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가의 열두 달』은 정원가를 이렇게 정의합니다.

‘진정한 정원가란 꽃을 가꾸는 사람이 아니라 흙을 가꾸는 사람’이라고 말이지요.

이 책을 읽으며 40여 년 전 단독주택에 살았을 때 시아버님이 가꾸시던 마당의 작은 뜰을 떠올렸습니다.

체코의 작가 카렐 차페크(1890~1938)의 『정원가의 열두 달』을 읽는 시간 동안 흙냄새를 맡는 듯했고,

유쾌한 잔치에 초대받은 듯했습니다.

그리고 차페크의 시선을 따라 옛 추억에 잠길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은 정원 에세이이자 인문 에세이인데, 글의 중간중간에 좋은 구절들이 참 많습니다.

정원가의 열두 달이 그렇게 빠른 속도로 지나갈 줄 몰랐다고 하면 과장일까요?

1월부터 12월까지 정원가의 발걸음을 따라가며 익숙한 꽃이름이 나오면 반가웠습니다.

그러면서 ‘인간은 자기만의 정원이 있어야 한다’는 말에 공감하며

집에서 키우는 몇 개의 화분을 새롭게 애정이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1월을 대표하는 식물이 창유리에 피어나는 성에꽃이라니!

성에꽃을 본지가 언제였는지 가물가물하네요.

지금의 추위는 사오십 년 전의 추위를 생각하면 추위도 아니지요.

그때의 겨울, 방안의 유리창마다 피어나던 그 성에꽃들을 보면서

그날의 추위를 짐작했고 햇살에 녹아내리는 풍경을 경이롭게 바라보던 시절이 떠오릅니다.

정원가의 열두 달은 쉴 시간이 별로 없다고 합니다.

시아버님을 모시고 살았던 20년의 세월을 돌이켜 보면 정말 그랬지요.

넓지 않은 마당에 대여섯 가지의 식물과

오동나무 한 그루, 개나리 세 그루, 앵두나무 한 그루와 구기자 몇 덩굴을 키우셨는데

아버님은 한겨울을 제외하고 외출이 없으신 날은 하루에 대여섯 시간을 마당에서 보내셨습니다.

끊임없이 작은 삽과 호미로 땅을 뒤집으시고

음식물 쓰레기가 나오면 벽돌담 아래에 구덩이를 파고 넣으셨지요.

며칠이 지나면 발효가 되어 퇴비로 유용하게 썼습니다.

그 덕분에 우리는 여리고 고소한 상추와 풋고추를 몇 달 동안 맛있게 먹을 수 있었고요.

봄이면 발갛게 익은 달콤한 앵두도 따서 먹었고

아이들은 아버님이 만들어주신, 오동나무에 매어진 그네를 타면서 깔깔거리며 웃고 자랐습니다.

햇볕과 바람 속에서 쉼 없이 작은 텃밭과 나무들을 가꾸시던 아버님 생각을 아주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1월부터 12월까지,

계절마다 아름다운 정원의 모습과 땀 흘리며 바쁜 정원가의 손길과 발길이 노동의 귀함을 일깨워 줍니다.

카렐의 형인 요제프 차페크가 그린 그림은 얼마나 생동감 있고 예쁜지요.

글을 읽고 그림을 보면 더욱 생생하게 전달되는 정원의 풍경이 눈앞에 보이는 듯합니다.

‘정원은 언제나 미완의 존재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인생살이와 꼭 닮았다’는 말도 기억에 남습니다.

열두 달 중 가장 마음을 끄는 달은 11월입니다.

카렐이 이야기한 11월 중 한 대목을 옮겨 봅니다.

11월은 흙을 위한 달, 흙을 갈아엎고 일구는 달이다.

좋은 흙은 좋은 사람과 비슷한 성질을 지녔다.

험난한 인생사에 이보다 더 위안을 주는 존재가 또 어디 있으랴.

11월은 꽃이 스러지고 나면 잎사귀들이 한껏 꽃을 피울 차례(11월도 봄이라는 사실을 온 몸으로 알리는 꽃도 있다.)

자연에 죽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11월의 한계선 안에서 3월의 생명은 싹을 틔운다.

11월의 땅.

그 속에서 다음 봄을 위한 설계도가 이미 완성된다.

마지막 부분에서는 독자들에게 삶의 지침이 되는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들려줍니다.

바쁘게 움직여야 하고 단 하루도 허투루 보내선 안된다.

그리고 당신이 벌인 일은 꼭 당신의 손으로 마무리 지어야 한다.

정원가는 반드시 스스로 부딪히고 인내하면서 깨달아야 하는 존재이다.

더 좋은 것, 더 멋진 것들은 늘 한 발짝 앞에서 우리를 기다린다.

시간은 무언가를 자라게 하고 해마다 아름다움을 조금씩 더한다.

신의 가호로 고맙게도 우리는 또다시 한 해 더 앞으로 나아간다.

이제 봄입니다. 수선화, 히야신스, 바이올렛 등의 작은 화분 하나쯤 사서 창가에 놓아볼까 합니다.

삶의 감동과 울림이 있는 『정원가의 열두 달』을 읽으며 봄을 맞이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사진, 글: 서대문구 블로그 서포터즈 : '유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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