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일 전
구십의 세월이 전하는 인생 수업, <문이 닫히면 어딘가 창문은 열린다>
서울신문, 경향신문, 중앙일보 등 언론계에서 기자로 재직했던 작가 김욱이 쓴 <문이 닫히면 어딘가 창문은 열린다>를 읽었습니다.
얼마 전, 쇼펭하우어 아포리즘 <당신의 인생이 왜 힘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를 읽었는데
알고 보니 이 책의 편역자가 김욱 작가였지요.
퇴직 후에 투자를 잘못하여 전 재산을 잃고, 오직 먹고 살기 위해 번역일을 시작했다는 작가 김욱.
일흔이 되어서 평생의 꿈이었던 글을 쓰면서
새로운 인생 2막을 시작한 그가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많은 이야기를 담담하게,
때로는 마음에 강한 울림을 주면서 풀어냅니다.
남들은 일을 놓는 일흔의 나이에 시작한 번역의 결과물이 200여 권이 넘는다고 하니 놀랍기만 해요.
늘 문학과 철학을 가까이했고 폭넓은 글쓰기를 하고 있기에
아흔의 나이에도 현역 작가로 활동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그의 열정과 세상을 바라보는 냉철한 시각이 책을 통해 고스란히 전해졌습니다.
쓰고 싶은 욕망이 자신을 살아남게 만드는 생명의 근원이고 아무 후회가 없다고 하니 저 자신을 뒤돌아보게 되네요.
우리가 살면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꿈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무런 꿈을 꾸지 않고 사는 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최후까지 남아있어야 할 것은 꿈과 자신감이겠지요.
최악의 악몽은 더이상 꿈을 꾸지 않는 자신을 발견했을 때였다고 말하는 그의 음성이 들리는 듯 합니다.
저는 특히 나이 오십에 얻은 아들에 관한 이야기가 오래 기억에 남을 듯합니다.
아들의 삶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것은 아들이 택한 외줄에 거부감이 들기 때문이라고 해요.
그의 아들은 무명 소설가고, 고졸이며 정규직에 종사해 본 적이 없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아들이 자신보다 나은 삶을 살게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아들의 심성과 인간됨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겠지요.
김욱 작가가 어려운 상황이 계속되어 의료보험료를 내지 못해 보험 적용을 받을 수 없었던 때가 있었다고 합니다.
심장에 이상이 생겨서 병원비를 감당하기 힘들 때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그의 아들은 새벽 찬 공기 속에서 집을 나서 벽돌을 나르고 펜션 공사장에서 목재와 시멘트를 어깨에 지고 운반했다고 합니다.
늙고 병든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서 힘든 일을 마다하지 않은 착하고 귀한 아들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시선을 따라가 보기도 했습니다.
아무리 힘든 상황에 부닥쳤을 때조차도 현재라는 시간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야말로 삶을 사랑하는 것이겠지요.
그가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는 내가 맞닥뜨릴 수 있는 모든 이야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가 병원에 있을 때 만난, 교통사고로 하반신 마비가 된 청년은
병실 침대에서 몸의 절반을 반복해서 일으켜 팔굽혀 펴기를 했다고 합니다.
“병원에서 퇴원하면 휠체어를 타고 국토종단을 해 보는 것이 꿈”이라고 말하는 부분도 기억에 남습니다.
김욱은 자신이 쓴 가면이 무겁고 귀찮을 때, 서울시립미술관에 전시된 천경자의 그림을 보러 간다고 합니다.
그것은 자신의 정신에 행하는 화장이라고 합니다.
특히 <생태 生態> 그림(형형색색의 뱀들이 똬리를 틀고 서로의 허리와 가슴을 탐내며 얽혀 있는 그림)을 보며
한 무더기 뱀이 되어서라도 자신의 생태를 지키고 싶다는 욕망에
눈물을 흘리는 한 사람의 처절하고도 의연한 모습을 마주하는 듯합니다.
살아가면서 방황하고 흔들리는 시간이 오고 때로 실패할지라도 꿈을 잃지 않으면
터널의 끝은 있다는 말에 힘을 얻을 수 있겠지요.
아주 오래전에 이십 대의 어느 날, 친구가 제게 말했습니다.
그 말은 친구의 어머니가 하셨던 말씀입니다.
“사람은 죽기 전까지는 그 누구도 그 사람에 대해 단정지어 말하면 안 된다.
그 사람의 일생이 끝났을 때 그때 비로소 그에 대한 평가를 해야 하는 것이다.”
이 책의 3장 소제목인 ‘끝나기 전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와 같은 맥락이겠지요?
우리의 삶이 어찌 꽃길만 걸을 수 있을까요?
무성한 잡초더미도 헤쳐나가야 하고, 자갈길도 걸어야 하고 진흙탕길을 걷는 시간도 있겠지요.
그러나 그 어려운 길을 걷고 난 후의 꽃길을 그리며, 우리는 묵묵히 걸어야 하겠지요.
지금 우리는 성하의 계절 여름과 만나고 있습니다.
여름의 초입에서, <문이 닫히면 어딘가 창문은 열린다>를 소개해 봅니다.
<사진, 글: 서대문구 블로그 서포터즈 : '유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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