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시 덕양구 대자동, 대자산 산책길에 먼저 최영장군묘에 이르는 큰 비석과 안내 표지판을 만나게 됩니다. 이곳에서 최영장군묘 방향이 아닌 오른쪽 길로 조금만 걸으면 조용히 자리한 또 하나의 묘역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곳은 조선 인조의 손자이자 소현세자의 셋째 아들인 경안군 이회, 그리고 그의 아들 임창군 이혼이 함께 잠든 자리입니다. 현재는 고양시 향토문화재 제5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경안군은 어린 시절 제주도로 유배되었고, 복권되긴 했지만 22세의 짧은 생을 마친 비운의 인물입니다. 그의 아들 임창군은 긴 생을 살았지만, 평탄한 삶은 아니었다고 전해집니다. 묘역 오른편 산비탈에는 둘째 아들 임성군의 묘도 함께 자리해 있어, 한 가족이 같은 언덕에 나란히 누워 있는 모습이 인상 깊게 다가옵니다.

묘역은 크지 않지만 단정하고 조용한 분위기입니다. 경안군의 묘는 부인 분성군부인 허씨와의 합장묘로, 붉은 벽돌 곡장 안에 석물들이 세월의 흔적을 간직한 채 남아 있습니다. 묘비는 1704년, 아들 임창군이 세운 것으로 전해지며, 아래쪽 임창군의 묘는 부인 응천군부인 박씨와의 합장묘입니다. 이 묘비의 글씨는 그의 아들 이감이 직접 썼다고 합니다.

묘비는 오랜 풍화로 마모되어 글씨가 흐릿했고, 석물도 닳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시간의 흔적이 오히려 이곳이 품고 있는 이야기를 더 깊이 느끼게 해줍니다. 오래된 소나무와 숲이 묘역을 감싸고 있고, 찾는 이가 많지 않아 한적한 분위기 속에서 조용히 시간을 보내기 좋은 공간입니다.

‘왕손’이라는 이름과는 달리, 이 묘역은 겉치레 없이 소박하고 차분한 모습입니다. 역사 속 권력에서 멀어진 삶이지만, 그 고요한 마무리가 지금의 묘역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비록 화려하진 않지만, 가족이 한자리에 나란히 묻혀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더 진한 여운을 남깁니다.

고양시는 조선시대 한양과 가까웠던 지리적 특성 덕분에 왕실 관련 묘역이 여러 곳 남아 있는 도시입니다. 이곳에서 조금만 이동하면 성녕대군 묘, 경혜공주 묘, 서삼릉과 서오릉 등 다양한 역사 유적도 함께 둘러볼 수 있어 하루 산책 코스로도 좋습니다. 명소는 아니지만, 그래서 더 특별하게 다가오는 장소.

고양 대자산 자락, 조용히 잠든 왕자들의 이야기는 크지 않지만 오랫동안 마음에 남는 산책이었습니다.

2025년 고양시 소셜기자단 박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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