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시간 전
남원 가볼만한 곳 - 국악의 성지 동편제 마을 송흥록 생가
동편제 판소리의
거장 '송흥록'
동편제의 탯자리 비전마을과
‘국악의 성지’를 찾아서
2003년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된 판소리는, 우리 민족에게 특별히 사랑받아 온 예술 문화입니다. 판소리 가왕이라 불리는 송흥록은 동편제의 시조입니다. 동편제는 판소리 유파 중 하나로, 섬진강 동쪽은 동편제, 서쪽은 서편제로 불립니다. 오늘은 유파를 넘은 판소리 歌王, 송흥록 선생의 발자취를 찾아 남원 운봉 비전마을로 가보겠습니다.
이순신의 백의종군 길과 이성계의 황산마을을 지나
남원 운봉을 향해 달리는 도로가에 선 팻말이 오늘의 목적지를 안내하네요. 그런데 쭉 뻗은 이 도로가 바로 이순신 장군의 백의종군길이라고 합니다. 1597년 출옥한 장군이 서울에서 합천 권율을 만나러 가던 여정의 길이라고 해요. 必死卽生 必生卽死(죽고자 하면 살 것이오.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다.) 이순신 장군의 어록을 음미하며 저 화살표를 따라가 볼까요?
소나무 가로수를 지나 왠지 낯설지 않은 마을 "황산"입니다. 이성계 장군의 황산대첩이 생각나지요? 네 바로 그 현장의 마을입니다. 훗날 임진왜란을 대승으로 이끈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나라를 건국했던 이성계 장군의 그 강인한 기운을 받고자 백의종군으로 통과했다는 남원 운봉, 그 우쭐한 기운에 의미를 부여하며... 와우~~^.^
황산대첩과 조선의 건국, 임진왜란의 대승, 넘나드는 기백을 간직한 저 하늘에 숙연해집니다. 그날의 장엄한 침묵과 소통하며 위기에 강한 우리 민족의 저력을 느껴봅니다. 해맑은 봄기운이 폭발할 것만 같은 풋풋한 날, 흐뭇한 위엄을 간직한 채 판소리의 歌王을 만나러 부르으응~~~^^.
송흥록 생가터 비전마을에서
네비 아가씨의 음성을 따라 건넌 다리 저편 비전마을이 보입니다. 바로 송흥록 선생의 생가터로 동편제가 시작된 마을입니다. 판소리의 가왕이자, 동편제의 시조 송흥록을 중심으로 굵직한 소리꾼들이 배출된 바로 이 탯자리를 둘러싼 국악의 성지를 둘러볼 겁니다.
가왕 송흥록, 국창 박초월의 생가임을 밝히는 문구가 상세하네요. 박초월은 송흥록의 제자인 송만갑의 제자로 국창입니다. 이곳 남원 운봉은 우리 음악의 기틀을 다진 초대 예술인으로 거문고를 크게 발전시킨 옥보고로도 유명하지요. 천 년도 훨씬 넘은 이전, 예술의 기운이 가왕(歌王)과 국창을 배출할 수 있었던 싹이 된 건 아니었을까, 음미하며 안으로 들어섭니다.
가왕 송흥록, 국창 박초월의 생가임을 밝히는 문구가 상세하네요. 박초월은 송흥록의 제자인 송만갑의 제자로 국창입니다. 이곳 남원 운봉은 우리 음악의 기틀을 다진 초대 예술인으로 거문고를 크게 발전시킨 옥보고로도 유명하지요. 천 년도 훨씬 넘은 이전, 예술의 기운이 가왕(歌王)과 국창을 배출할 수 있었던 싹이 된 건 아니었을까, 음미하며 안으로 들어섭니다.
송흥록의 아버지는 8명창의 한 사람인 권삼득의 고수 송첨지였습니다. 어린 시절 한 양반 자제보다 늘 영민했던 흥록을 시샘한 그 친구의 아버지가 걸핏하면 송첨지를 잡아갔다는.... 늘 억울함 당하는 아버지를 본 흥록이 그 친구를 흠씬 패주고 집을 나왔다지요? 흥록의 보짱 있는 뚝심에 하하하... 때마침 그곳을 지나던 백운사 월강선사가 흥록을 만나게 되었다고 하죠.
창극사에 전하는 송흥록의 사랑 이야기
월광선사에게 글과 소리를 배운 것을 계기로 판소리계를 흔들게 된 흥록, 그로 인해 무럭무럭 싹을 틔운 동편제의 활동은 섬진강 동쪽 구례, 곡성, 남원 지역으로 전승됩니다. 성격도 한몫했다는 송흥록의 러브스토리가 판소리의 입문서라는 조선창극사에 전하는데요, 판소리의 가왕이라 불리게 되기까지 그에게 또 하나의 영향을 끼쳤다는 여인이 있었다고 합니다.
맹렬아 잘 가거라
맹렬아, 맹렬아, 맹렬아 맹렬아
맹렬아 맹렬아 잘 가거라
날 버리고 가랴거든 정마저 가려무나
몸은 가고 정만 남아
쓸쓸한 빈 방안에 애를 태우니 병 안 될쏘냐.
이 노래는 송흥록이 봇짐을 싼 맹렬을 향해 애절하게 불렀던 노래입니다. 예로부터 큰일을 이루어낸 사람 뒤에는 깊은 사랑의 경험을 빼놓을 수 없다고 하죠. 송흥록에게도 맹렬이란 여인이 있었는데요, 너무나 사랑했던 나머지 맹렬하게 질투를 했다는 질투의 화신이었다지요?
소리만큼이나 강한 개성에 부부싸움이 잦았다고 해요. 그날도 말다툼 끝에 봇짐을 싼 맹렬, 하지만 애처롭게 들리는 남편의 소리에 그만 봇짐을 내던지고 말았답니다. 오히려 서로를 부둥킨 사랑의 경험은 송흥록이 판소리를 집대성하게 된 영감의 계기가 되었다지요. 소리꾼들의 스토리를 보유한 야사적 저서, 조선창극사에 전하는 이들의 러브스토리를 살짝 훔쳐볼까요?
소리로 전국을 떠돌던 송흥록이 하루는 기생 맹렬이 있는 대구감영을 가게 됩니다. 모든 청중들이 그의 소리에 감탄하여 칭찬하는데, 대구 최고 명기였던 맹렬만은 시큰둥했답니다. 성격이 한몫 한 흥록이 기분이 상해 묻습니다.
“그대는 귀머거리인가? 어째서 그대만 묵묵부답인가?” 이에 맹렬은 “그대가 명창이란 말을 들을 만은 하나, 목구멍에서 피 세 동이는 더 토해야 제일가는 명창이란 소리를 들을 것이오.” 했답니다.
맹렬의 맹랑한 대답에 팍 자존심이 상한 송흥록은 그 길로 깊은 폭포를 찾아 소리에만 정진합니다. 한 석 달을 그렇게 보낸 그는 급기야 검붉은 피 세 동이를 쏟게 되지요. 그 일이 있은 후 귀곡성(鬼哭聲)으로 더욱 유명해진 그는 다시 맹렬이 있는 대구감영에 가게 됩니다.
송흥록의 소리를 다시 듣게 된 맹렬은 그의 소리에 감동하고 맙니다. 이에 무작정 송흥록을 따라나서 그의 아내가 된 맹렬은 질투가 심했다고 하죠. 자주 다투고 헤어지기를 반복했다는 사연이 전하고 있습니다.
귀곡성(鬼哭聲)으로 유명한 송흥록
어쨌든 그들의 오묘한 사랑을 소리로 승화시킨 송흥록은 계면조, 진양조를 완성하여 판소리의 혁명을 이루게 됩니다. 판소리를 민족음악으로 승화시키는데 공헌하지요.
특히 귀신이 우는소리, 귀곡성(鬼哭聲)으로 유명한 그가 하루는 진주 촉석루에서 옥중가를 귀곡성으로 불렀더니, 와우~~^.^ 갑자기 바람이 불어 수십 대의 촛불이 꺼졌다는 설화가 전하고 있습니다.
한편, 그가 죽은 후 그의 무덤에서도 “내 소리를 받아가라”는 소리가 그치지 않았다는데요, 송흥록을 시작으로 한 '동편제'는 제자 박만순과 동생 송광록, 손자 송우룡, 송우룡의 아들 송만갑으로 이어집니다. 비전마을 국창 박초월은 송만갑의 제자로 동편제 국악인의 소리터가 되어 온 동편제 마을, 곧 비전마을과 함께 이곳을 국악의 성지라 불릴 만하겠지요?
이 비전마을 뒤편, 웅장하게 세워진 국악의 성지를 가 볼까요?
건물 뒤편 언덕에는 우리나라 3대 악성의 하나인 옥보고를 비롯해 송흥록 가계의 무덤이 있었습니다. 송흥록의 생가와 그의 생애를 돌아보면서, 통일신라 5소경 중 하나였던 남원의 숨겨진 寶庫들을 찾아가고픈 충동에 발걸음이 멈칫, 깊은숨이 들락거렸습니다.
남원은 우리나라 고전이 숨 쉬는 보고(寶庫)였다.
남원은 ‘춘향가’와 ‘흥보가’의 배경이 된 판소리의 고장이니만큼 이도령을 사모한 춘향이가 실재했던 고장이랍니다. 또한 흥부와 놀부 이야기 속 주인공이 자란 현장도 남원이었다는 것도 의아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 금오신화의 첫 번째 이야기 만복사저포기의 만복사 현장도 남원이었습니다. 이러한 고전의 메카 남원에서 신기루 하나 가슴에 담아 갑니다.
다음에도 고전의 메카 남원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소설 만복사저포기의 현장을 취재해 볼까 합니다. 쓱싹쓱싹, 흥부의 박이 쫘악 벌어지는 순간, 찰랑찰랑 큐빅 박힌 목걸이랑 귀걸이 하나 얻어 볼 꿈을 꿔 볼까 하네요. 여러분들도 예쁜 꿈 꾸시고요, 울창한 초록이 숨 쉬는 계절에 남원에서 뿜뿜 다시 만나요.
글, 사진 = 전예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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