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무진박해

여산 성지 성당 및

숲정이 성지

익산 여산면 천주교 여산성당입니다.

천주교 전주교구에서 1951년 여산 지역 순교 지역을 제2성지로 지정하고 순교 역사를 기념하기 위해 1957년 나바위 성당에서 분리해 1958년 여산 숲정이 순교 성지에 건립했습니다. 참고로 천주교 전주교구 제1성지는 전동 성당인데요, 전동 성당 제1성지가 1791년 12월 8일 신해박해 당시 윤지충 바오로와 복자 권상연 야고보가 참수돼 순교한 우리나라 천주교 최초 순교성지라면 여산은 숲정이 성지를 비롯해 여산면 소재지 거의 전부가 순교지입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기다려온 천당진복을 받을 때가 왔습니다,"라는 여산 순교자 김성첨 토마스가 남긴 글이 있는데요, 1791년 신해박해 이후 계속된 천주교 박해의 마지막인 1868년 여산 무진박해 때 일가족 6명 포함 모두 17명에 이른 고산 넓은 바위 천주교 신자들의 지도자로 모두 칼을 쓴 채 형장에 이르러 칼을 풀자 얼마나 굶주렸는지 짐승처럼 풀을 마구 뜯어 먹자 신도들을 위로하면서 남긴 말이라고 합니다.

천주교 순교 역사는 1791년 신해박해로 전동성당 터에서 윤지충과 권상연의 처형으로 시작해 한국교회 역사상 최초로 조선에 입국한 외국인 선교사로 중국인 출신 주문모 선교사와 신자 100여 명이 처형되고 정약용과 정약전 등 400여 명이 유배된 신유박해(1801년), 프랑스 선교사 앵베르 범 라우렌시오 주교 등 선교사 3명과 신도 100여 명이 처형되고 김대건 신부의 아버지가 순교한 기해박해 (1839년), 김대건 신부가 순교한 병오박해(1846년), 프랑스 선교사 9명이 포함돼 8천여 명이 처형된 6년에 걸친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천주교 박해인 1866년 병인박해로 이어지는데요, 1868년 여산 무진박해와 1871년 신미박해는 대원군에 의해 계속 추진된 병인박해에 포함돼 별도로 무진사옥(戊辰邪獄), 신미사옥(辛未邪獄)으로 불립니다.

여산 성당은 1868년 여산에서 일어난 순교의 역사를 널리 알리기 위해 세워진 성당으로 순교 터인 숲정이 성지를 바라보고 있는 언덕에 있어 하늘의 문 성당이라고도 불립니다.

여산 성당에서 직선거리로 약 200m 떨어진 곳에 여산 숲정이 성지가 있습니다.

숲정이 성지에서만 순교가 이루어진 것은 아닌데요, 모두 일곱 가지에 이르는 잔인한 방법으로 신자들을 처형했으며 그중 숲정이 성지는 숲이 있고 군대가 주둔한 곳이어서 사형 집행이 쉬워 참수형을 당했다고 합니다.

1868년 병인박해로 금산, 진산, 고산 등지에서 잡혀 온 신자들 중 순교한 신자는 기록상 23명이라는데요, 알려지지 않은 순교까지 포함하면 그 숫자는 훨씬 많다고 합니다.

신도들은 여산 동헌에서 모진 고문을 받고 감옥에서 고문 후유증으로 죽거나 굶어서 죽었고 동헌 앞 백지사 터에서 얼굴에 물을 뿌리고 벽지를 겹겹이 덮어 질식사했으며 병사들의 활 훈련장에서 화살을 맞고 죽고, 여자들은 연못에 빠뜨려 죽였으며, 여산 장날 장 보러 온 수많은 사람 앞에서 효수형과 교수형에 처했고, 배다리에서는 손발을 묶어 물에 던져 익사시켰으며, 여산 숲정이에서는 참수형으로 죽었다고 합니다.

무진박해 당시인 1868년 여산은 전라도 북구지역 중심고을로 종3품 당산관이 부임하는 도호부였는데요, 도호부가 있던 여산과 임피현, 옥구현 등 군산지역과 군산진, 함열현, 용안현, 익산군 등 익산지역과 고산현(완주), 진산군, 금산군, 용담현 등 11개 고을이 여산군의 속읍이었다고 합니다.

여산 숲정이 성지 순교자 중 17명이 완주 고산 넓은 바위 교우촌 신자들이라는데요, 도호부가 있던 여산 동헌에서 모진 고문을 받고 옥에 갇혀 굶주림에 시달리다 숲정이 성지까지 끌려와 처형되기 전 목에 찼던 칼이 풀리자 허겁지겁 풀을 뜯어 먹었고 이에 김성첨 토마스는 "지금까지 우리가 기다려온 천당진복을 받을 때가 왔습니다."라고 죽음을 앞두고도 자신을 믿고 따른 신자들을 위로했다고 합니다.

1866년 봄부터 시작된 병인박해는 6월 제너럴셔먼호 사건과 10월 병인양요, 1868년 남연군 분묘 도굴사건 등이 발생하면서 대원군의 쇄국정책도 극에 달했는데요, 전국에 척화비를 세웠고 1871년까지 6년에 걸쳐 1~2만 명 이상 순교자 나왔다고 합니다. 1873년 대원군이 실각하자 조선도 쇄국정책을 버리고 1876년 강화도 조약으로 외국에 문호를 개방하게 되었는데요, 그 바탕에는 1791년부터 1872년까지 80년에 걸친 천주교 박해가 있었다는 점을 잊으면 안 될 것 같습니다. ​

익산 여산면에는 무진박해 여산 동헌부터 시작해 숲정이 성지까지 성지순례길도 있는데요, 꼭 천주교 신자여서가 아니라 우리 역사의 비극적인 한 단면을 살펴보는 기회이기도 하니 여산면에 오시면 여산성당과 숲정이 성지, 백지사 터 등 천주교 성지를 탐방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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