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맛!

편안할 영(寧)과 넘을 월(越)

어두운 밤, 차에 시동을 걸었다. 아무도 나를 막지 못한다! 내비게이션에 찍힌 목적지까지의 거리는 27km! 예상소요시간은 40분! 그렇다. 나는 갑작스러운 야식의 충동을 이겨내지 못하고 가장 가까운 맥도날드 매장을 향해 출발한 것이다. 산에 사는 삶은 정말 만족스럽지만, 이렇게 가끔씩 불쑥불쑥 한밤 야식의 그리움이 찾아올 때면 산속 삶을 후회하기도 한다. 다른 건 다 참아내겠는데, 이 야식의 욕구는 이상하리 만치 강력하다.

애초에 산에 살아서 맛본 적 없는 맛이라면 그냥저냥 참아낼 수도 있겠지만, 이미 속세의 자본주의 맛에 길들여진 내가 참아 내기에는 쉽지 않은 일이다. 치킨과 피자, 햄버거가 그리울 때면 이렇게 편도 40분, 왕복 80분의 거리를 내달리고 있다. 그래서 읍내에 볼일이 있어 나갈 때면 꼭 다짐을 하고는 한다. 읍내에 나가면 이것도 사고 저것도 사서 챙겨두었다가 꺼내먹어야지 하고는 말이다.

마침 며칠 전에 읍내에 볼일이 있어서 나들이를 나섰는데, 가는 길에 이번엔 무얼 사 먹을까 하며 메뉴를 하나씩 떠올려봤다. ‘냉동 피자만 오래 먹어서 물리는 것 같으니 오랜만에 갓 구운 피자를 먹어볼까? 피자만으로는 아쉬우니까 햄버거도 한두 개 정도… 아니, 냉장 보관을 하면 하루 이틀 지나도 전자레인지에 돌려 먹을 수 있으니까 넉넉하게 한 다섯 개를 포장할까? 아, 볼일을 마치고 집으로 가서 바로 먹을 수 있게 돈가스도 하나 포장할까?’ 하는 생각으로 신나게 운전을 해서 읍내로 갔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이 모든 생각이 무색하게도 읍내에서 볼일을 다 마친 나는 서부시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건 뭔가 내 의지와 관계없이 몸이 알아서 움직였다는 게 맞다. 갈 때만 해도 치킨과 피자와 햄버거와 감자튀김과 돈가스 등등이 내 머릿속에 가득했는데, 막상 일을 마치고 집에 갈 때가 되자 순대와 전병이 떠오른 거다. 역시 영월 사람의 피는 속이지 못하는 건가! 이미 어린 시절부터 길들여진 ‘아는 맛’. 분명 아는 맛인데 왜 이리 먹을 때마다 맛있는지 모르겠다.

서부시장에 들러 순대와 전병을 포장해서는 집으로 다시 돌아오는 길, 짧아진 해는 어느덧 산을 넘어가고 있었다. 원래 무슨 음식이든 갓 나와 따끈할 때 먹어야 제맛인지라 서둘러 온다고 왔는데도 벌써 주위가 어둑해졌을 무렵, 집에 도착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상부터 폈다. 크, 바로 이 맛! 변함없이 맛있는 맛! 나는 또 참지 못하고 냉장고에 있는 막걸리를 한통 꺼냈다.

순대와 메밀 전병과 배추 전은 갈수록 맛있어진다. 점점 입맛이 변하는 건가? 솔직히 어린 시절에는 맛있는지 잘 몰랐던 맛이었는데, 그래서 부모님이 가끔씩 사 오실 때에도 몇 점 먹다 말고는 했는데, 이제는 이렇게 먹고 싶어 져서 직접 찾아가 포장을 해오기까지 한다. 멈추지 못하고 싹싹 긁어먹은 후에야 내일을 위해 반정도는 남겨둘 걸 하고는 후회를 했다. 과연 없어서 못 먹는 맛!

배불리 먹고 상을 치우고 나자 아무것도 하기 싫어져서는 그대로 자리를 펴고 누웠다. 활짝 열린 창문 밖으로 선선한 가을바람과 함께 풀벌레 소리가 들려온다. 고개를 슬쩍 올려 보니 창밖에 새까만 밤하늘과 그 속에 촘촘히 박힌 별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크, 피자니 햄버거니 치킨이니 모르겠고, 역시 산에 살기를 잘했다는 생각만 든다.


{"title":"영월에 살아요_소중한 맛!","source":"https://blog.naver.com/yeongwol4/223602241690","blogName":"달마다 새..","blogId":"yeongwol4","domainIdOrBlogId":"yeongwol4","nicknameOrBlogId":"영월군","logNo":223602241690,"smartEditorVersion":4,"meDisplay":true,"lineDisplay":true,"outsideDisplay":true,"cafeDisplay":true,"blogDisplay":tr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