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일 전
울주의 숨은 명소, 주암계곡의 봄 무도회
4월이라 그런지 더는 기다리지 못한 꽃망울이 스스로 벙글며 각자도생하고 있습니다.
봄이 오는 현장이 궁금해 울주군 상북면 배내골에 있는 주암계곡을 찾았습니다.
완연한 봄이 너울대는 울주의 숨은 명소인 주암계곡 무도회를 포스팅합니다.
배내골은 야생 배나무가 많이 자랐다 해서 명명했으며, 한자로 이천이라고도 부릅니다.
태고의 신비한 비경이 남아 있어 자연의 멋을 만끽하는데 적격인 천혜의 주암계곡.
울주에서도 숨은 비경을 자랑하는 이곳에서는 화려한 봄의 무도회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주암마을로 내려와 개인이 운영하는 주차장에 주차했습니다.
주차비는 하루 3천 원, 1박 2일은 5천 원. 영남알프스 입산 금지령으로 그 많던 산꾼도 보이지 않습니다.
주차장 한쪽에 안내판에 그려진 지도를 확인한 뒤 나무 계단에 올라섰습니다.
호방한 오솔길에 핑크빛 들꽃과 연분홍 개나리, 노란 산수유가 꽃샘추위에 몸을 떨고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꽃에서 강력한 에너지가 뿜어집니다. 아무런 대가도 없이 영혼을 맑게 해주는 꽃이 숭고해서 두 손을 모았습니다.
빼곡히 선 나뭇가지에 파릇파릇 생명이 돋아나는 봄 무도회는 신바람이 절로 납니다.
길가에 수북하게 쌓인 낙엽이 발목을 덮었습니다. 봄의 무도회를 즐기고 가라는 시위이지 싶습니다.
꽃구경에 감탄사를 연발하며 산길을 걸어가는 내 마음에도 불쑥 봄이 찾아왔습니다.
왼편에 바위가 오묘하고 예술품같이 솟아 있는 주계바위(775m) 일명 심종태바위에도 봄 무도회를 물씬 토해내고 있습니다.
주암(舟巖)은 '배 바위'란 뜻의 한자 표기입니다. 바위를 인 산봉우리 형상이 꼭 범선을 닮았다 해서 지은 이름입니다.
주암계곡과 주암마을 명칭도 이 주계바위가 시원입니다.
산길을 10여 분을 걸어서 계곡으로 내려서니 세찬 물소리가 연가(戀歌])로 들립니다.
숲 사이로 설핏 보이는 주암계곡과 물꽃이 봄의 화산처럼 보여서 가슴을 뛰게 합니다.
이 계곡은 일조량이 다른 곳보다 2시간 짧다 하여 여름에도 냉기가 감도는 곳입니다.
얼마나 혹한이었는지 녹지 않은 얼음덩어리가 여태껏 남아 있는 것일까요?
계곡 곳곳에 작은 폭포와 소. 굽이치며 흐르는 계곡의 풍광은 비경 중의 비경입니다.
울주에서도 깊은 험지에 숨은 계곡. 때 묻지 않은 태고의 풍경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높이 1,200m에 가까운 재약산과 천황산의 두산 사이에서 흘러나와 길이 10리가 넘는 골짜기를 이룬 주암계곡입니다.
개울 복판에 있는 크고 까무잡잡한 바윗덩어리에 부딪혀 다투듯 거칠게 몸부림칩니다.
물꽃을 일으키는 물줄기가 까무잡잡한 암반 위를 넘습니다.
바위들이 물길에 닿아 햇살에 반짝거리는 그곳이 가히 무릉도원이었습니다.
예고도 없이 찾아온 객에 맞서듯이 물소리를 앞세워 평정하려 듭니다.
소용돌이치며 울부짖는 물소리가 귀곡(鬼哭) 같아 덜컥 겁부터 났습니다.
깊은 계곡의 양옆으로 우거진 숲이 있어 어두컴컴해서 흡사 귀신같이 느껴졌습니다.
물소리 벗 삼아 계곡을 끼고 굽이굽이 돌아갑니다.
격한 감입곡류와 깎아지른 암벽, 시퍼런 물이 소용돌이치는데 어찌 감복하지 않으리오.
신령스러운 바위를 돌며 내는 물소리의 후음이 실루엣으로 들립니다. 원시 계곡의 전설과 애환을 들려줄 법합니다.
일찍이 계곡에서 흘러나오는 거친 물소리가 쉼 없이 조잘거리는 절경을 본 기억이 드뭅니다.
워낙 선경이라 삿된 생각이 지웁니다.
산 그림자를 담고 있는 크고 작은 소와 고만고만한 폭포가 이어집니다.
물과 바위가 명경지수인 계곡은 천연 자연박물관이 따로 없습니다.
뭇 생명체들의 젖줄이 되기 위함인가요. 물줄기가 경계를 허물고 소에 머뭅니다.
분노 색을 띠며 소용돌이치던 물꽃도 소에 이르면 마법처럼 평온해지는데 경이롭습니다.
소(沼)에는 이무기가 살 법해 섬뜩하지만 물속 깊이만큼 깨닫습니다.
생명의 계곡에서 누려보는 환희의 유랑 놀이. 눈길 주는 곳마다 동양화로 보입니다.
억겁의 시간을 빌려 빚은 자연의 솜씨이니 어찌 혼을 앗아 가지 않겠는가요.
기암의 장엄함과 계곡의 신비가 무던한 감정을 휘저어 놓습니다.
수만 사유를 연상시키는 자연이 신묘합니다. 익숙하지 않은 신비에, 온몸에 전율이 일어날 지경입니다.
어떤 바위는 풍만해 정감이 간다. 도도하지 않고 거만하지 않아 참선에 든 듯합니다.
물굽이 구절양장(九切羊腸)처럼 돌아가는 물이 몸을 낮추고 기도하는 수도승 같습니다.
초록에 몸을 단장하기 시작한 봄이 여는 무도회가 점입가경입니다. 나뭇잎은 푸릇한 엽록소를 우려내 싹을 틔우느라 분주합니다.
병풍처럼 가리고 있는 거대 암벽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는 나무의 생명력에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나무줄기끼리 엉켜 자라고 있는 형상이 오묘하기도 합니다.
오묘한 바위 그리고 다양한 나무.
경이한 물소리의 격조 높은 음률이 이는 무도회장에서 나쁜 기운을 물리치며 호강합니다.
그 옛날 화전민이 살았던 것으로 보이는 흔적이 보이지만 자신이 없습니다.
터를 지키는 새 집이 애환과 역사를 말해 줄 듯했습니다만 주인은 외출 중이라 조용합니다.
옛 집터 흔적 같은 곳을 지나니 작은 암자 천왕정사가 보입니다.
1990년대 초까지 노부부가 염소를 키우며 살았던 오두막이 암자로 변한 곳이라 했습니다.
하늘만 보이는 산골짜기에는 생각이 끼어들 틈이 없습니다.
산골짜기를 거슬러 올라와 만난 거대한 바위. 주술이 이는 바위 앞에 허리가 굽혀집니다.
지팡이로 바위를 두드려 두려움을 물리고 골짜기에 들어갑니다.
잔뜩 겁에 질려 있는데 계곡 어딘가 숨어서 멧돼지가 망을 보고 있을 것만 같습니다.
물귀신이라도 나올까 싶어 머릿발이 삐쭉 서서, 두렵고, 으쓱합니다.
계곡의 아름다움에 취해 오르다 보니 어느새 경사가 심한 길을 걷고 있습니다.
계곡이 갈라지는 주암 삼거리 입구를 지나면, 4월 한 달 동안 입산 금지령이 내려진 재약산과 천황산 오르는 길로 이어집니다.
물소리가 은은한 봄나들이를 했던 주암계곡을 역으로 걷습니다.
걸었던 계곡을 돌아보니 참 많이도 걸었고, 내 마음도 그만큼 커졌지 싶습니다.
끝까지 동행했던 매력적이고 신비한 골짜기가 배웅합니다. 주암계곡의 무도회를 오랫동안 잊지 않을 것입니다.
한 번쯤 울주의 숨은 명소, 주암계곡을 방문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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