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산제에 대해서 알아볼 수 있는

특별한 전시

“가장 ‘부안’다운 문화를 전시한 게 아닌가 생각해요”


‘당산제’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 있나요? 인공지능을 활용한 교과서가 곧 나오는 요즘 시대에 도시 사람들에게는 거의 들어보지 못할 법한 단어일 듯합니다. 심지어 농촌에 거주한 주민일지라도 당산제를 하지 않은 마을들이 늘어나 직접 체험하거나 눈으로 본 주민이 많지 않을 것입니다.

부안군은 조금씩 잊혀가는 우리 기억과 문화를 조명하고자 특별한 전시를 준비했습니다.

부안역사문화관

전북특별자치도 (재)부안군문화재단은 지난 11월 28일, 부안역사문화관 기획전시실에서 ‘2024 부안작은미술관, 부안을 아카이브 하라 – 우리가 기록하는 당산제’ 전시를 개최했습니다.

2025년 2월 28일까지 진행되는 이 전시는 우리 전통문화 당산제를 다룬 것으로,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펼치는 ‘작은 미술관’ 사업의 일환이자 올해 부안 작은 미술관 3번째 전시입니다.

2024 부안작은미술관 마지막 전시인 '우리가 기록하는 당산제’

‘작은 미술관’ 정책은 전국 곳곳에 미술 문화가 도달할 수 있는 기반 마련과 시각예술 향유를 목적으로 하는 사업입니다. 부안군문화재단은 2023년에 이어 2024년에도 작은 미술관 운영 및 지원사업에 선정되어 부안군민의 시각예술 문화 향유를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부안군문화재단은 ‘2024 부안작은미술관, 부안을 아카이브하라’라는 이름으로 지난 6월부터 전시를 펼쳤습니다. 변산 해안 내 해양 플라스틱을 통해 해양 오염의 심각성을 알린 <변산, 풍경이 된 플라스틱>, 부안군 장애인 작가들이 처음으로 직접 명소들을 찾아 표현한 <모두의 여행, 부안> 그리고 이번 당산제 전시가 바통을 이어받았습니다.


▼<모두의 여행, 부안> 전시 후기 보러가기▼


당산제

<우리가 기록하는 당산제>는 옛 부안 곳곳에서 펼쳐진 우리 문화, 당산제를 알리면서 마을 주민들이 전하는 이야기 중심으로 풀어내어 잊혀가는 우리 전통문화를 기록하고자 마련되었습니다.

당산제는 마을의 수호신인 당산신에게 마을과 주민들의 안녕과 풍작을 기원하는 제례이자 놀이입니다. 수백 년 전부터 치러져 호남, 영남 지역에서 발달한 당산제는 주로 음력 정원대보름에 펼쳐졌습니다. 마을 주민들이 각각 십시일반으로 당산제 비용을 모아 치르는 연례행사라고 볼 수 있지요.

마을의 구심체이자 농어촌 공동체를 대표하는 문화자산인 당산제는 크게 굿판과 놀이로 구성됩니다. 당산신에게 짚으로 된 옷을 입히고 의식을 치른 후, 줄다리기 등 여러 놀이들을 하면서 며칠간 지속됩니다.

부안 당산제 사진들

여장한 남성

당산제가 마을의 풍년과 안녕을 위한 제의라는 점은 놀이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굿판을 마친 후, 남녀로 편을 갈라 줄다리기를 진행합니다. 여기서 여자팀이 이겨야 풍년이 든다는 풍습이 존재해 어떻게든 여성들이 이길 수 있도록 합니다.

부안군문화재단 관계자는 “당산제에서 건장한 남자를 여장으로 꾸미는 풍습이 있다고 해요. 그래서 여자 팀으로 참여하게 만들어 이길 수 있게 한다는 거죠. 또, 남자팀이 힘을 못 쓰도록 경기에 참여하지 않은 다른 주민들이 줄다리기 중 남자팀을 때리고 괴롭히는 등 우스꽝스러운 장면들이 많다고 하더라고요”라고 말했습니다.

마을 주민들이 모여 당산에 입힐 옷을 짚으로 만들었다

당산제가 마을 내 중요한 행사로 자리 잡은 또 다른 이유로 마을 주민들의 결속력 강화 때문이었습니다. 당산제를 준비하고 치르면서 주민들이 다 같이 모여 얘기하고 끼니를 같이 하며 놀이를 즐기는 등 함께 지내는 시간을 많이 보내며 정적인 감정을 풀어내기 위한 역할로 당산제가 쓰이는 것이었습니다.

부안군 우동마을 김성식 씨는 “당산제는 민간신앙적 축원과 동시에 주민 집단 간의 결속을 강화하고 주민의 자치성과 민주적 평등성 등 정치적 기능의 구현이라는 목적도 담겨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전시는 당산제 소개와 함께 부안군에서 펼쳐지는 당산제들과 사진들을 소개했습니다.

부안의 당산

부안군 지도에 표시한 부안 당산제들

현재 부안군 내 당산제는 약 40여 곳. 커다란 부안군 지도에 지금도 거행되는 당산제들을 각각 설명했습니다. 바다로 둘러싸인 위도에서도 위도 진리당제 등 4개 당산제가 치러진다는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당산제는 농촌, 어촌 상관없이 사람들이 모인 마을이라면 일어난 행사였던 거죠.

재단은 이중 당산제 역사가 길고 잘 보존된 3개 당산제를 주목했습니다. ‘돌모산 당산’(부안읍 내요리), ‘우동리 당산’(보안면 우동리), ‘쌍조석간’(계화면 대벌리)을 소개하면서 제를 운영하는 각각 회장님들을 인터뷰하는 영상을 공개했습니다.

돌모산당산 (출처 국가유산청)

돌모산 당산제는 옛 선조들이 마을의 모양이 배 모양이어서 배가 가벼우면 쉽게 파선하기에 운행을 잘할 수 있도록 돛대(짐대)가 실해야 마을이 번창한다고 생각해 화강암 돌기둥을 세우며 시작됐습니다.

해마다 정월대보름 무렵에 지내는 돌모산 당산제는 이른 아침부터 해 질 무렵까지 농악의 흥겨운 가락 속에 용줄꼬기, 남녀로 편을 갈라 줄다리기, 용줄 매고 마을돌기, 당산할머니 옷 입히기 등 순서로 진행됩니다.

‘당산 할머니’, ‘짐대 할머니’로 불리는 2.5m 돌기둥인 돌모산 당산은 현재 전북특별자치도 민속문화재 제19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2010년 우동리 당산제. 마을 주민들이 '짐대 할머니 옷 입히기' 하는 모습 (출처 디지털부안문화대전)

당산나무를 중심으로 진행된 우동리 당산제도 매해 정월대보름에 지냅니다. 우동리 당산나무는 짐대석, 오리형 솟대목과 함께 당산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팽나무와 짐대석 사이가 아이들이 지나다닐 수 있을 정도로 떨어져 있었으나 나무가 크게 자라자 짐대석이 당산나무에 박히게 됐다고 합니다.

하지만 예전 나무가 완전히 고사되었고 2010년 즈음 수령 약 200여 년의 팽나무를 이식해 예전의 당산 모형으로 새로 조성했습니다.

우동리 당산제는 지난 2012년 전북민속예술축제 최우수상을 수상했습니다. 이어 같은 해 전북 대표로 제54회 한국민속예술축제에 전북 대표로 출전하기도 했습니다. 그 무렵, 우동리 마을은 지역문화제 ‘당산제’ 전수 우수마을로 꼽히기도 했지요.

대벌마을은 일제강점기때만 해도 중선배가 드나들었던 항구마을이었습니다. 이 마을의 당산은 화강석 돌기둥 위에 새 두 마리가 얹어져 있는 쌍조석간으로 할머니 당산으로 불립니다. 이는 조선 영조 25년(1749)에 건립되어 오랜 기간 이 마을의 수호신 역할을 펼쳤습니다. 현재 전북특별자치도 민속문화재 제17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쌍조석간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정월 초사흗날 밤에 거행되는 대벌마을의 당산제는 당산에 멍석으로 막을 치고 여자들의 접근을 금지시킨 가운데 엄숙히 진행됩니다. 제사를 마친 후, 무명베 한 필로 한 해의 운수를 점치는 ‘베다리기’와 베다리기가 끝난 베로 돌기둥 꼭대기에 얹혀 있는 두 마리의 새를 감아주는 ‘머리얹기’라는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놀이들을 벌입니다.

그러나 간척사업으로 어업이 쇠퇴해 1980년 이후로 풍습들은 사라졌고 명맥만 유지되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불교와 토속문화를 동시에 경험할 수 있는 ‘내소사 석포리 당산제’로 알려져 있는 입암당산제 등 여러 부안 당산제들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내소사 석포리 당산제 전시

024 내소사 석포리 당산제 포스터 (출처 전북특별자치도문화관광재단)

전시장 한편에서는 유종회 작가가 주민들의 구술을 기반으로 당산 원형을 재현한 작품들과 이병노 사진작가가 촬영한 당산을 배경으로 한 기념사진 등이 전시됐습니다.

전시장 중앙에는 부안 당산제를 엿볼 수 있는 옛 자료를 놓여 있었습니다. 이영식 당산 보존회장이 기록한 ‘돌모산 당산제 물목기’가 최초로 전시됐습니다. 이는 당산제 때 마을 사람들이 낸 품목들을 일일이 적은 기록지였습니다.

돌모산 당산제 물목기 자료를 소개하는 류 숙 부안군문화재단 매니저

당산제가 왕성히 진행된 시기인 1993년부터 1999년까지 약 7년간 기록한 자료로, 기록지에는 고추 세 근, 돼지 한 마리 등 마을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기부한 물건들이 자세히 적혀 있었습니다. 이 정보를 통해 당산제가 마을 공동체를 이루는 핵심적 역할을 했었다는 점을 보여주었습니다.

부안 여러 당산들과 함께 찍은 주민들

한편, 대중으로부터 점점 잊혀가는 당산제의 안타까움을 드러낸 영상도 존재했습니다. 정한결 씨의 ‘마을 없는 당산:부재의 의식’ 작품은 시골에 홀로 남은 청년이 혼자 준비하고 제까지 하는 우스꽝스러우면서 처량한 모습을 전하면서 젊은이들이 없어 당산제가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는 시골을 조명했습니다.

부안군문화재단 류 숙 매니저는 “저희가 전시 준비로 각 마을들을 다니면서 주민들을 만났는데, 대부분 고령이라서 예전처럼 당산제를 이어 나가기 쉽지 않다는 아쉬움을 공통적으로 말씀하셨다. 시골에 젊은이들이 없어서 고민이 많다는 목소리들을 많이 들었습니다.”라고 전했습니다.

부안을 잘 나타낸 우리 문화, 당산제 그리고 '우리가 기록하는 당산제' 전시

부안은 예부터 살기 좋은 땅, 축복의 땅이라고 정평이 난 곳입니다. 조선시대 영조 때 암행어사 박문수가 부안에 대해 물고기와 소금, 땔나무가 많아서 살기 좋은 지역이고 놀거리, 볼거리, 먹거리가 많아서 사람의 인심이 후하고 살기 좋은 곳이라고 말했습니다.

당산제는 사람이 많이 모인 마을이어야만 치를 수 있습니다. 살기 좋은 지역에 사람들이 많이 몰린다는 점, 당산제가 왕성했던 점으로 보아 박문수 암행어사의 말은 틀리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당산제는 우리의 문화유산이자 부안을 잘 나타내는 문화유산이라고 봐도 될 것입니다.

한편 중요한 가치를 지난 당산제를 보존하고자 부안군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지난 10월, ‘부안 당산제’가 국가유산청 2025 미래무형유산 발굴 및 육성 사업 대상에 선정되었습니다. 부안군은 부안 지역 내 당산제의 가치를 규명하고자 당산제의 실태조사와 기록화 등을 추진하고 앞으로 무형유산으로 등재될 수 있도록 방안을 모색할 계획입니다.



글, 사진 = 김진흥 기자

사진 =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 디지털부안문화대전 / 지역N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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