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31일은 토요일이었는데 여러분의 하루는 어떠셨나요?

계룡도령 춘월은 오랜만에 연산으로 발길을 했는데요.

단오를 맞아 연산의 명소 송불암미륵불 천년 소나무 목신재가 마을잔치로 열려 다녀왔습니다.

오전 10시부터 행사가 시작되는데 같이 가려는 일행의 자동차 타이어에 문제가 생겨 견인차를 부르고, 스페어 타이어로 교체를 하고 나서야 조심조심 연산면으로 향했는데요.

도착하고 보니 이미 오전 행사는 마친 상태이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였는지

자동차를 주차할 공간이 없어서 한참을 헤매다 겨우 주차를 마치고 들어섰답니다.

정면으로 보이는 소나무가 미륵불에 절하는 소나무로 잘 알려진 천년 소나무입니다.

오른쪽에 보이는 건물이 바로 대광보전이고, 대광보전을 거치면 요사채가 나옵니다.

떠들썩한 왼쪽은 바로 미륵불과 함께 미륵불에 절하는 소나무, 바로 천년 소나무랍니다.

[[[ 을사년 목신재 ]]]

- 연산풍물놀이

- 이진영 색소폰

- 시 낭송

(장은수, 윤숙희 이채유. 김수희)

- 주지스님 축시

- 삼도 사물놀이(윤여진)

- 가곡. (이종필)

- 민요(안영옥)

- 풍류아리랑

대표 윤정숙님과 문하생 공연

(회심곡. 태평무 민요. 트로트)

- 건강 체조 (아모르파티)

2부: 개인별 노래자랑.

점심공양은 12시부터~

멀리 보이는 건물이 요사채이고, 넓은 주차장이 있지만

이날 행사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외부에 차량을 주차하도록 했다고 합니다.

대광보전 앞에 자리한 연못에는 수련과 분홍낮달맞이꽃이 활짝 피여 반겨줍니다.

송불암[松佛庵]은 논산시 연산면 함박봉 아래 자리 잡고 있으며

고려 시대 창건한 석불사가 임진왜란 때 소실된 후 그 아래에 1946년 여산면 신양리에 살았던 동상태의 어머니가

2칸의 민가로 송불암을 건립하였고, 1970년대부터 승려 경연이 주지로 있다 2016년 입적한 후

경봉스님이 이어받아 불사를 진행하고 있는데 소나무가 보호하듯 미륵불을 덮고 있는 모습이라

송불암이라 이름 지었다고 하는 절집입니다.

왼쪽에는 경봉스님이 앉아 있고 정면에 보이는 석상이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83호인 미륵불입니다.

송불암 미륵불의 모습입니다.

송불암 미륵불[松佛庵 彌勒佛]은 높이 4.25m, 둘레 1m의 크기인데 석불사라는 옛 절에 안치되어 있었던 것으로

조성 기법이나 형태로 보아 관촉사의 은진미륵보다 앞선 것으로 추측하기도 한답니다.

원래는 천년 소나무는 송불암 미륵불을 보호하듯 마치 우산이라도 씌운 듯한 모습이었으나

세월이 지나면서 미륵불이 소나무를 이고 있는 것처럼 보여 2000년 지금의 자리로 송불암 미륵불을 옮기고

소나무의 형태는 마치 미륵불에 절을 하는 것처럼 보이게 되었답니다.

오전 행사는 끝이 나고, 노래가 이어지며 분위기가 무르익어 가는데요.

민요부터 가곡, 트롯까지 흥겹게 이어졌는데요.

호응이 대단하더군요.^^

모든 행사가 이 천년 소나무 주변과 아래에서 진행되었답니다.

송불암에는 두 그루의 보호수가 있는데 요사채 앞에는 여름이면

붉은 꽃으로 빛을 발하는 배롱나무와 250년이 넘었다는 천년송으로 불리는 능수 소나무가 바로 그것인데

신비로운 조화가 있어 많은 이들의 발길을 송불암으로 모으고 있답니다.

흥겨움 때문에 그야말로 야단법석이었습니다.

ㅎㅎㅎ

그저 작은 암자의 목신재 행사라고 보기에는 준비도 아주 철저하게 했더군요.

이날 초대된 가수가가 부른 노래 중 처음 듣는 노래 '안 올 거면서' 가 있었는데 가수 분이 아주 맛지게 불러 주었습니다. ^^

풍류아리랑은 대표 윤정숙과 문하생 공연이었는데 회심곡. 태평무 민요. 트로트 등 다들 들썩이게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송불암미륵불의 주지 고정실, 경봉스님은 목신재를 오래전부터 진행해 왔는데요.

계룡도령 춘월이 2018년 6월에도 참석한 적이 있답니다.

이날 트럼펫을 연주한 분은 스님이신데 프로같이 아주 멋진 연주였답니다.

계룡도령 춘월이 즐긴 하루... 절집에서의 점심 공양 중 머위들깨탕은 두고두고 추억될 것 같습니다.

송불암의 미륵석불이 있었던 석불사와 관련된 풍수적 전설이 전해지고 있어 소개합니다.

고려 때의 일이라고 합니다.

큰 원력을 얻게 된 노스님이 어느 날 걸망을 지고 이곳저곳을 다니다가 황룡산 아래 발을 멈추게 되었답니다.

노스님은 이곳이 불법을 전할 자리라 생각하고 주변을 살피는데 마을에는 꽤 많은 사람이 사는 부촌이었다고 합니다.

스님은 잘 지어진 집들이 즐비한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외딴곳에 머물기로 하고 집 앞에서 소리 내어 부르니 30세가량의 남자가 나와 “스님은 무엇 때문에 이곳에 오셨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스님은 “네, 황룡산 아래에 부처님을 모시고 불법을 전하려고 왔습니다.”

“스님, 이곳에 유생들이 많아서 불교를 믿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하니, 스님이 “그러면 깊은 골짜기로 들어가 초막이라도 짓고 도를 깨우쳐 볼까 합니다.” “스님 그러면 무엇을 입고 씀씀이는 어떻게 하시렵니까?” 스님은 “원래 중이란 풀뿌리 나무 열매를 주식으로 삼으니 송락과 초목으로서 의복을 대신하고 법당이 없으면 바위 굴을 염불당으로 삼고 생활하면 되니 걸릴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과연 대사님의 말씀입니다. 오늘은 날도 저물었으니 저의 집에서 하룻밤을 쉬었다가 가시지요.”

노승은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청년의 후한 대접을 잘 받고 가는데 그냥 갈 수가 없어 청년에게 도음이 될 말을 꺼냈습니다.

“절대로 화를 내지 말고 잘 들으시게. 3일 후 아침 자네 모친께서 갑자기 세상을 떠날 것이야. 내가 명당자리를 가르쳐 줄 테니 다음 두 가지를 꼭 지키게나. 범바위골에 묘를 쓰되 황금돌을 건드리지 말게나. ”청년은 이 말을 듣고 금세 화를 내며 스님을 내쫓았는데요.

며칠 후 청년의 어머니는 과연 노스님의 말씀처럼 돌아가셨고 청년은 스님이 참 용하다는 생각을 하였지만 스님이 당부한 말을

다 기억할 수 없었고 범바위골만 생각이 나 묏자리를 정하여 땅을 파다 보니 황금돌이 나왔는데, 스님의 당부 말을 잊어버려

그 돌을 들어 네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그 속에 살던 수많은 땅벌들이 떼 지어 나왔는데 그 땅벌들은 스님 때문에 살던 곳을 빼앗겼다며 스님을 쫓아가 뒷 목의 급소를 쏘아 곧바로 열반하고 말았답니다. 이후 이곳 연산 마을에는 10년간 홍수, 10년간 가뭄, 10년간 전염병 등 재앙이 끊이지 않았다고 하는데 이에 마을에 살던 광산 김씨 문중 전체는 문중회의를 열어 그 연유를 찾아보았더니, 자신들의 실수로 스님을 돌아가시게 했음을 알게 되었고 스님의 넋을 위로하고 부처님의 크신 복력으로 마을의 재앙을 막고자 이곳에 미륵불을 세웠다고 전합니다. 그 후 우연히 불상 곁에서 소나무 한 그루가 자라며 미륵불을 향해 자라면서 마치 미륵불을 보호하듯 아래로만 자라고 있었는데 이러한 형상을 본 후세 사람들이 이 소나무가 그때 그 노스님의 후신이라고 믿고 이 성지에서 기도하여 소원을

성취한 사람들이 셀 수 없이 많을 뿐 아니라 이곳에서 출가하여 스님이 되신 분도 헤아릴 수 없이 많다고 전합니다.

송불암 마을의 중요한 행사로 많은 사람들과 함께 즐긴 이날의 목신재는 두고두고 기억될 것 같습니다.

촬영 2025년 5월 31일

입장료 없음

주차장 충분함

논산 10기 서포터즈 조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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