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일 전
김주열 열사의 자취
다시 찾은 4월 혁명의 봄
2025년 4월 11일(금) 제65주년
4.11 민주 항쟁 기념 및
김주열 열사 추모식 현장을
날짜가 많이 지난 다음에 찾아가 보았습니다.
1960년은 1945년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하고 15년째 되는 해입니다.
그 사이 6.25사변이 발생하여 민족상잔의
비극을 경험하였으며 실제로 대한민국 국민은
그 당시 문맹자도 많았으며
진정으로 자유가 어떤 의미인지
잘 알지 못하는 국민이 많은 시대이었습니다.
조선왕조 시대와 일본의 강압에
35년을 거쳐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것이 역사적으로
일천한 시기에 많은 고난을 겪는 시대였습니다.
민주 항쟁의 불씨를 붙인
그 현장을 찾은 날 주변에는
고인들의 영령을 위로하고 추모하듯
하얗게 핀 이팝나무가 숙연하니
조의를 표하는 듯 탐스럽게 피어있었습니다.
1960년 자유당의 3.15 부정선거에
학생과 시민이 항거한 그 시대는
암울한 시대 환경이었습니다.
그 당시 3.15의거 기념탑이 있는
상주시 서성동 시외버스 터미널에 가면
고함이 크고 힘센 사람이
최고였던 그런 시대였습니다.
버스 무임승차를 자신의 자랑으로
용맹 담으로 이야기하였던
그런 시대였습니다.
진정한 자유를
어떻게 실천하는 것인지를 모르는
목맨 국민이 많았던 시대이었습니다.
그러한 시대에 자유와 권리를 찾고
법을 지키려는 3.15의거는
대단한 역사적 거사였고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자유 민주화에
획기적인 전환점이며 횃불을 올린 역사입니다.
김주열(1944-1960) 열사 동상 김주열은
전라북도 남원시 금지면 옹정리에서 출생하였다.
당시 가족은 아버지 김 재계와
어머니 권 찬주 그리고 위로는 두 누나와 형,
아래로는 남동생 한 명이 있었다.
1956년 용정 초등학교(현 금지 동초등학교)
1959년 금지중학교를 졸업하였다.
1960년 3월 11일
마산상업고등학교(현 용마 고등학교)에
입학시험을 치르고 3월 15일 밤,
이승만 정부의 부정선거에
항거한 시위에 참여했다가 행방불명되었다.
아들을 찾는 어머니의 애절한 사연이
전국에 알려져 전 국민의 심금을 울렸다.
4월 11일 실종 27일 만에 김주열의 시신은
참혹한 모습으로 마산 중앙 부두에 떠올랐다.
이날 마산에서 일어난 60년 4월 11일은
사일 구 혁명의 도화선이 되었고
김주열 열사는 4월 혁명의 화신(化身)이 되었다.
마산 상업고등학교(현 용마 고등학교)
입학하기 위해 마산에서
3월 11일 시험을 치르고 3.15부정 선거에
항거하는 학생시위에 동참하여
희생된 내용을 기록하고 있으며
그 당시 김주열의 모습을 봅니다.
생존하였다면 대한민국 나이로 82세입니다.
마산 중앙 부두 김주열 열사가
떠오른 장소와 떠올랐을 때의 모습을
촬영한 모습입니다.
마산 시내 남녀 고등학교 학생이
4월 11일 거리로 뛰쳐나와
김주열의 죽음에 항거하고
3.15부 정 선거를 다시 치러야 한다는
시위를 전 고등학교 학생이
시위에 동참한 모습입니다.
이제는 마산 시내 중고등학교 학생이
함께 합세하여 시위를 벌이고 있는 모습입니다.
마산 제일 여자고등학교 항생의 시위대입니다.
마산 시민과 학생 그리고 대학교 학생과
교수 시민 전체가 시위에 참석하여
시가를 행진하고 있는 대형입니다.
학생과 시민이 함께 벌이는
4월 혁명의 시발점이 되었던
마산 시민의 항거하는 모습입니다.
4월 혁명 항거의 발단이 된
마산의 의거에 희생된
애국 열사 15분의 이름과
사진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80년이
지난 지금도 부정선거로
몸살을 앓고 있는 지금입니다.
다시는 이러한 마산의 학생과
시민의 의거와 같은 일이
대한민국에서 발생하지 않도록
위정자들은 역사를 똑바로 인식하고
국민과 국가를 우선하는 권력 행사를
실천하는 위정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순천 자는 흥하고
악천 자는 망하는 것이 진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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