을 바쳐 증거한 신앙을 기리며 위로와 용기를 얻는 순례자들을 축복하시어 신앙을 본받는 은총의 배움터가 되게 하소서. 아멘.

부활경당 안에는 4000여 점의 백자 도자기 평판 벽화 작품들이 모여 그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있다. 그저 흙에 지나지 않았던 것들이 색을 입고, 색을 입은 흙이 1,250도의 뜨거운 불에 의해 재탄생되어 각각의 의미를 담고 있다. 큰 돌 제대와 12개의 거석은 12사도와 순교자들을 상징한다. 거석 뒤에는 337위의 순교자들의 이름을 새겨 놓았다.

조선 후기 가장 참혹했던 순교의 역사가 서린 곳. 지금은 공주의 고요한 풍경 속에 자리하고 있지만, 그곳에 서면 당시의 아픔과 신앙의 울림이 전해지는 듯합니다.

이곳을 직접 걸으며 순교자들의 신념을 떠올려보는 것도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공주의 역사 속으로 한 걸음 더 들어가고 싶다면, '황새바위'를 찾아 그날의 흔적을 따라가 보세요.

황새바위순교성지

충남 공주시 왕릉로 118

○ 입장료 : 무료

○ 주 차 : 무료

○ 문의 : 041-854-6321~2

* 방문일 : 2025년 3월 11일

※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 모닝스타님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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