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시간 전
수령 330년 은행나무 두 그루가 지키는 행림서원
논산시 가야곡면, 탑정호 남쪽의
육곡리 마을은 효와 사랑이 넘치는 마을입니다.
마을 벽화가 산뜻한 모습으로
방문객을 반기는데요.
마을길이 깨끗하니 마을 전체가
방금 세수한 것처럼 맑습니다.
육곡리 주민이 살고 있는
집의 벽화 건너편에는
마을 주민의 쉼터인 마을 정자도 있고,
옆에는 마을 어르신회관 겸
마을회관도 있습니다.
지금은 비가 쏟아지면서 기온이 조금
내려갔지만, 필자가 이곳을 방문했을 때는
비 오기 직전이라 날씨가 너무 뜨거웠습니다.
육곡리 마을회관 겸 어르신회관은
마을 주민을 위한
무더위·한파 쉼터이기도 합니다.
마을 어르신들은 다 모여 계신 듯
어르신 회관 안에는 신발이 가득합니다.
마을 어르신회관 무더위 쉼터 건너편에는
돌담길이 길게 이어집니다.
담너머로 벌써 배롱나무꽃이
진분홍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했네요~!
이 돌담은 이곳에 있는
행림서원의 돌담입니다.
돌담 너머로 본 곳은
행림서원의 사당인
행림사가 있는 곳입니다.
행림사로 올라가는 돌계단이
매우 구수한 느낌입니다.
행담사 앞에 있는 비석은
'만죽서선생묘정비'입니다.
비석에 등장하는 서선생은
만죽헌 서익(1542~1587)으로
이 묘정비는 서익의 인품과 학문적 소양을
추모하기 위해 고종 4년(1867년)에
행림서원을 건립할 때 세운 것이라고 합니다.
돌담길 끝, 행림서원으로 들어가는
골목 입구에는 홍살문이 있습니다.
홍살문 너머로 키가 큰 우거진
나무가 보이시죠?
바로 키가 큰 은행나무 두 그루로
행림서원 외삼문 앞에 있습니다.
외삼문 너머로 행림서원
행림사의 내삼문도 보입니다.
16세기의 만죽헌 서익 선생인데 19세기에
서원을 건립했다니 궁금한데요.
서익은 선조 2년(1569년)에 과거에 급제해서
관직에 올랐는데 당시에 탄핵당한 이이와
정철을 변호해서 파직당하고
귀향했다고 합니다.
원래 서익 선생은 논산시 산노리에 있는
효암서원에 모시고 있었는데,
부여 서 씨 집성촌인 이곳에
1867년 행림서원을 짓고 모셨다고 합니다.
아이쿠...
1867년에 행림서원을 짓자마자 1868년,
1871년 두 차례 있었던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 때 폐쇄됐었고,
1926년에 다시 지으면서 서익 선생과 함께
이소 선생(인조 때 은진현감으로 부임)을
추가로 모셨다고 합니다.
내삼문 안쪽의 행남사는 1984년 5월 17일에
충청남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됐습니다.
한국학 연구원의 자료 사진을 보니
문화재자료로 지정되던 당시에는
현재 모습과는 많이 다른데,
내삼문과 행림사 사당만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현재 행림서원 내삼문 앞에서 왼쪽에 있는
행남서원 기적비도 1984년에는 내삼문 밖의
오른쪽에 있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논산시에 있는 다른 서원과는 조금 다른 점은
행림서원을 세울 때 서익 선생 한 분만
모셨다는 점입니다.
궁금해서 찾아보니 이 마을은 부여 서 씨
집성촌이었다는군요.
행림서원이라고 이름을 짓게 된 것도
행림서원 앞에 커다란 은행나무 두 그루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행림서원 외삼문 앞의 은행나무가 있는 곳에
판석을 깔아 깔끔하게 단장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몇 년 전 자료 사진에는 판석은 없었습니다.
행림서원은 내년이면 다시 세운 지 100년을
맞는데 부여 서 씨 집성촌에서 관리를
잘 하는 서원이라서 주변이 매우 깔끔합니다.
은행나무가 둥치가 매우 굵은데
논산시에서 보호하는 노거수입니다.
서기 2000년이 되기 전 노거수 지정 당시
수령 300년이라고 추정했다는 기록입니다.
지금은 330년이 넘은 나무로 볼 수 있습니다.
노거수 은행나무는 이 자리에 서서
행림서원을 세웠다가 폐쇄되던 모습,
시간이 흘어 다시 세우는 모습을
모두 보았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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