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일 전
울산 남산 꽃길을 걷다
4월이 도래하자 꽃샘추위가 끝나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봄꽃의 무도회가 개막되었습니다.
봄이 왔다는 기별을 시작으로 시샘이라도 하듯 벚꽃, 개나리, 동백, 진달래가 다투듯이 피었습니다.
봄의 역동적인 에너지가 울고 싶은 아이의 뺨을 내리치듯이 꽃들을 일깨웠나 봅니다.
도심 속에 있는 울산 남구 남산의 꽃 무도회를 참관하고 후기를 포스팅합니다.
포켓 공원에서 화려한 모습을 드러낸 개나리가 봄나들이 가보라고 유혹하며 손짓했습니다.
완연한 봄날, 개나리 유혹에 넘어가 울산 남구 도심에 있는 남산 은월봉(121m)로 향했습니다.
신정시장을 지나 남산을 오르는데 봄기운이 활개를 칩니다.
초입인 지장정사 앞을 지나자, 길가에 피어있는 동백의 눈맛이 호쾌합니다.
산에는 봄물이 바짝 오른 나뭇가지에서 생명의 태동이 꿈틀거립니다.
진달래가 여기저기에 꽃망울이 터뜨려서 남산을 붉은 꽃밭으로 장식해 놓았습니다.
그 아름다움은 과히 단원 김홍도의'주상관매도린'를 능가하지 싶습니다.
여타 꽃들도 마치 경마장에서 말이 일시에 달리는 것처럼 다투어서 온 산에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었습니다.
은근히 가슴 조여 기다린 탓인지 늦깎이로 핀 산수유가 유난히 아름답고 반가웠습니다.
울산 남산 산책길에서 만난 꽃이고, 변화무쌍한 겨울이 역겨워서 그럴 테지요.
가만 바람에 꽃망울을 흔들어 반기는 꽃의 상큼한 아름다움에 나이도 잊은 채 바람난 처녀처럼 마음은 마구 뜁니다.
어찌하자고 꽃보다 내 마음이 유별나게 흔들리는 것일까요.
아직 잎은 돋아나지 않았는데 잎보다 먼저 피어나는 꽃들의 화려함. 한마디 말로는 부족한 아름다움의 끝을 무엇이라 말할까요?
12개 봉우리가 있는 남산에서 제일 높은 은월봉에 섰습니다.
그 옛날 부족국가의 남쪽에 있어서 남산이라 했고, 달이 봉우리에 숨은 모습을 보고 은월봉이라 지었습니다.
모 건설 업체에서 지어 울산시에 기부한 남산루가 꽃의 재롱을 한껏 즐기고 있었습니다.
그곳은 웅장한 봄의 무도장이었습니다. 남산 솔마루길을 따라 이어진 꽃길을 걸었습니다.
지천으로 피어있는 꽃들의 일렁임을 카메라에 담기가 바쁩니다.
황홀한 꽃은 떼 지은 무희가 되어 춤춥니다.
동백의 붉은 꽃망울, 나풀거리는 산수유의 노란색 꽃망울. 하얀 손수건을 흔드는 벚꽃. 겨울 혹한의 시기에도 봄은 이렇게 가까이서 생명을 키웠나 봅니다.
아쉽습니다. 이 꽃들의 향연을 품에 안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잎이 먼저 나오는 나무 겨드랑이 떨켜에서 생명이 꿈틀거립니다.
옛날 남산에는 범이 있었는지 시누대숲 사이로 난 범굴길로 들어갑니다.
으쓱한 기분이 들긴 하지만 싱거러운 봄의 정취가 가득합니다.
비래정의 그림 같은 풍경이 신령하게 느껴집니다. 어쩌면 내가 마음속에 그려 놓은 그리움이지 싶습니다.
17세기 중엽의 연담 김명국이 그린 탐매도(探梅圖)를 능가하는 그림입니다.
낙화암을 닮은 70여m 절벽에 있는 정자는 옛날 대홍수로 떠내려간 비래사를 기리기 위해 새웠다 했습니다.
절벽 아래 우렁우렁 흐르는 태화강에 물까마귀가 유영하는 광경은 무릉도원이 따로 없었습니다.
다시 전망대로 올라와 남산을 걸었습니다. 세상에 봄을 이기는 겨울은 없었나 봅니다.
남산에 파놓은 군 방공호도 꽃이 좋은지 내 마음처럼 덩실덩실 춤을 추는 듯했습니다.
토종 까마귀도 신바람이 나는지 나무에 앉아 꽃에 반해서 알 수 없는 타령을 읊조리고 있습니다.
드디어 찾아온 봄날에 상춘을 즐기는 데는 짐승도 예외가 아닌가 봅니다.
누군가 지어 놓은 너와집이 뜰에 막 피어난 산수유의 춤에 독락 하고 있습니다.
그 정취를 보고 있자니 명치에서 유흥이 절로 나옵니다.
한 선비가 산속을 유람하고 서서 매화를 감상하는 장면이면 그리움이 아니겠습니까.
꽃의 무게에 가지가 휘어져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을 어떤 미사여구로 표현할까요.
예기치 않게 산책길에서 만난 미적 감각이 굶주린 봄의 정취를 한껏 보여 줍니다.
그저 눈으로 보는 일이 아닌 머릿속의 풍경을 바꾸었습니다. 상상력과 직관으로 추상적 개념을 시각화하면서 상징과 의미를 부여하는 창조적 추상예술을 구사하는 것입니다.
태화강 전망대에서 바라본 태화강 물길이 십리대밭을 끼고 다투듯 굽이쳐 흐릅니다.
진달래와 산수유 그리고 산벚꽃의 아름다운 남산 그림자를 품고 있나 봅니다.
태화강 전망대에서 만난 봄꽃의 무도회는 태화강 국가 정원과 어우러져 자연의 감동을 고스란히 전합니다.
가슴이 수런대며 걸어가면서 새롭게 펼쳐지는 꽃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옮겨 적으면 명시가 됩니다.
급한 발걸음도 속도를 천천히 줄여서 걷게 한다. 명품 길이 지닌 매력이 그런 것이었습니다.
아직도 푸른 싹을 틔우지 못한 태화강 국가 정원의 꽃나무들을 부러워하는 눈치가 역력합니다.
보진 못해도 왕대나무가 서로 몸을 비비며 꽃구경을 보내 달라고 야단법석이지 싶습니다.
맨발로 걷는 미녀 상춘객의 발걸음이 꽃의 흥에 취해 유난히도 매력적입니다.
꽃이 없다면 눈길이 갔을 법도 한데 눈길이 미인을 외면합니다.
그러나 앞서 걷는 초로 노인의 뒷모습에서 어떤 텔레파시가 전해 옵니다.
걷는 길에 봄꽃에 감동해서 그런지 행복감이 묻어납니다.
눈앞에 보이는 꽃에 홀려 진작 아름다운 모습은 보지 못했을 뿐입니다.
꽃보다 더 아름다운 연륜에서 풍기는 인간의 아름다움 말입니다.
가파른 고래등길을 내려갑니다.
그리고 가파른 고래등전망대를 향해 산을 오르며 또한 번 꽃길을 걷습니다.
가파르고 굴곡진 길에 개나리가 창궐해 감탄사를 자아 내게 합니다.
그 꽃이 오늘 유년의 추억을 소환했고, 인생을 살아가는 반면교사의 좋은 가르침을 줘서 고마웠습니다.
아직도 휴업 중인 남산 유아숲 체험원이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사방에 화려한 꽃으로 장식하고 말입니다.
고래등전망대에서 바라본 울산은 복받은 도시임을 확인했습니다.
울산에 살고 있는 시민이라는 사실이 감사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름다운 꽃을 보며 내가 부리는 욕심과 욕망이 무거울수록 인생은 버겁다고 그저 꽃에 파묻혀 즐거움을 누리다 가라고 충고해 줘서 고마웠습니다.
솔마루정에 올라가 바라본 꽃의 황홀경이 눈을 사로잡고, 마음을 흔들어 놓습니다.
전통 한옥풍의 정자가 꽃의 무도회를 바라보며 흐뭇하게 웃고 있는 듯합니다.
기가 막히는 진달래는 유년의 꽃대권릉 소환했습니다. 우리 집 뒷산에 핀 진달래는 온통 낙원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에게는 슬픔의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슬픔의 대상이었습니다.
참꽃이 피면 그렇게 황홀한 세상을 누리지 못하고 역병으로 잃은 어린 자식이 생각나 어머니 마음이 애통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린 나에게는 꽃의 미적 에너지가 대를 이어 내려온 가난의 절망을 벗을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고, 공부의 역겨움을 이겨내는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습니다.
고향을 두고도 타향에서 살아온 나는 반평생 넘게 살아오면서 눈에 보이는 미려함에 집착하곤 했습니다.
지나고 나면 후회가 막심했지만, 나약한 영혼의 소유자이기에 어쩔 수 없었다고 자위했습니다.
자연이 주는 꽃은 마음을 감동하게 하는데, 절세미인의 미혹에 넘어간 군주는 망국을 면치 못했던 일이 인간의 본능이 아니런가 합니다.
자리를 탐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불평 없이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일이 자연에 순응하는 삶이라 일러 줍니다.
봄이 가기 전에 남산의 유장한 꽃길을 걸어 보시기 바랍니다.
※ 해당 내용은 '울산광역시 블로그 기자단'의 원고로 울산광역시청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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