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성 여행, 곡성 문화 유산 답사, 성덕산 관음사와 가곡리 오층석탑
곡성에 남아 있는 백제의 유산, 관음사와 가곡리 오층석탑
삼국시대 유물이나 유적은 대부분 신라의 것입니다. '역사란 승자의 것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서기 676년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여 935년 고려에 복속될 때까지 삼백 년 가까운 세월 동안 한반도의 주인공이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백제와 고구려의 문화 예술도 신라의 것으로 둔갑했을 테고, 대부분은 세월의 격랑에 쓸려가 버렸어요. 문화 예술 측면에서는 백제가 신라 보다 한수 위였음에 여러 연구 결과가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고대 불교 미술의 걸작이라 일컬어지는 불국사 석가탑도 백제의 석공 아사달의 솜씨입니다. 백제의 유민들이 건너가 전수했다는 일본의 유적이나 유물에도 찬란했던 백제의 예술혼이 서려 있습니다.
곡성 지역은 6세기까지도 마한과 가야에 속해 있었습니다. 성왕이 본격적으로 영토를 확장에 나선 550년 무렵에 비로소 백제 영토로 편입되었습니다. 따라서 당시 곡성은 마한. 가야. 백제의 문화가 뒤섞인 변방이었습니다. 통일 이후 신라의 문물이 대거 유입되면서 문화의 용광로가 된 곳입니다. 구산선문중 가장 활발했던 동리산파의 무대였던 것만 봐도 알수 있는 대목입니다.
성덕산 관음사의 금동관음좌상은 명백한 백제 양식으로서 이곳이 백제 사찰이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가곡리 오층석탑도 백제 고토에서 발굴된 것과 동일한 백제계 탑으로 밝혀졌습니다.
성덕산 관음사
곡성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 관음사
관음사는 백제 분서왕(300년) 때 창건된 사찰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부분은 착오인 것 같습니다. 첫째 불교가 백제에 전해진 시기는 침류왕 원년인 384년이라는 것이 정설입니다. 두 번째 서두에서 말한 바와 같이 곡성 지역이 백제에 편입된 싯점은 550년 경입니다. 관음사 창건 싯점은 아무리 빨리 잡는다 하더라도 550년 이후일 것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관음사는 곡성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임은 확실합니다.
관음사는 정유재란(1596년) 때 왜군이 불을 지르기 이전까지 전각이 80동에 이르는 아주큰절이었습니다. 원통전은 고려 공민왕 때 보수했다는 기록이 있어, 지금까지 남아 있다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로 기록된 것입니다. 정유재란 때 곡성에 주둔하던 왜군이 순천으로 퇴각할 때 관음사를 약탈하고 방화를 했는데 원통전과 그곳에 모셔진 금동관음좌상만큼은 무사했습니다.
관음사 소조관음상에 남아 있는 백제의 미소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관음사 원통전과 금동관음좌상은 곧장 국보로 지정되었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백아산 빨치산의 근거지를 없앤다는 명목으로 관음사를 통째로 불질러버리는 만행을 저지릅니다. 그때 원통전과 금동관음좌상도 잿더미가 되고 말았습니다.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을 태워버린 격이지요. 그대로 있었더라면 백제를 대표하는 원찰로 대접을 받았을 텐데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그때 타고 남은 금동관음좌상 중 두상만 간신히 남아(소조 관음상) 신비로운 미소로 백제의 예술혼 전해줍니다.
관음사 어람관음상 국가문화유산으로 보호해야 합니다.
관음사 원통전 앞에는 어람관음상이 서 있습니다. 관세음보살이 커다란 물고기를 팔에 끼고 있다고 하여 붙혀진 이름입니다. 이 유물은 언제 만들어졌는지, 무슨 의미를 담겨 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아직까지 국가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지도 않습니다. 어쩌면 이 절이 창건된 백제 때부터 있었던 유물일 수도 있습니다. 정밀한 조사와 더불어, 문화재의 보존을 위한 국가문화유산 등재가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관음사의 역사적 가치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가져주세요.
관음사가 주는 특유의 개방감은 전각으로 가득했던 대가람의 위용을 상상하게 해줍니다. 산문 역할을 하는 금랑각을 포함하여 극락전. 범종각. 금강문 등 건축물들은 대부분 한국전쟁 이후에 지어졌습니다. 사찰은 어떤 방식으로든 과거와의 연결성을 중시하여 중창을 하기 때문에 지금의 전각들에도 희미하지만 백제의 양식이 남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관음사에 전해 내려오는 심청전의 원형인 원홍장 설화로 인해 오히려 관음사의 역사적 가치가 가려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중에는 심청전 이상으로 우리가 꼭 알아야 하는 역사가 서려 있을 수도 있습니다. 관음사에 대한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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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곡리 오층석탑
왜구 침략으로 지역이 소멸될 정도로 큰 피해를 입은 곡성
일본에 근거지를 둔 해적집단인 왜구는 삼국시대 이후 끊임없이 한반도를 괴롭혀 왔습니다. 하지만 주로 해안에 상륙하여 노략질하는 도적떼 수준에 불과했어요. 1300년대 들어와 동아시아의 정세가 혼란스러운 틈을 타서 왜구들은 급격하게 세력을 확장합니다. 일본 남부지역 다이묘까지 합세하여 막강한 군사집단으로 성장합니다. 수백 척의 군선에 수만의 병력과 기마부대까지 동원하여 고려 내륙 깊숙한 곳까지 쳐들어와 무자비한 살상과 약탈을 자행합니다.
왜구의 침략은 1360년(공민왕)에서 1390(우왕) 무렵에 절정에 이릅니다. 고려 전체가 전쟁의 소용돌이에 빠지게 됩니다. 하필 왜구가 침입하고 퇴각하는 길목에 자리잡고 있었던 곡성이 입은 피해는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요즘식으로 표현한다면 지역이 소멸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절은 사라지고 탑만 남은 이유는?
곡성현의 중심이었던 당동성 부근은 복구 불능 상태가 되어 치소(현청이 있는 곳)를 현재 곡성읍으로 옮겨와야 할 정도였습니다. 곡성은 삼국시대에서 고려 시대에 이르기까지 이렇다할 전란을 겪지 않은 비교적 평화로운 고장이었어요. 곡성에는 어지간한 산골짜기마다 절에 대한 전설이 서려 있습니다. 모두 다 합치면 백 개가 훨씬 넘습니다. 그 많던 절들은 왜구 침입때 대부분 잿더미가 돼버렸을 것입니다.
곡성군 오곡면 가곡리 북쪽 언덕에는 오층석탑 하나가 덩그러니 서 있습니다. 이곳에 있던 절도 왜구가 불로 태워버렸을 것으로 짐작합니다. 여기 '개사'라는 절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전해져 내려오지만 근거는 없습니다. 1402년 경 고려의 문신이었던 신덕린의 묘소를 부근에 조성한 것으로 미루어 보아 그때도 절이 없었던 것은 확실해보입니다.
이곳에 있는 신덕린의 묘소와 관련하여 이런저런 전설이 난무하지만, 조선왕조가 들어서면서 고려의 문신으로서 목숨을 부지하기도 힘든 상황에서 묘를 쓰기 위해 절에 불을 질렀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이곳에 있던 절도, 민가도 죄다 불에 타버린 상태로 버려져 있는 곳에다 겨우 묘를 썼을 것으로 짐작합니다.
고령신씨가 신숙주를 비롯하여 정승 판서를 수없이 배출한 손꼽히는 유력 가문이 된 것은 백 년도 더 지난 후의 이야기입니다. 오히려 그들의 영향력이 막강해진 덕분에 가곡리 오층석탑이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온전하게 보존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백제의 예술혼이 담긴 가곡리 오층석탑
가곡리 오층석탑은 전체적으로 우아하고 안정감을 보이며 세련된 조각 기법이 특징입니다. 탑 전체가 거의 완전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어 역사적, 학술적, 예술적 가치가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으며 국가문화유산 보물로 지정돼 있습니다.
학계에서는 이 탑이 백제 옛 터에서 발견된 것과 형태가 유사하다는 점을 들어 백제계 석탑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일부분은 고려 석탑의 특징도 반영돼있어 고려 전기에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비록 백제는 망했지만 유민들의 자긍심과 회복에 대한 열망은 뜨거웠던 것 같습니다. 견훤이 후백제를 표방한 것도 그러한 민심을 동력으로 삼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백제의 유산이 예술혼으로 바뀌어 통일 신라를 거쳐 고려 시대까지도 면면히 이어져 왔음을 가곡리 오층석탑은 이야기해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곳에 있던 절도 그러한 여망이 담긴 백제의 사찰이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가곡리 오층석탑을 찾아가는 마을 입구에는 언제 조성되었는지 그 유래를 알 수 없는 석장승이 세워져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고려 시대 이전부터 석장승이 존재했던 것으로 보아, 가곡리 석장승에도 백제의 얼굴이 새겨져 있지 않을까요?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곡성의 역사는 단편만 전해지고 있습니다. 특히 삼국시대의 곡성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습니다. 백제 때 곡성은 어떤 모습이었고,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요? 더 많은 연구를 통해서 공란으로 남아있는 곡성 역사의 여백들이 하나씩 채워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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