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시간 전
비구니의 수련 도량, 울주 석남사에 가다
천변만화로 역성을 들던 봄꽃이 지고, 연초록 잎이 고혹적인 기운을 내뿜으며 마음을 흔들어 놓는 날, 석남사를 찾았습니다.
울주군 상북면 덕현리 가지산 아래에 있는 비구니 사찰의 불심을 포스팅합니다.
석남사(石南寺)는 가지산(迦智山)의 옛 이름 석면산(石眼山) 남쪽에 있다 해서 지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습니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15교구 본사 통도사의 말사입니다.
1200년 전 처음으로 선문을 쓴 도의 선사가 호국기도 도량으로 창건한 유서 깊은 고찰입니다.
6.25 전쟁으로 폐허가 되었지만 1959년에 복원하면서 비구니들의 수련 도량으로 면모를 갖추었습니다.
주요 문화재로는 보물인 울주 석남사 승탑과 영산전, 유형문화재인 석남사 삼층석탑과 석남사 산신도, 석남사 독성도, 문화재자료인 석남사 수조가 있습니다. 성철 스님의 부인 일휴와 딸 불필이 석남사 주지인 인홍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습니다.
천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고찰의 역사를 이어온 도량에 발걸음을 얹었습니다.
1984년에 새운 ‘가지산 석남사’ 현판을 단 일주문이 숭엄한 자태로 반겼습니다.
‘장엄 적멸도량’이라 쓴 뒤편 현판이 선을 근본으로 하는 절임을 말해 줍니다. 일주문을 지나니 속세를 벗어난 기분입니다.
여기부터 엄숙 청정하며 행동을 삼갈 것을 알리는 글귀니 그럴 법했습니다.
석남사 숲길은 산사답게 호방하면서도 정겹습니다.
길이 700m 명품 숲길에는 세월이 느껴지는 소나무, 굴참나무, 서어나무, 졸참나무가 하늘을 이고 있습니다.
천년의 숲이 천이가 진행되고 있는데, 숲이 오랜 시간에 걸쳐서 서서히 변해가는 과정입니다.
고립무원의 산사에 서 있는 거목에서 나오는 기운이 머릿속 얼룩을 닦아냅니다.
길을 걷는 동안 오른쪽에 있는 계곡의 비경과 특이하고 신령하게 생긴 나무며 숲을 들여 보느라 걸음이 늦어집니다.
좋은 길이 지닌 힘이지 싶습니다.
사천왕처럼 호위하는 거목 사이로 150여 m 올라가니 석남사에서 주석했던 스님 네 분의 승탑과 비가 있습니다.
나무는 긴 세월 동안 불경을 듣고 기도를 했기에 하나같이 줄기가 굽었습니다.
불목에서 불심을 얻어 위안 삼으려 나를 발견합니다.
줄지어 선 나뭇가지가 서걱거리는 소리도 시시각각 변하고, 푸르른 소나무도 피톤치드를 뿜어냅니다.
흉측한 상처는 일제강점기에 송진을 채취하기 위해서 낸 상처랍니다.
석남사계곡 연폭포 물소리가 청량해 발걸음을 가볍게 합니다.
넓적한 바위와 올망졸망한 바위들의 틈새로 흐르는 계곡물소리가 청명한 산속에서 봄의 연가를 합창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비석을 지나서 2008년에 놓은 청운교를 건너갑니다. 이곳에서 본 석남사계곡과 절집의 풍경이 감탄스럽습니다.
가지산 등산 입구 갈림길에 2015년 새운 석남사 사적비가 웅장합니다. 오른쪽으로 난 등산로는 가지산 쌀바위 방향으로 오르는 길입니다.
아담한 석교인 섭진교를 지나면 붉은색 요사와 절이 반겨줍니다.
사천왕이나 금강역사는 없지만 옹벽 위에 지은 한국 전통의 건축미가 가히 예술입니다.
시내를 베개 삼아 누운 누각 침계루 앞 H형 반야교 아래로 석남사계곡이 유장합니다.
반야교를 지나는데 앞에 보이는 종루가 걸작입니다.
반야(般若)는 온갖 분별과 망상에서 벗어나 만물의 참다운 실상을 깨닫고 불법을 깨닫는 지혜입니다.
침계루 아래 출입문을 통과해서 대웅전으로 들어섭니다. 일주문에 이어 또 다른 세상으로 넘어가는 느낌입니다.
대웅전 앞의 높이 11m 삼층 석탑을 중심으로 편액을 단 전각이 줄지어 서 있습니다.
824년에 도의국사가 호국을 염원하며 세운 탑입니다.
임진왜란 때 파괴되었는데 1973년 스리랑카의 승려가 사리 1과를 봉안하면서 3층 탑으로 개축했습니다.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겹치마 맞배지붕으로 1725년 중건되었습니다.
지붕은 용마루의 용머리 장식과 추녀마루의 물고기 꼬리 모양 양식이 특이합니다. 단아하게 단청한 처마와 지붕이 우아합니다.
법당에는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 양옆으로 지장단과 신중단이 있습니다.
삼존불 뒤 영산회상도는 1736년 화풍을 보여줍니다. 지장단에는 유형문화재 지장보살도가 그려져 있습니다.
부처의 한결같은 미소가 제행무상의 의미를 일깨워 줍니다. 오랜 세월 한결같이 자애로운 상(常)으로 있는 궁금증이 생깁니다.
그래도 남루해진 심신을 일으켜 세워 주는 제행무상의 원숙을 음미하며 비손하고 있는 나를 발견합니다.
대웅전 뒤에는 엄나무를 파내고 만든 ‘비사리 구시’라 부르는 구유가 신기합니다.
500여 년 전 간월사가 폐사되었는데 ‘간월사(肝月寺) 유(柚) 임○(壬○)’이라는 명문이 있어 간월사 소유로 보고 있습니다.
절에서 공양을 지으면서 씻은 쌀을 담아두거나 밥을 담아놓는 통입니다.
길이 630㎝, 폭 72㎝, 높이 62㎝로 1천여 명 공양이 가능하답니다.
극락전은 1791년에 세운 석남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입니다.
그 부근에 있는 석남사 삼층 석탑은 2층 받침돌 위에 3층 몸돌을 올렸습니다. 특별한 조각이나 장식은 없습니다.
담장 뒤에 있는 도의국사 부도탑은 창건 때 세웠습니다.
사자와 구름연을 새긴 팔각형 이중 받침돌 위에 신장상과 몸돌과 지붕돌, 상륜부가 유려합니다.
1962년 해체, 수리할 당시 기단부의 가운데 받침돌에 사리는 없고 사리 장치 공간만 발견되었습니다.
마법에 끌리듯 탑돌이를 하면서 마음은 늘 봄처럼 활기차고 가족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했습니다.
절집을 바라보니 까만 기와지붕끼리 어깨를 맞대고 있는 듯한 모습이 운치가 있습니다.
세월의 자국이 남아있는 절집은 길손에게 쉬어갈 공간을 내어주는 쉼터입니다.
절을 나오는데 우아한 종루에서 종소리가 울려 퍼져 만물에게 불심을 전하고 있는 듯했습니다.
생명력을 뽐내는 노각나무의 억센 뿌리가 불심을 퍼 올리고 불경 소리가 물소리와 함께 들릴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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