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 금성관은 조선의 왕을 상징하는

전패와 궐패를 모시고 예를 올리던 공간이자,

나라를 위한 의로운 역사들이 시작된

‘의향 나주’의 중심지였어요.

금성관이 지닌 역사적 가치와 호국의 정신을

다시 조명해 보는 시간을 가져봅니다.


나주 금성관이란?

전라남도 나주시 과원동에 위치한 금성관은

조선시대 나주목의 객사로,

임금을 상징하는 궐패를 모시고 망궐례를 행하던

지방의 궁궐 역할을 했던 공간이에요.

또한 중앙에서 내려오는 관료나 외국 사신의 숙소,

지역민에게는 관청 업무가 이루어지던 행정의 중심지였죠.


금성관의 역사, 얼마나 오래됐을까?

1603년, 1617년, 1775년, 1884년 등

여러 차례에 걸쳐 중수 및 보수가 이루어졌고,

일제강점기에는 나주 군청 청사로도 사용되었죠.

1963년, 1976년 해체·복원,

이후 2019년에는 보물로 재지정되며

그 가치를 다시 인정받았답니다.


건축으로 보는 금성관의 가치

금성관은 정면 5칸, 측면 4칸으로 웅장한 규모를 자랑하고,

겹처마 팔작지붕의 형태는 일반 객사와 달리

궁전의 정전과 흡사한 구조를 띠고 있어요.

✔ 주심포 양식 공포(기둥 위에만 설치된 구조물)

✔ 정중앙 3칸에 네 짝의 빗살문, 양측 협간 두 짝

✔ 지붕, 기둥, 천장 모두 정궁(正宮)의 위엄을 담아냄

이러한 건축 양식은 단순한 관사가 아닌,

임금을 모시는 예식과

정신의 중심지로서의 위상을 잘 보여줍니다.


나라를 위한 의로운 정신이 살아 숨 쉬는 곳

금성관은 나주가 호남의 중심지로

기능했던 상징적 공간이자,

호국보훈의 정신이 깃든 역사 현장이기도 해요.

✔ 임진왜란(1592) 당시,

의병장 김천일이 이곳에서 의병을 모아 출정식을 거행

✔ 명성황후 시해 사건 이후,

빈소를 설치해 항일정신을 고양

✔ 나주인의 정의로운 기상과

나라사랑의 정신을 상징

📌 금성관은 나주 시민들의 자긍심의 뿌리이자,

의로운 역사를 함께 기억하는

‘의향 나주’의 상징 공간입니다.


문화재로서의 현재 가치

1972년 보물로 지정되었다가,

2019년 재지정된 나주 금성관은

전라남도에 남은 몇 안 되는 객사 중 하나입니다.

또한 정수루, 나주목 내아, 나주향교 일원과 함께

2007년 ‘사적 제483호’로 지정,

역사 문화 공간으로 체계적으로 보존·관리되고 있답니다.


금성관에서 호국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세요

금성관에서 선열들의 숭고한 희생과

의로운 정신을 다시 되새겨보는 건 어떨까요?

단순한 유적지를 넘어

📌 조선시대 지방 궁궐이자,

📌 나라를 위한 출정의 공간,

📌 오늘날에도 살아있는

역사교육의 현장인 나주 금성관!

지금 나주를 여행하신다면, 꼭 한 번 들러보세요!

역사와 건축, 그리고 나라사랑의 정신까지

한눈에 만날 수 있는

소중한 공간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답니다.

✅이 원고는 6월 24일에 취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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