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 너머로 보던 송애당 출입문이 활짝 열렸던 대덕구 문화유산 활용사업 '송애당과 신흥선원을 담다'

대덕구 쌍청근린공원의 송애당은 갈 때마다 출입문이 닫혀있어서 담 너머로만 볼 수 있었는데, 5월에 대덕문화관광재단에서 2025 문화유산 활용사업을 이곳에서 진행하면서 송애당 문을 활짝 열었습니다.

쌍청근린공원의 녹음이 언제 이렇게 푸르게 됐는지 온통 녹음이 가득합니다. 마침 가랑비가 오고 있어서 그런지 나뭇잎과 풀이 청량하게 촉촉합니다.

송애당 담장 앞에 있는 중리동 법천석총암각 바위도 물기가 촉촉해서 바위에 새겨진 글씨가 평소보다 더 잘 보입니다.

송애당은 바로 부근에 있는 은진송씨 유적과는 달리 경주김씨 문중에서 관리하는 곳입니다. 송애당은 조선 인조 때 김경여(1596~1653)가 지은 별당으로, 주변에 소나무가 많아서 당호를 송애당으로 하고 김경여의 호도 이때부터 송애당으로 했다고 합니다.

'송애(松崖, 소나무 송, 낭떠러지 애)'는 '눈서리를 맞아도 변치 않는 소나무의 곧은 절개와 높이 우뚝 선 절벽의 굳센 기상을 간직하겠다는 의미'로 김경여의 높은 기개와 충성심을 표현합니다.

송애당 출입문 앞에는 송애당과 같은 문화유산을 활용한 사업임을 알리는 간판이 있습니다. 문이 활짝 열린 송애당 구역을 보니 왠지 반가운 느낌이 들었습니다.

담 너머로 볼 때와 물리적으로 큰 차이는 없지만 울타리라는 경계 너머에서 보는 것과 활짝 열린 출입문으로 들어가서 보는 송애당은 심리적으로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습니다. 훨씬 가깝게 다가선 느낌이었습니다.

김경여는 키가 크고 인품이 좋고 풍채도 뛰어난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본관은 경주인데, 어머니가 은진송씨 송남수의 딸이라서 회덕이 고향이라고 합니다.

어머니가 경주김씨 집안으로 시집을 간 게 아니라 김경여의 부친이 부인의 고향인 회덕으로 장가를 들러 온건가?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시집가고 몇 달이 되지 않아서 경주김씨 남편이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이에 송씨 부인은 태중에 아기가 있는 상태로 친정으로 돌아와 의지하며 김경여를 낳아서 훌륭한 나라의 인재로 키웠다고 합니다.

그래서 김경여의 고향은 회덕이 됐습니다.

김경여는 병자호란(1636) 때 인조를 모시고 겨울에 남한산성으로 피란했습니다. 영화나 소설에서 잘 알려진 것처럼 남한산성에서 한겨울 혹한과 굶주림으로 최악의 상황에 이르자 인조는 항복을 결심하고 남한산성을 나가서 청태종을 향해 삼배구고두 의식으로 항복하고 창경궁으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이후로는 명의 연호인 '숭정'을 사용하지 않고, 청의 연호인 '숭덕'을 사용했다고 하니, 박물관에서 보는 교지 등을 보면서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조가 항복한 후 김경여는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인 회덕으로 돌아와 은거했다고 합니다. 2015년에 송애당 지붕 공사를 하다가 상량문이 발견됐는데, 발견된 상량문에 의하면 송애당을 처음 지은 것은 1640년이었다고 합니다.

인조가 청에 항복하고 병자호란이 끝난 후 벼슬을 그만둔 김경여가 회덕으로 돌아온 것이 1637년이었으니, 그 이후에 송애당을 지었다는 것이 확인된 것입니다. 송애당을 짓고 고향인 회덕에 은거하면서도 얼마나 참담한 심정이었을지 감정이입이 됩니다.

상량문에 의하면 처음 지은 송애당은 중간에 화재로 소실됐는데 중수하지 못하다가 1790년경에 그 자리에 송애당을 중수하면서 처음 걸었던 현판을 다시 걸었다는 사실도 상량문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중수하면서 송애당의 역사를 기록한 상량문을 지붕에 넣어놓았기 때문에 송애당에 대한 자세한 내용이 밝혀졌고, 지금의 현판이 초기에 지었던 송애당의 현판을 그대로 사용했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기록을 남기는 것은 이렇게 중요합니다.

송애당 뒤로 돌아가서 보니 처마에서 떨어진 물에 바닥의 흙이 파여서 작은 웅덩이가 열을 지어져 있습니다.

송애당 마당에서는 문화유산 활용사업의 하나로 송애당 색칠하기 프로그램도 있었습니다. 비가 오니까 갑자기 기온이 10도 정도 떨어져서 매우 쌀쌀한 5월 말이었습니다. 현장에서 색칠하지 않고 집에 가서 칠하려고 송애당 그림이 있는 종이를 한 장 가져왔습니다.

송애당을 모두 둘러보고 쌍청근린공원으로 나가서 뒤를 돌아보니 담장 너머로 보이는 송애당의 지붕선이 참 아름다운 곡선입니다.

쌍청근린공원 나무의 잎사귀가 얼마나 푸릇푸릇하면서 모양도 예쁜지 새 희망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청근린공원의 정자에 올라서 기둥 사이로 보이는 풍경을 보니 액자 속의 그림을 보는 것 같습니다. 우리 전통 한옥에서는 이런 '차경'을 즐겼다고 하는데요, 그런 마음으로 풍경을 바라다보았습니다.

봄비에 촉촉한 푸른 풍경을 감상하다 보니 어느새 문화유산 활용사업으로 진행하는 음악회 시간이 됐습니다. 봄날의 작은 음악회란 부제로 열린 송애당 앞의 음악회는 대전 대덕구의 문화유산인 송애당 마당에서 즐기는 힐링 음악회로 5월 한 달 동안 토요일 오후 5시~7시까지 열렸습니다. (10일, 17일, 24일까지 3회)

이날 쌀쌀하고 비 오는 날이었는데, 대덕문화관광재단 담당 직원들이 열심히 오가며 현장을 정비하고 음악회를 준비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이날은 봄날 힐링 음악회 마지막 날로 비가 오고 쌀쌀했지만, 필자를 비롯한 30명 정도의 시민이 음악 소리에 끌려 텐트 아래 마련된 의자에 앉아서 비를 피하며 음악을 감상했습니다. 담요를 두르고 나온 분도 있었고 5월인데 패딩을 입은 분도 있었습니다.

팀원스, 옐로우코티지, 자코밴드 세 팀이 각각 3~40분 정도로 공연했는데, 낮은 기온에 목소리도 굳고 연주하는 손가락도 굳었을 것 같은데 역시, 전문가들이라 달랐습니다. 열정적으로 성의를 다해 연주를 하고 노래를 불러서 관객들은 진심으로 박수치며 1인 다역의 힘으로 호응했습니다.

문화유산을 활용한 작은 음악회는 지역민이 문화를 가까이에서 향유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고, 평소에 들어가지 못했던 송애당 담장 안으로 들어가 볼 수 있어서 정말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송애당 그림은 집에 와서 확인하니 빗물에 조금 젖었는데 잘 말렸는데도 화면이 일부 우글쭈글하게 돼서 아쉬웠습니다. 하지만 색을 칠하면 우글쭈글한 모습을 좀 가릴 수 있으리라 기대하면서, 김경여의 참담한 심정을 덜어줄 수 있도록 화사한 송애당으로 칠해보렵니다.



2025 대덕구민 기자단 '주영선 기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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