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30일, 우리 영천시에서는 특별한 울림이 있었습니다.

신라의 시간을 품은 청제비(菁堤碑)가 마침내 국보로 승격된 뜻 깊은 날.

천오백 년 전, 흙과 땀으로 쌓아 올린 둑의 모든것을 기록한 비석이

드디어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인이 함께 지켜야 할 유산으로 떠올랐습니다.

청제비는 신라 법흥왕 23년(서기 536년)에 축조된 저수지 청제(靑堤)의 건설과

약 260년 뒤인 원성왕 14년(798년)에 무너진 둑을 수리한 사실을 새긴 비석입니다.

지금의 영천 도남마을, 구암 들판 한가운데 놓인 비각 속에는

가공되지 않은 자연석의 두 개의 비석이 조용히 서 있습니다.

흙 속에서 잠들어 있던 이 비석들은

조선 숙종 때인 1688년, 마을 사람들에 의해 다시 맞추어 세워졌고

그 뜻을 기리는 청제중립비(菁堤重立碑)도 함께 자리하고 있습니다.

영천청제비는 단순한 비석이 아니라

삼국 시대에서 조선 시대에 이르기까지 이어진

공공 수리 정책과 물의 문명을 품고 있는 살아있는 역사입니다.

국가유산청은 “정치·행정·사회 구조를 유추할 수 있는 중요한 사료이며,

현 위치에 온전히 보존된 점에서 국보로서 보편적 가치를 지녔다”고 밝혔습니다.

청제비의 역사적인 사료가 되는 것은 청제의 존재입니다.

제방의 길이는 243.5미터, 높이는 12.5미터, 저수면적은 11만 제곱미터,

유효저수량은 약 52만 톤. 지금도 인근 134헥타르의 농경지에 농업용수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홍수 조절, 기후 대응, 습지 보존등 중요한 역할을 하는

천 년의 시간을 넘어 여전히 지역을 살리는 생명의 둑이라 불릴 만합니다.

영천 사람들 사이에는 “나는 새가 굶어 죽어도 도동 안씨는 굶지 않는다”는

말이 있을 만큼, 청제 아래 도남마을은 풍요의 상징이었습니다.

이는 수백 년을 이어온 보존의 노력 덕분이겠지요.

이번 국보 승격을 계기로 영천시는

청제 일대를 국가사적으로 지정하고,

장기적으로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까지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청제는 축조 연대가 명확하고 원형 보존 상태가 뛰어나며,

무엇보다 지금까지도 본래의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 점에서

세계유산으로서 충분한 자격을 갖추고 있습니다.

천오백 년을 침묵 속에 버티며 돌로, 물로, 흙으로 역사를 지켜온 청제비는

오랜 기다림 끝에 마침내 국보가 되었고그 곁을 지켜온 청제 또한

세계를 향해 나아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영천이 걸어갈 길은 단순한 보존이 아닌,

지혜와 생명, 공존의 가치를 품은 도시로의 도약입니다.

청제와 청제비는

이제 단지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미래를 향한 메시지가 되었습니다.

먼 훗날,

또 다른 누군가가 이 청제위에 서서 청제비를 마주하고 이렇게 말하길 바랍니다.

“여기, 시간을 품은 물이 있었고

그 물을 지킨 사람들이 있었다”고.

영천시 도남동 산7-1


※ 본 글은 새영천 알림이단 정동찬님의 기사로 영천시 공식 입장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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