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괴산여행 ]

괴산군 가볼만한 곳

청덕사에서 만나는 진안대군의 삶과 유산

조선 왕조의 500년 역사 동안 27명의 왕 중 겨우 7명만이 적장자 출신이었죠. 조선의 첫 번째 왕인 태조 이성계의 맏아들인 진안대군 이방우도 왕위를 물려받지 않았습니다. 대신 아우들에게 왕위를 넘겨준 진안대군의 위패는 지금 괴산의 청덕사에 모셔져 있습니다.

청덕사 입구에는 통정대부 행사헌부 감찰공 휘 국주의 공적비와 청덕기념관이 세워져 있었어요. 청덕사는 진안대군파의 후손들이 관리하는 사당으로, 전주 이씨 가문에 속한 문중에서 후손들이 제사를 지내고 있습니다. 다만, 기념관은 잠겨 있어 내부를 볼 수는 없었습니다.

홍살문을 지나 외삼문으로 가는 길에 두 개의 비석이 세워져 있습니다. 이 비석들은 태조 이성계의 첫 번째 아들 진안대군 이방우와 그 아들 봉령후 이복근을 기리기 위한 것입니다. 두 사람의 신위는 사당에 함께 모셔져 있다고 합니다.

외삼문인 백일문은 잠겨 있었지만, 다행히 담장을 따라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관리사를 통해 입장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내삼문 역시 잠겨 있었는데, 제사를 위한 공간이라 출입이 통제된 것 같습니다. 외삼문과 내삼문 사이에는 1933년, 후손인 이태호가 인도교를 창립하며 기념비를 세웠다고 합니다.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인들이 이곳을 참배했다고 전해지며, 광복 후 주민들에 의해 일부 파손되었고, 결국 2011년에 철거되었습니다.

청덕사는 순조 31년(1830)에 중건되었으며, 이성계의 아들 진안대군 이방우의 위패를 모시는 곳입니다. 진안대군은 고려 우왕 14년(1388) 밀직부사로 명나라에 다녀오며 태조에게 요동정벌을 중지할 것을 간청했습니다.

이후 태조가 왕위에 오르자, 왕위를 아우들에게 양보하고 충신으로서 고향인 함흥으로 돌아가며 정치적인 포용력을 발휘했습니다. '청덕'이라는 이름은 대군이 청빈하고 덕망 있는 인물임을 의미합니다. 이곳에서는 매년 음력 3월과 9월에 제향을 올립니다.

청덕사로 가는 길에는 작은 언덕이 있고, 그 위에는 남파정이라는 정자가 있습니다. 이 정자는 1901년, 진안대군의 후손들이 모금하여 건립했습니다.

'남파정'이라는 이름은 개성에 있는 진안대군의 묘소에 정조가 지은 비문 중, "산에도 색깔이 있으니 남기가 그것이고, 물에도 무늬가 있으니 물결이 그것이다"는 구절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남파정에 오르면, 진안대군 이방우의 위패가 모셔진 청덕사가 한눈에 보입니다. 권력의 자리를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갔던 진안대군의 행보는 많은 교훈을 주는 듯합니다.


※찾아오시는길

청덕사 : 충청북도 괴산군 불정면 한불로 청덕1길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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