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일 전
[기회기자단] 김포시 독립운동가, 권덕규·심영택 선생을 만나다
[오하선 기자]
광복 80주년, 독립운동의 발자취를 따라서
우리나라의 독립운동가는 몇 명일까?
안타깝게도 정확한 수치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국가보훈부에서 지난 3월 1일 공개한
독립유공자 포상 현황을 보면 총 18,258명이
훈장 등을 받았다. 이 사람들은 정부로부터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독립운동가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독립운동가는 더 많지 않을까.
기자가 살고 있는 김포에도 독립운동가가 있다.
한 번도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과거를 살펴봤다.
‘조선말큰사전(말모이)’, ‘을지문덕’ 만든
권덕규 선생
‘말모이’는 말을 모아 만든 것이라는 의미로
‘사전’의 순우리말이다. ‘조선말큰사전’의
원래 이름이기도 하다.
영화 ‘말모이’는 일제강점기 조선어학회의 이야기를
담았다. 조선어학회 33인 사건을 소재로 했는데
일제의 조선인 민족 말살 정책으로
우리말 사용이 금지된 상황에서
한글을 연구한 학자들이 탄압받고
투옥됐던 내용을 영화화했다.
조선어학회는 1931년 설립된 민간 학술 단체다.
주시경 선생이 1908년에 세운 국어연구학회를
모체로 설립됐다.
조선어학회는 우리말큰사전(조선말큰사전)을
만들고 한글 맞춤법, 표준어 지정, 외래어 표기법을
통일시키는 사업을 했다.
‘말모이 원고’로 불리는 ‘조선말큰사전’ 원고는
2012년 12월 24일 국가등록문화재 제523호로
등록됐고 2020년 12월 22일에는
보물 제2085호로 지정됐다.
조선어학회 구성원 중에는 주시경 선생의 제자
권덕규(1891~1950) 선생이 있다. 권덕규 선생은
조선어학회 사건에 연루된 33명 중 한 명이다.
김포 출신의 권덕규 선생은
1913년 서울 휘문의숙을 졸업하고
모교와 중앙학교·중동학교에서
국어와 국사를 가르쳤다. 1921년 12월 3일에는
조선어연구회를 만드는 데 참여했다.
조선어연구회는 조선어학회의 전신이다.
이후 1927년에는 ‘한글사’를 조직하고
잡지 ‘한글’을 발행했다. 1929년에는 180여 명의
유지들과 함께 조선어사전편찬회를 창립하고
전임위원 등으로 활동하며
한글 수호와 보급에 앞장섰다.
권덕규 선생은 조선어연구회에서
‘한글맞춤법통일안’ 원안을 작성했고
우리말큰사전 편찬에 참여했다.
또 한글순회강습에 힘썼다. 만든 책으로는
한국어 교과서인 <조선어문경위(1923년)>, <조선유기(1945년)>, <을지문덕(1948년)> 등이 있다.
권덕규 선생은 2019년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임시정부 자금 모은 비밀결사대
‘주비단’ 사령장 심영택 선생
김포에는 또 다른 독립운동가가 있다.
바로 비밀결사단체 ‘주비단’의 초대 사령장
심영택(1869~1949) 선생이다.
심영택 선생이 태어난 곳은 과거 김포군 검단면으로,
지금은 인천광역시 서구에 속한다.
심영택 선생은 1919년 이규승, 장응규,
여준현 등과 함께 서울 경신학교에서
주비단을 조직했다. 주비단은 상해에 설립된
임시정부의 독립자금 지원을 주임무로 수행했다.
하지만 독립운동을 방해하는 사람들을 조사하고
처치하는 일도 맡았다. 이를 위해 군사조직도 갖췄다.
심영택 선생은 임시정부와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활동했다. 임시정부가 발행한 독립 공채권을 이용해
6,000여 원의 독립자금을 모아 독립운동을
지원했다. 당시 1,000원이면 방이 수십 칸 있는
커다란 기와집 한 채를 살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주비단은 일제에 발각돼 대부분의 조직원이
체포됐고, 심영택 선생은 1922년 4월 13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렀다. 출소 후 심영택 선생은
독립신문 연길지국장, 광복회 회원 등으로 활동하며
독립운동을 이어갔다. 심영택 선생은
1995년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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