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사대부의 생활상과 건축미학을 느낄 수 있었던 '송애당'

오늘 소개하는 송애당은 36년 전인 89년 3월 18일 지정된 문화유산, 대전광역시 유형문화유산 제8호입니다.

​조선 인조 병자호란 시절, 독전어사 신분으로 지낸 송애당 김경여가 그의 부모를 모시고 터를 잡아, 자신의 호를 딴 송애당이라는 현판을 걸고 은거한 곳으로 당시 유명한 학자들과 함께 학문을 닦았다고 합니다.

조선 인조 18년, 1640년에 건립된 문화유산인데 30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렇게 관리가 잘 되고 있다니 대전 시민으로서 큰 자부심이 느껴집니다.

​송애당은 야산을 배경으로 한 서남향 집으로 전면 너비 3칸, 측면 너비 2칸 규모로 이루어져 있고 지붕의 옆면은 팔작지붕을 올렸으며 구조는 내부 좌측 2칸 대청마루, 우측 1칸 온돌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온돌방 뒷면은 반 칸을 안으로 들여서 반침을 두었고 그 아래는 함실아궁이로 이용하였고 기둥은 각진 기둥이 사용되었습니다.

인근에 있는 동춘당과 쌍청당, 제월당 등과 더불어 이 고장의 별당 건축 양식을 지닌 건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담벼락을 통해서 보이는 고즈넉한 한옥의 모습에서 운치와 당시 사대부의 생활상과 건축미학을 느낄 수 있어서 너무 흥미로웠습니다.

​덧붙여 송애는 ‘눈서리를 맞아도 변치 않는 소나무의 곧은 절개와 높이 우뚝 선 절벽의 굳센 기상을 마음에 간직하겠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높은 기개와 충성심을 마음에 담고자 건물 이름으로 삼은 것이라고 합니다.

​역사적 가치는 물론 전통 가옥의 멋이 그대로 드러나는 곳이라서 스냅 촬영 장소로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주변으로 멋스러운 소나무도 많아서 단정하게 한복 입고 이 앞에서 촬영하면 의미도 깊고 너무 멋있을 것 같습니다.

​송애당부터 이어지는 팔각정, 회덕 쌍청당까지 길도 깔끔하게 잘 되어 있어서 산책하기에도 너무 좋을 것 같습니다.

​송애당 맞은편엔 중리동 법천석총 암각이라는 큰 역사적 가치를 지닌 큰 바위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원래 옥류각 밑 쪽에 있다가 송애당 앞으로 이동했다고 합니다.

법천은 법동의 샘을 뜻하는데 물이 솟아나 돌에 소리가 난다는 의미이며 총은 여러 갈래의 물줄기가 한데 합쳐지는 물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웅장한 자연의 멋이 담긴 암각이라서 송애당의 잔잔한 정취와 너무 잘 어우러집니다.

​송애당은 예전에 왔을 때는 별생각 없이 봤었는데 역사적 가치와 의미를 알고 본 지금의 시선에선 송애당이 너무 귀중하게 느껴집니다. 굳이 시간 내어 여행을 떠나지 않아도 도심지에서 이런 소중한 자산을 볼 수 있다는 게 너무 귀합니다.

겨울의 송애당은 차분하면서 강한 느낌이 들었는데 푸릇푸릇 자연과 어우러진 봄과, 여름의 송애당은 또 다른 느낌으로 좋을 것 같아 기대됩니다. 다가오는 봄에 다시 찾아와서 송애당의 멋을 다시 한번 더 느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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