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기 함안 블로그 기자단 조윤희

4월이라는 시간의 문이 열리자마자 어딜 그렇게도 정신없이 빠르게 달려가는지 자연의 걸음을 쫓아가기에 사람의 걸음은 더디게 움직이지만 그 와중에서 보고 싶은 곳은 꼭 가야겠기에 다녀온 곳은 한안 9경 중의 한 곳인 합강정입니다.

합강정으로 가는 길에 본 입산통제라는 글자는 아직도 산불의 후유증으로 인한 상처를 보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찬란한 햇살에 반짝이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놓칠 수가 있어야지요.

함께 함안 9경인 합강정으로 가보실까요?

합강정(合江亭)

-주소: 경남 함안군 대산면 구암로 469

(지번. 대산면 장암리 708)

-건립: 1633년(인조 11년)

내비게이션에서 이끄는 대로 가다 보니 합강정(合江亭)이라고 새긴 안내석이 저를 맞아주더라고요. 마땅한 주차장이 안 보여 길가에 주차를 하고 합강정을 향했습니다.

얼마 전까지 분홍색으로 산을 물들였을 진달래의 꽃잎이 스러진 자리에 푸른 잎들이 목질화된 잔가지에 봄의 시간으로 채워가고 있는 것이 예뻐 보여 담아보았습니다.


합강정으로 내려가는 오솔길에서 나무 사이로 보이는 것이 산속 외딴곳에 있기에 아까울 정도로 요새 같은 느낌의 고택 모습인지라 '잘 왔구나, 잘 왔어~' 하면서 합강정에서의 시간에서 오늘만큼의 허락된 시간이 행복으로 다가올 것 같아 설레기까지 하더라고요.


드디어 합강정 앞에 섰습니다.

대문인 솟을대문 낙원문(洛源門) 입구에서 대청마루까지 한눈에 들어오는 구조로 되어 있는 합강정은 1633년(인조 11)에 건립한 정자로, 함안 선비 간송 조임도(趙任道)가 은거, 수학한 곳으로, 여러 이름이 있었지만, 남강과 낙동강이 합류하는 곳이어서 합강정이란 이름을 얻었다고 해요.

봄의 시간을 만나기 위해 찾은 합강정의 출입문인 낙원문은 누가 올 줄 알고 저렇게 활짝 열어둔 것인지... 열어둔 손길이 고맙기만 합니다.

열린 문은 마치 누구라도 언제든지 이곳에 와도 좋다는 허락인 것 같아 주인의 마음까지 여유로 다가오는 것 같았지요.

낙원문에서 낙원은 낙동강의 근원에 닿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합니다.

전국에 합강정이란 정자가 몇 곳 있지만, 이곳만큼 '합강' 또는 '화합'의 의미를 진지하게 말해주는 곳은 찾기 어렵다고 하는데 간송 조임도라는 인물이 궁금해서 검색에 검색을 하면서 이곳과 인문 그리고 자연의 시간까지 느끼고 싶어집니다.

열린 낙원문에서 안까지 훤히 들여다 보이는 구조로 된 합강정의 모습에서 숨김없이 진실하게 사람과 자연을 향한 의미인 것 같아 더욱 조심스럽게 다가가게 되었습니다.

인조 11년(1633)에 건립한 이후 중수와 보수를 거듭해 지금은 옛 모습을 거의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새 건물로 탈바꿈을 했다고 하지만 건물의 형식적인 기본은 지키고 있었을 터라 왼쪽에 화경 조재규 사적 기념비와 간송 조선생 유허비가 있고 오른쪽에는 간송문집책판 및 금라전언목책판 안내문과 헌성와비를 사이에 둔 중앙의 계단 앞에서 마음을 조심히 해서 건물로 다가섰습니다.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 구조로 기단을 쌓은 그 위에 대청마루에 툇마루를 두었으며 중앙에 계단을 설치한 모습이었습니다.

4월이 시작될 무렵만 해도 겨울 패딩을 못 벗을 정도로 추었는데 중순이 지나면서 기온이 올라 오전 10시만 돼도 벌써 후끈한 기온에 땀이 줄줄 흘러내리는 요즘, 제가 합강정을 찾은 날의 기온이 28도였으니 얼마나 더웠을지 가늠이 되시겠지요?

그런데 너무 신기하게도 숲의 기슭에 강가에 자리해서인지 바람이 불어 오히려 한기가 들 정도였답니다.

간송(澗松) 조임도(趙任道)는 조선 후기 문관이며 학자인 그가 1639년 합강정에서 ‘금라전신록(金羅傳信錄)’을 저술한 때는 그의 나이가 50대 후반이라고 해요.

소년 시절 전쟁을 겪고 이후에는 당파싸움의 한가운데에서 살아내야 했던 선비. 흘러가는 강물처럼 어지러운 시대는 다시 오지 않기를 바랐던 것인지 상봉정(翔鳳亭)이라는 현판을 보고 이해가 되더군요.


건물 내부에 여러 개의 편액이 걸려 있는데, 좌측 방 1칸은 와운헌(臥雲軒), 1칸은 망모암(望慕菴)이 걸려 있고, 대청마루 내부에 합강정사(合江精舍)와 우측면에 사월루(沙月樓)라는 편액이 걸려 있답니다.

지리산 천왕봉의 천왕샘에서 발원한 남강과 강원도 태백의 황지연못에서 발원해 남으로 흘러온 낙동강이 이곳에서 합류해 합강이라는 이름을 얻은 합강정의 건물은 낙동강이 흘러가는 동쪽을 향해 앉아있으면서 간송 선생의 시간과 함께 세월을 살아왔을 테죠.

산에서 부는 바람과 강에서 부는 바람 이 두 바람 역시 하나가 되어 대청마루에 앉은 사람에게 한자리 내어주는 합강정에서 바라보이는 것들 모두 의미가 있는 것 같아 계속해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네요.


담 넘어 은행나무가 그리고 낙동강이 바라보입니다.

간송 조임도 선생이 살았던 시간에도 낙동강과 은행나무는 있었겠지만 나무의 키와 수령은 달랐겠지요.

이제는 합강정 앞에서 세월을 지키고 합강정을 지키고 서 있는 은행나무를 둘러보기 위해 일어섰습니다.


합강정 주변으로 산 쪽으로 강을 따라 조임도 선생의 흔적을 따라 만든 나무 덱을 만들었겠지요.

유년기에 임진왜란을 겪었고 1604년 향시에 합격했으나 관직에 나가지 않고 고향에서 학문을 닦고 저술에 매진했던 간송 조임도 선생은 1634년 남명 조식을 모신 김해 신산서원(산해정) 원장을 맡았을 정도로 그의 학식과 평판이 높았다고 해요.

조임도의 호 간송(澗松)은 ‘물가의 소나무’란 뜻으로 1638년 여헌 장현광의 언행·문답 등을 모은 ‘취정록(就正錄)’을 쓰고, 그 이듬해 ‘금라전신록(金羅傳信錄)’을 편찬하였는데, 금라전신록은 함안의 인물과 문학 등을 담은 자료집으로, 학자가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 어떻게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전범이라고 하네요.

낙동강과 금강의 교집합이 이루어진 곳을 처음 온 제게도 곁을 내어주며 둘러보라고 하는 합강정과 사위의 풍경은 봄이 만들어내는 작품 세계에 초대받은 것 같아 기분이 참 좋았답니다. 흐르는 땀도 금방 식게 하며, 얼굴과 목에 와닿는 시원한 바람과 청명한 공기에 미소도 지어줄 정도로 말이지요.


낙동강이 바라보이는 곳에 간송이 직접 심었다는 은행나무를 봅니다. 2014년 1월 8일에 보호수로 지정받은 은행나무는 수고가 23m, 나무 둘레가 460cm나 된다는데, 10여 년이 지난 오늘은 키와 몸통이 더 자랐을 테고 튼실해졌을 테지요.

400년이 지난 오늘의 은행나무에는 여전히 새 생명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합강정의 어제와 함께 다음 세대에게도 이곳에서 간송 조임도 선생의 정신이 전해질 미래와 함께 말이지요.


은행나무를 비롯한 숲의 나무들이 모두 물을 향해 가지를 뻗고 있으면서 세월의 노를 저어대고 있는 모습이 참 멋진 합강정에서의 시간을 마무리하면서, 간송 선생이 심은 은행나무에 가을이 물들 때 다시 이곳에서 그의 시간과 흔적을 되짚어 보려고 합니다. 봄과 다른 가을의 풍취에 감성이 또 흔들릴 테죠.


합강정에서 바라본 낙동강을 따라 남지 철교가 보이네요. 강을 사이에 둔 함안과 창녕이 간송 조임도 선생 그리고 남명 조식 선생까지 함께 함안의 역사를 다시 만나고 싶은 합강정에서의 시간 속으로, 봄의 시간 속으로 놀러 오세요. 혼탁한 마음이 저절로 씻기는 것 같으니까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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