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유성구 명소,

보훈의 성지 · 보훈문화의 열린 공간

'국립대전현충원'

2024년 초여름, 장마가 한창일 때 국립대전현충원에 방문해 보았습니다. 항상 느껴온 것이지만 지구온난화로 인한 이상기후의 증상이 여름이 오면서 더욱 무섭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국립대전현충원 설립 경위

일제침략과 6·25전쟁, 월남전 등에서 활약한 애국지사와 순국선열 및 호국영령을 추모하기 위해 1955년 7월 15일 서울 동작구에 설립한 국립묘지의 안장 능력이 한계에 이르게 되자 박정희 대통령은 지방 국립묘지 설치 검토를 지시하였고, 1976년 4월 14일 충남 대덕군 유성읍 갑동리(현재 대전광역시 유성구 현충원로 251)의 현 위치에 대전국립묘지를 설치할 것을 결정하였다.

이에 국방부는 1976년 5월 11일 지방 국립묘지 설치 준비위원회를 구성하고 1979년 4월 1일부터 공사를 본격 착수하여 1985년 11월 13일 전체 면적 약 322만㎡(97만 4천 평)의 현 국립대전현충원을 준공하게 되었다. 공사 기간 중이던 1982년 8월 27일부터 안장을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국립대전현충원은 조국과 민족을 위해 장렬히 산화하신 호국영령 및 순국선열을 모시고 그분들의 생전 업적을 추모하고 있다.

이후 국립대전현충원은 2006년 1월 30일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시행으로 소관 부처가 국방부에서 국가보훈처(현 국가보훈부)로 바뀌게 되었다.

국립대전현충원누리집

국립대전현충원은 국가를 위한 분들의 희생과 헌신이 헛되지 않도록 품격 있는 안장 의식과 참배 행사를 거행하고 있습니다.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뜻을 기리고 추모하기 위해 오는 참배객들이 자유롭고 편안하게 머물다 갈 수 있도록 편의 시설과 함께 보훈의 성지이자 보훈 문화의 열린 공간으로 쾌적하게 조성되어 있습니다.

국립대전현충원에는 야생화공원이 조성되어 있는데 그동안 공원으로 입장할 수 있는 철문이 잠겨있는 줄 알고 들어가 볼 생각을 못 하고 있었는데 시민 몇 분이 공원 안쪽에서 산책하는 것을 보고 이제야 둘러볼 수 있었습니다.

철문이 뻑뻑하게 잘 열리지 않았던 이유는 고라니 등과 같은 야생 동물들이 정원을 훼손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비록 작고 아담한 정원이지만 이름 모를 다양한 야생화와 장미꽃이 가득 피어 있었습니다.

능소화의 물에 비친 반영도 사진으로 찍어보고, 천천히 야생화공원과 주변을 거닐며 잠시 비 갠 오후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현충지입니다. 예년에는 연잎이 골고루 퍼져 있어서 반영 사진 찍기가 쉽지 않았는데 전날 거센 비바람과 강한 비로 한쪽으로 몰려 있어서 사진과 같이 깨끗한 정자 반영을 찍을 수 있었습니다.

현충지 인공폭포를 약간의 장노출로 촬영해 봅니다. 진한 녹색의 나무와 풀, 검은 바위 위로 시원스럽게 부딪히며 떨어져 내리는 물이 있는 풍경은 더운 여름 시원한 풍경으로 보답해 주고 있습니다.

잠시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께서 잠들어계신 곳에 인사해 봅니다.

현충원 내부에는 유성천으로 흘러가는 작은 하천 양옆에 가문비나무로 보이는 나무가 멋지게 늘어서 있습니다.

항상 이곳을 볼 때마다 안개 낀 아침이면 몽환적이고 멋진 사진을 찍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아침에 찾아와 일출을 맞이할 때는 안개가 끼지 않아 아직 마음과 같은 사진을 찍어보지 못해 아쉬운 마음입니다.

퇴역한 전투 장비가 있는 보훈장비 전시장은 현재는 능소화가 예쁘게 피어있었습니다. 이곳은 봄이 오면 매화가 가득 피어 매우 인기 있는 장소이기도 하답니다.

보훈전시장에 이어 천안함 46용사들이 잠들어 있는 곳으로 이동해 왔습니다.

대한민국 해군의 포항급 초계함 14번 함인 천안함은 2010년 3월 26일 21시 22분 백령도 남방 2.5km 지점 서해 NLL 경비 임무를 수행하던 중 조선인민군 해군의 연어급 잠수정의 어뢰 공격에 의해 침몰했습니다. 해당 사건은 천안함 피격 사건이라고 부르며, PCC-772 천안함은 1987년 건조, 1989년 취역, 대한민국 해군의 제2함대에 배치되었습니다.

천안함은 제1연평해전에 참전했던 함선이기도 하며, 실종·사망한 승조원 46명 중에는 제2연평해전에 참전해 부상을 입었던 박경수 중사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후 수색 작전 중 3월 30일 한주호 준위가 잠수병으로 순직했고 4월 3일 천안함 수색을 돕던 쌍끌이 민간 어선 98금양호가 상선과 충돌해 2명이 사망하고 7명이 실종되어 직/간접적으로 10명의 사망/실종자가 발생하였습니다.

연평해전은 1999년 6월 15일과 2002년 6월 29일, 2차례에 걸쳐 북방한계선 남쪽의 연평도 인근에서 대한민국 해군 함정과 북한 경비정 간에 발생한 해상 전투입니다.

1차 연평해전은 1999년 6월 15일 북한 경비정 7척이 북방한계선을 침범하여 대한민국 해군과 교전이 이루어졌으며 대한민국 해군은 북한 어뢰정 1척을 격침하고 5척을 파손시켰습니다.

2차 연평해전은 2002년 6월 29일 북한의 기습적인 포격 도발로 시작된 해전으로 대한민국 해군의 참수리 고속정 357호가 침몰하고 6명이 전사, 18명이 부상하였으며 북한 초계정 등산곶 684호가 파괴되고 13명이 전사, 25명이 부상하였습니다.

홍범도 장군은 1907년 일제의 무기 회수에 반발해 갑산에서 산포대 조직, 의병을 일으켰으며 1910년 한일 병합 후 만주로 건너가 독립군을 양성했고 1919년 3.1 운동 이후 대한독립군 총사령관이 되었습니다. 이후 국내로 잠입해 일본군을 습격했고, 만포진 전투에서 큰 성과를 거뒀습니다.

특히 1920년 봉오동 전투에서 700여 명의 독립군을 지휘해 일본군을 대파, 독립군 최대의 승전을 기록했으며 같은 해 청산리 전투에 제1연대장으로 참전했고 김좌진의 북로군정서군과 함께 일본군을 대파했습니다.

이번 국립대전현충원 방문은 천안함 46용사들이 잠들어 있는 곳과 연평해전, 그리고 홍범도 장군의 묘가 있는 곳을 찾아 추모하고 왔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이곳은 추모의 공간이자 보훈 문화의 열린 공간입니다.

한 가지 아쉬웠던 것은 방문객들이 현충원 내에서 차로 이동하면서 방향지시등을 대부분 켜고 다니지 않기도 했으며 어떤 사람들은 차로 중앙에 주차해 방치해 놓고 추모하러 이동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주차장은 불과 10여 미터 남짓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추모의 공간이면서 아름다운 열린 공간인 이곳 국립대전현충원을 찾는 모든 사람이 장소에 걸맞은 행동도 함께 하였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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