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시간 전
양산 전시 양산시립박물관, 한일 수교 60주년 '조선통신사와 양산' 특별전
한.일수교 60주년 기념 특별기획전
2025. 5. 16(금)~7.27(일)
양산에서 특별한 전시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양산시립박물관은 한국과 일본 수교 60주년을 기념해
'조선통신사와 양산' 특별기획전을 박물관 2층 기획전시실에서
열리고 있으니 많은 관람 바랍니다.
이번 전시는 조선통신사의 외교적 여정과 문화적 성과를 조명하고,
통신사 행로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던 양산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려고 마련되었으며
전시 기간은 5월 16일부터 7월 29일까지 입니다.
조선통신사는 일본의 요청으로 1607년부터 1811년까지
총 12차례에 걸쳐 조선 국왕이 일본에 파견한 공식 외교 사절단으로,
동아시아 평화와 문화 교류의 중요한 가교 구실을 수행했습니다.
조선통신사는 조선 국왕이 일본 막부에 파견한 외교 사절단입니다.
임진왜란 이후 단절된 국교를 회복하고 포로를 송환하기 위해 시작되었지만,
궁극적으로는 상호 신뢰를 회복하고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는 데 목적이 있었습니다.
특히 양산은 통신사 여정의 마지막 경유지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으며,
사행단을 접대하고 통신사행에 필요한 물자를 공급하는 핵심지역이었습니다.
'조선통신사와 양산' 특별기획전은
1부 통신사의 길
2부 통신사의 길목, 양산
3부 문화 교류의 상징, 통신사
4부 공동의 유산, 통신사 총 4부로 구성됩니다.
1부 통신사의 길에서는 일본까지 경로와
각 경유지의 역사적 의미를 조명합니다.
조선통신사의 통신은 신의를 나눈다는 의미를 가지며
이는 단순한 외교 사절이 아니라 조선과 일본 간의 평화와 우호 관계를
상징하는 중요한 교류였습니다.
토쿠가와 막부는 조선통신사의 방문을 국가적으로 중요한 외교 행사로 여기며,
1607년부터 1811년까지 총 12차례 통신사를 초청했습니다.
통신사는 조선 국왕의 국서를 전달하고, 토쿠가와 쇼군의 답서를 받으며
양국 간 외교를 이어갔습니다.
조선통신사는 정사, 부사, 종사관의 삼사 이하, 화원, 의원, 역관, 악사 등 총 300~500명에 이르는
대규모 사절단이었습니다. 조선의 수도 한양을 출발하여 일본 에도까지 반년 이상 소요되는
왕복 약 3,000km의 여정이었습니다.
긴 여정의 곳곳에서 통신사는 일본의 많은 문인들과 필담을 나눴고,
그 화려한 행렬을 그린 병풍, 두루마리 그림, 판화 등의 형태로 전해집니다.
조선통신사의 웅장한 행렬 모습은 일본 민중들로부터
열광적인 환영을 받으며 오랫동안 기억되었습니다.
조선통신사 행렬도 영상이 4분 상영되는데
그 규모와 화려함에 감동을 받습니다.
형명기
통신사 행렬에서 사절의 직책과 이름을 적은 깃발로,
신분과 위계를 시각적으로 나타내는 상징물입니다.
깃발은 기수가 들고 이동하며,
고위직일수록 장식이 화려해 의전적 의미가 컸습니다.
정사
조선통신사의 최고 책임자로,
국왕의 명을 받아 일본 쇼군에게 국서를 전달하는 외교사절단의 수장입니다.
의전상 가장 높은 위치에 있으며, 조선의 외교 입장을 상징적으로 대변합니다.
강한 문장력과 외교적 신중함이 요구되며, 주로 정3품 이상의 고위 문관이 임명됩니다.
부사
정사를 보좌하는 역활을 하며,
실질적인 행정과 외교 협상을 담당합니다.
정사 부재 시 그 역할을 대신하며, 외교적 언변과 절제된 태도가 요구됩니다.
종2품~정3품의 문신이 임명됩니다.
종사관
통신사의 실무 담당자로,
문서 작성과 회담 기록, 시문 교환 등을 맡았으며,
일본 문인들과의 문화 교류를 주도했습니다.
젊고 문장력 있는 문신(5~6품)으로 선발되며,
임시로 홍문관 교리 직함을 받았습니다.
이들은 조선 지식인의 대표로서 일본과의 대화 창구 역할을 하였습니다.
조선통신사상판사제1선도
에도시대 오사카 역사박물관(복제품)
1763년(영조 39) 성대중이 구해 온 일본 지도
일본의 군현 경계, 해안선, 항로, 철도 등을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으며,
조선의 통신사가 일본에서 수집한 귀중한 지리정보로,
당시 조선과 일본 간의 외교, 정보 교류, 문화적 관심을 잘 보여주는 사료입니다.
2부 통신사의 길목, 양산
조선통신사행이 양산에서의 활동과 지역 인물 활약상을 다양한 사료를 통해 소개합니다.
양산은 조선통신사의 국내 노정에서 꼭 거쳐야 했던 주요 길목이었습니다.
왕명을 받고 한양을 출발한 조선시대 대일사행은 육로로 약 420km,
평균 20일을 이동해 도일 전 최종 점검지인 동래에 도착하였습니다.
사행록 속 인물과 장소
조선통신사의 여정을 기록한 사행록에는 양산의 인물과 장소가 반영되었습니다.
양산의 인물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신라 충신 박제상은 고려 충신 정몽주와 더불어
일본으로 떠나는 사행원들에게 받들고 따라야 할 충절의 표상으로 여겨졌습니다.
박제상이 묻힌 곳으로 알려진 하카타 앞 아이노시마를 지날 때
그에 대한 흠모의 시를 바치는 것이 관례처럼 되었고,
그가 건립한 징심헌은 사행원들이 사행에 임하는 각오를 다지는 상징적인 건물이었습니다.
쌍벽루와 임경대 등 빼어난 경관으로 이름난 누정과 명승은
문인들의 시흥을 자극하며, 사행길에 접한 완상의 공간으로 묘사되었습니다.
경상감영문서등은 통신사 일행의 예단에 소용되는 인삼에 대한 기록으로
함안, 고성, 합천 등 38곳의 인삼을 분정한 기록 등이며,
동사일기는 통신사의 기록으로 일본의 지형, 행정구역,
관제, 민간생업, 풍속 등을 항목별로 정리하였습니다.
조선통신사의 사행길~일본 에도성까지
2분 정도의 영상은 당시 상황을 잘 이해할 수 있게 합니다.
3부 문화 교류의 상징, 통신사
일본 문인들과 상호작용의 깊이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혼묘지, 임진왜란과 조선인의 흔적
구마모토현은 임진왜란 당시 조선 침략의 선봉장이었던
가토 기요마사의 본거지입니다. 아버지를 위해 건립한 개인 사찰인 혼묘지는
조선인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는 역사적 공간입니다.
통신사 서계
일본으로 보낸 외교 문건으로 조선통신사의 정부사가
일본 측에 무사 귀국 했음을 알려준 문서이며
윤지완(통신정사), 이언강(부사), 박경후(종사관) 6월 출발하여
10월 돌아왔으며, 일본 국왕을 귀대군으로 표기하였습니다.
아메리노모리호슈
조선과 일본의 관계를 성신, 즉 진실한 마음으로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서로 속이거나 다투지 않고 신뢰를 바탕으로 교류해야 한다고 강조했으며
그의 사상은 한일 간 지속적인 우호 관계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평가됩니다.
아라이 하쿠세키
아메리노모리호슈와의 대립을 가져온 인물로
조선통신사의 대우를 비용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간략화하였으며,
쇼군의 칭호를 일본 대군에서 일본 국왕으로 바꾸게 하였는데
아메리노모리호슈는 아라이 하쿠세키를 난폭무비한 유학자라고 비난하였습니다.
조선인행렬차제
조선통신사 행렬을 담은 목판 탁본으로 1800년대 제작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조선에서 일본으로 가져간 공물의 목록과 통신사 행렬의 모습을 상세히 묘사하고 있습니다.
에도시대 자료이며 사가현립 나고야성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습니다.
미이데라
시가현오츠시에 있는 천태종 본산 중의 하나로 온조지라고도 부르며
신라계스님 엔친이 중흥시켜 천태종 양대 사찰로 발전했으며
시가현은 한반도에서 넘어온 귀화인들이 살던 지역으로
이 사찰에는 신라명신상을 비롯하여 1032년 주조한 고려 범종 등
한반도 관련 다수의 문화유산이 남아 있어 조선통신사 행렬이
반드시 들렸던 중요한 장소 중의 하나였습니다.
조선기문
1711년(숙종 37) 통신사 일행의 모습을 그린 화첩입니다.
정사, 중관 등 여러 계급이 사람들을 대상으로 사용했던 물품,
의복, 악기, 무기, 곡마 하는 모습 등을 상세하고 풍부한 색채로 기록하였습니다.
조선통신사 초상화첩
에도시대 국립해양박물관 소장
조선통신사 수행화원들이 그린 '수노인도', '죽호도', ;김명국의 달마도'.
특히 주목할 만한 작품으로, 제4차와 제5차 조선통신사에 참여했던 화원 김명국이 그린
달마도가 국내 최초로 공개되는데요, 이는 조선 화단의 위상을 보여주는 중요한 작품입니다.
선종의 시조인 달마대사를 형상화한 이 작품은 김명국 특유의 강렬하고
개성적인 필치가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김명국은 제4차와 제5차 조선통신사에 연이어 수행화원으로 참여할 정도로
일본에서도 인기가 높았던 인물로, 그의 예술성과 조선 화단의 위상을
직접 확인할 소중한 기회입니다.
수 노인도
인간의 수명을 관장하는 수노인을 그린 그림으로 별자리인 남극노인성을
의인화한 신적인 존재입니다.
통신사 수행화원 중에서도 선종화를 그린 화원들이 선호했던 주제로,
화면의 절반 가까이를 여백으로 남기는 구성이 특징입니다.
조선시서술병
해상 교통의 요충지인 토모노우라, 현재 리호시마현 후쿠야마시에서는
조선통신사와 관련된 한시와 그림이 남아 있어 당시 이 지역이
통신사와 얼마나 깊은 교류를 했는지를 보여줍니다.
조선통신사 행렬도의 제작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외교, 문화, 예술 등을 교류한 증거로써
역사적 중요성이 매우 크며, 한일 관계의 발전 과정과 상호 문화적
영향을 연구하는데 필수적인 자료입니다.
왜학 역관들의 활약
일본어를 전문적으로 익힌 중요한 직책으로, 의사소통을 중재하고,
공식 외교문서를 번역 및 작성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문화사절단의 역할도 컸습니다.
조선통신사 서장, 시문첩 병풍
간텐주취진재서첩록발
조선통신사의 제술관 남옥과 서기 성대중이 일본의 문인 간텐주에게 보낸 글입니다.
이 글은 조선과 일본 간 문화적 교류의 중요한 사례로, 당시 통신사가 단순한 외교 사절이 아니라
문학과 사상을 나누는 지식인 간의 교류의 장이었음을 보여줍니다.
1764자료 아마가사키시립 역사박물관 소장
이의양의 죽호도
좌측에서 우측으로 세 번째 작품 비단에 수묵담채
신원 이의양이 그린 작품으로 호랑이는 몸을 낮추고 고개를 돌려
무언가를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으며, 바람에 나부끼는 대나뭇잎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조선 후기 일본인들이 선호하던 화제였던 죽호도 그라나 같은 시기 조선에서는
작호도(까치와 호랑이를 소재로 하는 민화)가 유행하여 흥미로운 차이점을 보입니다.
조선통신사의 마상재
조선통신사 사절단이 일본을 방문할 때, 문화 교류의 일환으로
여러 가지 기술과 예술을 선보였습니다. 그중 마상재는 기마술을 포함한 무예나
곡예를 공연하는 사람들로 일본인들에게 큰 인상을 남겼으며, 일본 기마 공연에도 영향을 주었습니다.
4부 공동의 유산, 통신사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조선통신사 관련 기록을 통해
그 보존 가치와 역사적 의의를 새겨봅니다.
피종정 오언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통신사기록물
1811년(순조 11년) 조선통신사의 사자관으로 일본을 방문한
동강 피종정이 지은 오언시입니다.
잠에서 깨어 아무 일도 없으니,
한가로이 뜰의 나뭇가지를 바라보네.
초록빛 그늘이 살짝 덮인 곳,
가장 좋은 것은 남쪽에서 부는 바람이 많음이라네.
또한 시의 왼편에는 조선동강이라는 낙관이 남아있어
일본인에게 선물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한, 일 각국의 통신사 관련 유적지
한국
영천 조영각, 양산 통신사의 길 기념 표지석과 통신사로, 부산 영가대.
일본
쓰시마, 아카마 신궁, 고치소이치방칸, 후쿠젠지, 치쿠린지, 하코네 세키소. 에도성.
전시를 나가며
이번 특별전은 통신사 관련 귀중한 유물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입니다.
양산의 역사적 위상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전시인 조선통신사와 양산
한일 수교 60주년 기념 특별기획전에 많은 참여를 바랍니다.
한일 수교 60주년 '조선통신사와 양산' 특별전
기간 : 2025. 5. 16(금)~7.27(일)
장소 : 양산시립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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