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5년 을사늑약 이후 전국적으로 일어났던 의병들의

항일구국운동 가운데 제일 규모가 크고 가장 치열한 항전을 벌였던

홍주읍성 전투에서 희생된 의병들의 유해를 모신 묘소입니다.

1906년 3월 이조참판을 지낸 민종식을 중심으로 한

홍주의병은 홍주읍성을 공격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고 해요.

같은 해 5월 9일 홍산(현 부여군 내산면)에서 다시 일어나 서천, 비인, 남포, 결성을 차례로 점령하고,

홍주 삼신당리에서 일본군을 크게 이기며, 20일 홍주읍성을 탈환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일본군의 반격이 본격화되면서 31일 새벽 동문에 이어 북문이 폭파되고,

일본군의 화력에 밀린 흥주의병은 많은 사상자를 내고 홍주읍성에서 물러났다고 해요.

이때 홍주읍성과 홍성천 주변에 흩어져 있었던 의병들의 유해는

1949년 이후 뜻있는 사람들에 의해 수습되어 현재의 홍주의사총에 봉안되었다고 하며,

< 홍양일기> <홍양기사>등의 자료에 따르면 홍주읍성 전투에서 희생된 전사자는 최소 80여 명 이상,

최대 수백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답니다.

현재 성역화가 추진되어 지금은 중앙에 의사봉을 중심으로 동쪽에 창의사,

북쪽에 숲길(탐방로)과홍주의병기념탑 등이 조성되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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