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일 전
울산 중구 학성역사체험탐방로를 걷다 2편 충의사
안녕하세요, 제4기 울산 중구 소셜미디어 기자단 오준서입니다.
앞서 제가 쓴 울산 중구 학성역사체험탐방로를 걷다 1편에서 울산 유일의 사액서원이자 조선시대 울산 지방 최초의 사립 교육기관이었던 구강서원에 대해 알려드렸다면 오늘 이 글에서는 울산의 임진왜란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충의사에 대해 알려드려볼까 합니다.
충의사
울산광역시 중구 서월11길 25
전화번호 : 052-294-7721
우선 먼저 충의사를 불교 사찰 또는 절로 잘못 알고 계시는 분들이 더러 계시던데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충의사는 불교 사찰, 절이 아닙니다.
충의사는 임진왜란 때 왜적 대군이 쳐들어온 길목이었던 울산 고을의 의사들이 임진왜란 초기에 창의하여 사생취의 전공을 세운 의사들의 위패를 모시고 그 충의를 추모하고 제향하는 사당인데요.
선조 25년(서기 1592년), 왜적대군이 부산포로 침범하여 부산진성과 동래성을 함몰시키고 이에 관군은 적세에 겁을 먹고 흩어져 도망친 탓에 울산도 점령당하고 맙니다.
이에 울산지방의 의사들은 기박산성에 모여 군대를 이루었고 이어 경주지역의 의병과 신흥사 승군도 찾아와 합세하는데 그리하여 병영성을 점령하여 둔거하고 있는 왜적대군을 기습하여 왜적이 도산성에서 격퇴할 때까지 싸워 이겨 이들의 공에 군을 도호부로 승격되는 은전이 내려지고 울산 의사들이 전공을 치하하고 위무하는 선조실록의 기록이 무려 스무 차례 언급되어 있답니다.
이러한 선조들의 충의를 기리기 위하여 사당 건립에 착수한 울산시에서는 충의사를 완공하여 울산 의사 242위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으며 이름 없이 산화한 의사들 또한 함께 봉안되어 있고 매년 봄과 가을에 의사들을 향해 정성을 다하여 제향을 올리고 있는 곳.
이곳은 바로 충의사입니다.
울산 시내버스 타고
충의사 찾아가기
ⓘ 학성공원(학성초등학교·삼산 방면, 24706)
114, 417, 711, 715, 721, 724, 734, 735, 741, 754, 1114번
ⓘ 학성공원(학성초등학교후문·병영 방면, 24302)
213, 215, 219, 225, 236, 422, 462, 742, 1432, 1452, 5003번
ⓘ 학성공원(선거관리위원회·장춘로 방면, 24301)
114, 215, 219, 236, 462, 711, 715, 721, 724, 741, 742, 5003번
ⓘ 학성공원(옥성초등학교앞·강변로 방면, 24705)
213, 225, 417, 422, 734, 735, 754, 1114, 1432, 1452번
다시 정리하자면 충의사는 의사 제위의 위패가 모셔져 있고 해마다 제를 지내는 사당이며 그러한 충의사에는 봄과 가을에 춘추제향 행사를 협의하고 전체적인 관리와 크고 작은 일들을 논의하는 숭모당과 제례에 필요한 제기와 일체의 기구를 보관하고 제수를 준비하는 전사청 등의 건물이 세워져 있는 곳입니다.
충의사에는 임진왜란의 전투연보와 울산 지방 의병들의 주요 전투연보를 게시하고 있는 전시관도 함께 운영 중인데요.
울산 의사들의 실기나 교지를 비치하고 대형 도산성 전투도 및 갑주 또는 병기 등이 진열되어 있어 우리 사는 울산지역도 임진왜란과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아주 잘 보여주고 있는 공간으로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임진왜란과 울산
임진왜란은 선조 25년, 20만 왜적대군의 침략으로 일어났고 제1차 침략이 임진년에 일어나 우리는 임진왜란이 부르고 또한 제2차 침략은 정유년에 일어났다 하여 정유재란이라 부르는데요. 이러한 재란을 통틀어 임진왜란이라 명명하기도 합니다.
부산에 상륙한 왜적대군은 부산진성과 동래성을 함락한 후 군을 세 편대로 나누어 북상하였고 한성이 점령당하자 선조는 피난하였고 함경도까지 점령당한 후 조선을 큰 위기를 맞았죠.
해상에서는 우리의 영웅 이순신 장군이 중심을 잡고 수군의 활약으로 모든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며 제해권을 확보하고 전국 각지에서 일어난 의병들의 활약도 왜군들에게 큰 타격을 주어 특히 명나라 군사들의 지원을 통해 더욱 수세에 몰리던 왜군은 휴전을 제의하였고 잠시 잠깐의 회담 또한 진행되었으나 왜군의 무리한 요구로 결렬된 끝에 왜군의 재공격으로 일부 지역이 저지되고 이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자 왜군이 물러가고 대첩으로 이 전투가 끝이 납니다.
울산은 당시 경상좌병영이 주둔하고 있던 지역으로 군사적 요충지였는데 부산이 함락당하자 울산에 주둔하고 있던 경상좌병사는 휘하 병력을 이끌고 동래성으로 출전하였으나 제대로 된 전투 한 번 치러보지도 못하고 울산으로 되돌아와 끝내 병영을 버리고 달아납니다.
이 탓에 울산은 왜군이 지배하였고 관군이 무너진 뒤 울산에서는 충의지사들이 기박산성에 모여 병영성을 공격하는 등 경주와 울산지역에 주둔하던 왜군과 전투를 벌여 울산을 수복하기도 했는데 왜군이 울산의 서생포와 도산 등지에 성을 만들어 대규모 병력을 주둔시키는 바람에 정유재란 때에는 조선 명나라 연합군과 왜군 사이에 대규모 전투가 벌어지기도 하는 등 무려 7년간의 전투 끝에 임진왜란은 조선과 명나라 그리고 일본 삼국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정도로 대전이었으며 특히 조선은 인적 물적인 면에서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오로지 울산 중구 충의사에서만 볼 수 있는 전시관에서 울산의 임진왜란에 대해 알아본 후 계단을 따라 충의사 본관에 올라 이곳에서는 어떤 일들을 진행하는지 잠시 살펴봤는데요.
충의사에서는 울산의 임진왜란과 의사들의 충의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매년 봄과 가을에 제향을 봉행하고 있으며 제향일은 봄과 가을 절후에 맞는 매년 4월 15일과 10월 15일로 정하고 호국충절의 높은 뜻을 받들고 있습니다.
충의사에 올 때마다 울산 의사들이 우리 지역을 굳건히 지켜 내주신 덕분에 오늘날 우리가 이 나라 이 땅 위에 평화로이 잘 살고 있으며 호국 충의 정신에 깊은 감사의 마음이 드는 하루를 보내곤 합니다.
해마다 앞서 알려드린 구강서원과 오늘 이 글을 빌려 알려드리고 있는 충의사를 중심으로 울산 중구 학성역사체험탐방로 걷기 행사 또한 진행되고 있는데요. 항상 특정한 날 또는 특정한 시기에 기억하기보다 평소에 이곳들을 자주 찾아 우리 지역의 숨은 명소를 더 많이 더 널리 알리는데 우리 지역에 사는 시민된 도리를 다하자는 점 또한 강조하고 싶었습니다.
누구나 일상을 보내고 있는 울산 중구 반구동과 학성동에 위치해 있는 그야말로 아는 사람만 찾아온다는 울산 중구의 숨은 명소 구강서원과 충의사를 소개해 드렸는데요!
이제 이렇게 알려드렸으니 좀 더 많은 분들이 찾아주시겠죠?!ㅎㅎ 좋은 곳은 우리를 찾아오지 않으니 우리가 직접 한 번 찾아와 보시자구요!
1편 구강서원에 이어 2편 충의사에 대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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