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일 전
전주 역사 여행 - 한옥마을 인근에서 만나는 동학농민운동의 발자취
전주 역사 여행
동학농민운동의 발자취
1편 덕진공원에 이어서
한옥마을 인근에 위치한
동학혁명기념관, 풍남문, 황학대로에서
전주시에 남겨진 농민군의
발자취를 떠나 찾아보겠습니다.
전주시 동학농민운동의 발자취 1. 한옥마을 동학혁명기념관
전주 역사 여행
동학혁명기념관은 천교도에서
동학농민혁명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국고보조금과 성금을 모아
건립한 기념관이라고 합니다.
전주시 동학농민운동의 발자취 1편
덕진공원에서 기념비와 동상으로 접했던
전봉준, 김개남, 손화중과 손병희의
초상화가 기념관 창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새 세상을 여는 사람들이란 작품명으로
동학혁명기념관 입구를 장식하고 그림을 보니
농민군과 함께 있는 듯한 착각이 듭니다.
동학농민군이 전주성을 점령하고
전주 화약을 통해 잠정 해산하고
집강소 활동 등을 통해
전주가 주요 요지였음을 알게 됩니다.
동학농민혁명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오랜 시간 동참했다니 놀랍습니다.
동학농민혁명 현장에서
새 세상을 위한 숭고한 헌신을 한 분들의
동상과 사용품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죽음보다 더한 희생 덕에 가능해진 현재의
자유로운 삶에 감사하는 마음이 절로 듭니다.
주소: 전주시 완산구 풍남동 3가 76-1
전주시 동학농민운동의 발자취 2. 풍남문 동학 농민군 입성지
황룡강 인근 전투 승리 후 동학농민군은
대포 2문과 영총100여정을 노획해
경군 300여명을 사살 후
전주 읍성을 공격했다고 합니다.
전라감사 김문현은 동학농민군을 막기 위해
4대문에 이속을 배치하고
민가 수천채를 태웠다니
치열했던 모습이 상상됩니다.
하지만 동학농민군은
장사꾼 사이에 끼어 잠입해
전주 읍성을 입성하였고 고부봉기
4개월여만에 호남수부를 점령합니다.
동학농민기념재단 고증내용
“ [일성록] 27일(양 5월31일)새벽,
농민군은 삼천을 떠나
전주의 입구인 용두치에 올라갔다.
농민군들은 여명의 공기를 뚫고
어렴풋하게 보이는 풍남문을 향해
일자진을 치고 함성을 지르며
서문으로 몰려들었다.”
“ 점심 때가 지날 무렵 서문이 저절로 열렸고
농민군들은 일제히 몰려 들어갔다.
전봉준과 농민군은 텅텅 빈
선화당을 차지하였고 모든 공해를 접수했다.”
(전봉준과 동학농민전쟁 ⓵봉기 -
전주성 점령 [역사비평 252쪽] ”)
전주 역사 여행
전주풍남문 동학농민군 입성지는
국가문화재 사적으로 농민군의 전주입성을
상징하는 전주성 관문입니다.
남문시장에서 위치한 익숙한 유적지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문화재로써
의미가 있다는 것이 새삼스럽습니다.
주소: 전북 전주시 완산구 풍남문3길 1 풍남문
전주 동학농민운동의 발자취 3.황학대 동학농민군 전투지
현재 신흥중학교가 있는 자리로
동학농민군이 전주성을 점령하는 동안
농민군과 외곽의 관군 사이에
치열한 접전이 있던 곳입니다.
농민군이 전주성을 점령한 다음날 4월28일
초토사 홍계훈이 황학대와 유연대에
진을 치고 전주성안 농민군을 공격해
공방전 벌였답니다.
이곳에서 5월3일에 대규모 전투가 벌어져
농민군지도자 김순명과
14세 장사 이복용이 전사하였고
전봉준도 왼쪽 다리에 부상을 입었답니다.
농민군 500여명이란 엄청난 희생으로
농민군의 사기가 저하되어
공세가 수그러들고 농민군 내부에
혼란이 야기된 전투지입니다.
그만큼 황학대일대에서 벌어진 전투는
동학농민혁명군에게 치명적인 것이었습니다.
동학농민기념재단 고증내용
“ ...포위망을 길게 만들어서
남산, 건지산,기린봉, 황학대 등
여러 곳을 연결하는 형태로 포진했다. ”
[황현- 오동나무 아래에서 역사를 기록하다.
김종익 옮김, 역사 비평사 164쪽]
내용 참고
동학농민혁면기념재단
주소: 전주시 완산구 중화산동 2가 산119일대
전주 역사 여행을 통해
오랫동안 살면서도 몰랐던
전주시 동학농민운동의 발자취를 마주하면서
감사하는 마음과 의미를
되새겨보는건 어떠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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