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갈만한곳,

대전 유성구 숨은 역사 탐방

'정민역에서 김만중 문학비까지'

​대전 유성구 전민동은 단순한 도심 속 휴식 공간을 넘어, 깊은 역사와 문화가 깃든 장소입니다. 과거 조선 시대의 주요 교통 요충지였던 ‘정민역(貞民驛)’에서 시작해, 조선 후기 문인이자 효자였던 서포 ‘김만중 선생’을 기리는 유허비, 그리고 그의 조상을 모신 ‘김반·김익겸의 묘’까지 이어지는 길은 단순한 마을이나 산책로가 아닌, 조선의 정신과 문화가 살아 숨 쉬는 공간입니다.

전민동이라는 지명의 유래가 된 정민역(貞民驛)은 조선 시대 국가의 주요 역원(驛院) 중 하나였습니다. 이곳은 단순한 교통시설이 아니라, 관리들이 공문을 전달하고 사신들이 머물며 말을 갈아타던 중요한 거점이었습니다.

17세기 문헌에 따르면 정민역에는 8필의 말이 배치되어 있어 조선 후기 삼남 지방과 한양을 잇는 교통로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현재 이곳은 현대적인 도로와 건물들로 변모했지만, 당시의 흔적을 남기기 위해 정민역 유허비(遺墟碑)와 말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말 8마리가 힘차게 달리는 듯한 조형물은 당시의 활기찬 역마 풍경을 떠올리게 합니다.

정민역은 일제강점기 폐역되었고, 이후 ‘정민(貞民)’에서 발음이 비슷한 ‘전민(田民)’으로 명칭이 변형되었다고 합니다. 현재 전민동이라는 이름이 정착되었지만, 이곳이 조선 시대 중요한 교통로였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습니다.

유성문화원에 따르면, 정민역이 있던 자리는 ‘아리고개’로 불리며, 회덕현(현 대전지역)의 서북쪽을 연결하는 고갯길이었습니다. 이 지역을 지나 탑립동으로 향하는 길은 당시에도 한양으로 향하는 주요 교통로였다고 합니다. 이곳을 지나는 많은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조선 시대의 길을 따라 걷고 있는 셈입니다. 다만, 저 역시 이곳을 지나는 일이 많았는데, 모르고 있다가 얼마 전 지인의 이야기를 듣다가 알게 되어 찾아가 둘러 보게 되었습니다.

정민역을 지나면 조선 후기 대표적인 문인이자 효자로 알려진 ‘서포 김만중(西浦 金萬重, 1637~1692)’ 선생을 기리는 문학비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문학비에는 김만중 선생이 유배지에서 지은 시구가 새겨져 있어, 당시 그의 심정을 엿볼 수 있습니다. '푸른 하늘 아래 그리운 어머니를 바라보며, 이 몸은 바다 위 한 조각 나그네 되어 떠도네.'라는 구절은 유배지에서도 변치 않았던 그의 효심을 짐작하게 합니다.

김만중 선생은 <구운몽>과 <사씨남정기> 등의 고전 문학을 남긴 인물로 그의 작품들은 단순한 소설을 넘어 유교적 가치와 선비 정신을 담고 있습니다.

특히, 입구에는 구운몽을 모티브로 한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어 단순한 기념비를 넘어 문학과 예술이 어우러진 휴식 공간으로 조성되었습니다.

벤치의 디자인은 마치 꿈과 현실을 넘나드는 듯한 형상으로 제작되어 있으며, 김만중 선생이 유배지에서 집필했던 작품 세계를 시각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조선 시대 선비 정신과 함께, 문학이 주는 감동을 직접 체험할 수 있습니다.

​당시 조선시대 왕으로부터 하사받은 광산 김씨 가의 묘역이 위치하는 곳으로 '김반-김익겸의 묘'입니다. 이렇게 대전광역시 유성구 전민동의 역사적인 장소를 둘러보았습니다. 정민역에서부터 이곳 김반 · 김익겸의 묘가 있는 곳까지 1.5km남짓 거리입니다. 산책하면서 살아 숨쉬는 전민동 역사의 거리를 걸어보시길 추천해 드립니다.


제 15기 유성구 블로그 기자단 '안성진 기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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