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 소요산 꼭대기에 사찰이?

정처 없이 떠나는 소요(逍遙)의 길

소요대사가 중창한 소요사까지

전북 고창에서 방장산(743m)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소요산(逍遙山, 445.4m)입니다.

고창 말고도 경기도 동두천에도 소요산(587.5m)이 있는데요,

한자까지 똑같아 지명을 넣지 않으면 경기도의 소금강이라 불리는

동두천 소요산이 먼저 검색되기에 헷갈릴 수 있습니다.

멀리 보이는 산줄기는 호남정맥이 지나는 방장산 줄기로

고창에서 가장 높은 방장산이 있는 곳인데요,

방장산에서 보면 널따란 고창 들녘 너머로 서해가 보이고

서해에 접한 곳에 우뚝 솟은 산 군락이 보이는데

그곳이 선운산 도립공원이 있는 선운산(334.7m)과 경수산(445.2m),

개이빨산(346.3m), 청룡산(314.9m), 비학산(308.4m), 소요산 등입니다.

소요산에는 정상 바로 아래 소요사가 있습니다.

소요산 뒤로는 세계유산 고창갯벌이 자리한 곰소만인데요,

원래 탐방일은 12월 7일 토요일이었지만, 고창지역에 눈이 예보되었기에

만사 제쳐놓고 하루 앞당겨 12월 6일 금요일에 다녀왔습니다.

고창 복분자 농공단지에서 미당 시문학관으로 넘어가는 질마재로에서

1차선인 임도 따라 2.2km를 들어가야 소요사가 나오고

그곳까지 가는 길이 임도에다 다소 험해

길이 미끄러우면 오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소요(逍遙)라는 뜻은 직역하면 '슬슬 거닐어 돌아다님'이란 뜻으로

의역하면 '구름 같은 인생, 즐겁게 노닐다 간다'라는 뜻이라는데요,

공자의 제자 장자의 첫 편에 나오는 용어라고 합니다.

하지만, '소요'를 요즘 현대적 시각으로 보면

'아무런 의도나 목적 없이 걸어가는 것'을 뜻하니

세상의 경계를 나누고 구분 짓는 경계를 뛰어넘는 세상을 꿈꿨던

장자의 철학대로 소요산 소요사까지 정처 없이 떠나봅니다.

소요사에서 소요산 정상까지는

400m로 천천히 가도 30분이면 도착할 수 있다지만,

오늘은 소요사만 탐방하도록 합니다.

올라가는 길이 다소 경사지고 가파르며 바위 구간이라

운동화 차림으로는 조금 어려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소요사를 약 400m 남겨놓고 마치 일주문처럼

사찰 영역임을 표시한 조형물이 보입니다.

왕복 1차로인 좁다란 임도 따라 오르면서

앞에서 차가 오면 어떡하지?

고민 아닌 고민을 하고 올라갔는데요,

선운사 방향으로 가는 갈림길인 연기재만 지나면

그런대로 교행할 수 있는 곳도 있어 조금 안심은 되더군요.

그래도 올라가는 길이 가파르고 곡선 구간이 많아

운전에 서툰 여행자는 자제하시고 꼭 능숙한 사람이

운전대를 잡고 안전 운전하시기 바랍니다.

사찰 상징 조형물 근처에

전북 서해안권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지질명소인

소요산 용암돔이 있습니다.

약 8천만 년 전인 중생대 백악기 때

선운산 화산활동을 짐작할 수 있는 지질인데요,

마그마가 지하에서 지표로 움직이다가 딱 멈춘 뒤

하부에서 올라오는 마그마가 밀여 올라온 흔적이라고 합니다.

즉, 마그마가 흐른 자국을 관찰할 수 있는데요,

뜻밖의 소득입니다.

용암돔에서는 소요산 소요사를 볼 수 있는

조망 바위가 있습니다.

잠시 올라가 살펴보는데요,

어떻게 이토록 높은 산에 사찰이 존재하게 되었는지

신기할 따름입니다.

지도 앱에서 고창 소요사로 검색하면

소요사 주차장으로 안내하는데요,

승용차 기준 2~3대 정도 주차할 공간이 나옵니다.

그 이상은 차량 소음으로 인해 법당의 고요를 깰 수 있기에

소요산 주차장에 주차하고 걸어 올라가는데요,

석재로 된 납골당과 아무 내용도 쓰여있지 않은

흑비 사이로 오르면 범종각이 나옵니다.

범종각과 함께 대웅전이 나옵니다.

소요사 창건설화는

지리산 화엄사와 연곡사를 창건한 연기조사(烟起祖師)가

소요산 아래 연기사를 창건하고 현재의 소요자 위치에 암자를 짓고 수도했으며

훗날 도선국사가 잠시 머물며 중창했고

조선시대 들어 수많은 선승이 수도를 했다는데요,

소요사 대웅전 앞에 서면 세상이 발아래 내려다보일 정도로

풍광이 아름다워 그러고도 남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범종각에는 빼곡하게 시주한 사람들의 명단이 있는데요,

범종각에서 종을 치면 은은한 종소리가

고창 전역으로 퍼져나갈 것 같은 소요사입니다.

소요사에서 수도한 사람들 중 가장 대표적인 수행자는

진묵대사(震默大師, 1562~1633)와 소요대사(逍遙大師, 1562~1649)라고 합니다.

진묵대사는 김제 출신으로

7세 때 출가해 승려가 되었으며 김제 망해사를 중창한 스님이고

소요대사는 담양 출신으로

서산대사 제자로 조선 후기 불교계를 이끈 스님인데요,

두 스님의 법력이 높아선지 당시 법문을 들으려고

수많은 신도와 승려들이 소요사로 모여들었다고 합니다.

소요사에서 가장 가까운 도읍지가 흥덕이니 소요사까지 걸어온다면

11km로 4시간 가까이 걸리는 길인데요,

오며 가며 '소요'라는 말 뜻대로 아무 생각 없이

오로지 법문을 들으려고 무작정 길을 떠났을지도 모를 일입니니다.

산신각은 비닐로 문이 꽁꽁 싸여 있습니다.

해발고도가 400m 정도에 이르고 아무리 남향이라고 해도

탁 트인 공간이어서 겨울바람은 매섭기만 합니다.

그 위로는 '일반인 출입 금지 등산로 없음'아라고 안내문이 있어

더 오르지 않았는데요, 자그마한 암자가 하나 있더군요.

소요사(逍遙寺)라는 현판이 있는 곳은 종무소로 보입니다.

경내를 둘러보는데, 주차된 차량이 없어

당시 소요사에는 스님이 안 계신 걸로 보였는데요,

그래도 아니 간 듯 조용하게 다녀왔지만, 바닥에 깔린 잡석을 밟을 때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려 만약 참선하고 계셨다면

꽤 시끄러웠을 것으

로 보입니다.

혹시라도 소요사를 들러 경내를 돌아볼 때

걸음걸이에 신경 써야 할 듯합니다.

종무소 너머로도 콘크리트 건물이 한 채 보이고

불탑 너머로 위쪽에도 건물이 또 한 채 보이는데요,

이런 곳에서 사법고시나 행정고시 등 고시 공부를 한다면

속세를 멀리하고 오로지 수험공부만 가능할 것 같은

오지 중의 오지 사찰입니다.

차량이 없다면 버스 타는 곳까지 오고 가는데,

걸어가려면 최소 1시간을 걸어 나와야 하기 때문인데요,

꼭 고시 공부만이 아니라 잠깐이나마 속세에서 벗어나

나만의 시간을 되돌아보는데 최적인 사찰로 보입니다.

꽤 현대적인 석탑도 한기 있는데요,

현재의 당우들은 모두 1961년 이후의 건물과 석탑입니다.

소요대사가 중창한 1583년 경에는 사찰의 규모가 상당했다는데요,

정유재란 때 왜군의 노략질로 당우들이 모두 소실되고 겨우 요사채만 남았다가

1644년 승려 허기가 대웅전을 중건해 조선 후기까지 존재했다고 합니다.

호남읍지(1871년~1895년 간행) 기록에

소요암으로 표시돼 알 수 있는데요,

그마저도 한국전쟁 당시 모두 소실돼 폐사되었으며

1961년 백양사 총무스님이었던 현학 스님이 대웅전 중창하면서

다시 불사를 일으킨 뒤 여러 스님이 주지로 부임하며 중창을 거듭했고

1990년 소요사까지 도로를 콘크리트로 포장해

이제는 편하게 차량으로 올라갈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소요사를 한 바퀴 돌아 주차장 방향으로 가는데,

반반한 커다란 바위면에 수많은 글씨가 빼곡하게 쓰였습니다.

공적비도 2기가 있고 부도도 하나 있는데요,

공적비는 삼형공적비( 三荊功績碑)로 옆면을 보니

1 荊 萬歷十一癸未 逍遙太能祖師 (1583년),

2 荊 頂治元年甲申虛機大教師 (1644년)

3 荊 大韓民國 43 年辛丑 (1961년) 玄鶴中德禪師로 쓰여 있어

첫 번째 중창자 소요대사, 두 번째 중창자 허기대사,

3번째 중창은 백양사 총무스님 현학 스님임을 알 수 있습니다.

벽면에 김경중(金暻中)이라는 이름도 새겨있는데요,

검색해 보니 고창 출신 인촌 김성수의 부친 김경중(1863~1945)인데요,

고창 부안면 인천리 출신으로 소요사에서 머지않은 곳입니다.

호남 갑부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어서

어떤 식으로든 소요사와도 관련이 있을 것 같은데요,

벽면에 빼곡하게 쓰인 이름 중 가장 크게 쓰여 있습니다.

감이 무르익어 가는 소요사에서 발아래를 내려다보니

세상 근심일랑 모두 사라지고 멍 때리며 소요산과 소요산 너머 펼쳐지는

고창의 산하만 바라보게 되는데요,

온 세상이 하얀 눈으로 뒤덮이면

순백의 아름다운 세상만 볼 수 있을 것 같은 황홀한 절경이겠습니다.

그러려면 몇 날 며칠이고 묵어야겠지요?

그래도 인생에 있어 한 번쯤 그런 장면을 몇 날 며칠이고 간에

보고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풍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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